[eBook] 케어 - 의사에서 보호자로, 치매 간병 10년의 기록
아서 클라인먼 지음, 노지양 옮김 / 시공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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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몇 년이 흘러갔다. 예상대로 약물 치료는 거의 효과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조앤이 아니었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을 했다. 일을 줄인 것이다. 조앤과 더 많은 시간 보낼 수 있었고 점점 늘어가는 요구를 들어주고 아내를 위해 돌봄의 일상을 마련해 나갔다. 질병과 간병의 몇 안 되는 진실 중 하나는 유일하게 지속적인 건 오직 변화뿐이라는 사실이다. 당신이 안정기에 도달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질병은 기대하지 않았던 반전을 던져주고 사회적 또는 재정적 요인이 변하면서 당신은 처음부터 모든 걸 다시 시작해야 한다

-알라딘 eBook <케어> (아서 클라인먼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더 이상 나 혼자서 이 모든 돌봄 노동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천천히 깨달아갔다. 그런데 그 깨달음에 도달하기까지 왜 이렇게 오래 걸린 걸까?

-알라딘 eBook <케어> (아서 클라인먼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우리가 상담했던 고도로 전문적인 신경과 의사들이 알츠하이머란 병의 실체를 알긴 하는 건가 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이 병의 원인과 병리생리학에 대해서 밝혀진 바가 적기도 하고 아직까지 효과적인 치료 방법도 나와 있지 않다. 그나마 우리가 잘 다룰 수 있는 것, 완전히 달라지게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가족과 사회의 돌봄 네트워크 아닌가. 이 무시무시한 질병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의료인들은 그들 자신이 보다 직접적으로 간병에 가담할 필요가 있다고는 인식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들의 다른 환자들에게도 마찬가지겠지만 우리가 알츠하이머의 고통과 일상생활 속의 파문을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전문가들의 경험, 조언, 통찰이 절실히 필요했다.

-알라딘 eBook <케어> (아서 클라인먼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그녀도 나도 다루기 힘들어진 시기가 찾아왔다. 조앤은 점점 불쑥불쑥 화를 내는 예측 불가능한 성격으로 변해갔다. 조앤 자신은 나를 향한 감정의 변화를 해석할 수 없었지만 나는 바로 알아챘다. 어쩌면 본인도 알았을지 모른다. 차분해 보이다가도 그 상태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한순간에 갑자기 공포를 느끼며 내적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사람으로 변해버렸다. 그녀는 자신에게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나에게 설명할 수 없었고 그저 어지럽다거나 기분이 나쁘다고 이야기했다. 치매가 악화되면서 자신의 기분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알라딘 eBook <케어> (아서 클라인먼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중국 속담에 과일자?日子라는 말이 있다. 한 가족의 행운을 지키기 위해서 책임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인간이 스스로 성숙하고 자아를 발견하는 길이 되기도 한다. 나는 초년에는 이 기술을 익히지 못했다. 그러다가 조앤이 사는 방식과 조앤이 나와 우리 가족을 돌보는 모습을 보면서 조금씩 배워나갔다. 조앤에게서 배운 교훈은 내가 아내를 돌볼 때 유용하게 쓰였다. 나는 실제로 돌봄을 실천하면서 돌보고 살피는 법을 배웠다. 이 시기에 이루어진 전환을 가장 간단하고 진실하게 설명하는 방법은, 내가 조앤을 닮은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일지도 모른다. 알츠하이머란 병에 잠식되기 전의 조앤을 이루고 있는 많은 특징들을 내가 그대로 물려받게 되었으니 말이다. 나는 조앤의 페르소나에서 좋은 부분만을 흡수해 내 것으로 만들었다. 남을 돌보는 마음, 달래는 마음, 세심한 관심 등을. 그녀처럼 타고난 우아함을 갖진 못했지만 그녀와 목적의식은 공유하며 나의 일부로 만들었다.

-알라딘 eBook <케어> (아서 클라인먼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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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케어 - 의사에서 보호자로, 치매 간병 10년의 기록
아서 클라인먼 지음, 노지양 옮김 / 시공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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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여성들은 당연히 남을 돌볼 줄 알아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과 문화적 기대 속에서 자란다. 그렇다고 해서 돌봄이 언제나 여성에게 더 자연스럽고 쉬울까? 아니다. 여성들 또한 서서히 돌보는 사람으로 변하고 성장한다. 돌봄은 관계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돌봄을 주고받는 일은 우리가 평생 선물을 주고받는 것처럼 관심, 애정, 실질적 도움, 감정적 지지, 도덕적 유대를 주고받는 일이며 그에 따라오는 의미는 인생의 수많은 일들과 마찬가지로 복잡하고 미완으로 남아 있기도 하다. 돌봄은 행동이고 실천이고 수행이다. 대체로 어떤 일에 대한반응이기도 하다. 각자가 처한 조건과 맥락에서 타인의 욕구와 나의 욕구에 어떻게 반응하는지가 돌봄이다. 돌봄은 불의의 사고와 부상을 헤쳐나가야 하는 사람들과 동행하는 일이다. 보필하고 보호하고 앞으로의 위험까지 준비하는 일이다.

-알라딘 eBook <케어> (아서 클라인먼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돌봄의 핵심은 옆에 있음,현존presence이다. 돌보는 사람과 돌봄을 받는 사람 모두 생생하고 온전한 자기 자신의 모습으로 서로의 곁에 존재하는 일이다.

-알라딘 eBook <케어> (아서 클라인먼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이 젊은 의사는 ‘원칙상’ 조앤에게 직접 전해야 하고 경험상 남편이 아내의 목소리를 억압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조앤과 나는 입을 모아 우리 부부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의사는 확고했다. 우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사무실에서 나왔고, 우리를 가족이 아니라 고립된 개인으로만 보려는 전문가에게 어떻게 상담과 진료를 받을 수 있을지 고민했다.

-알라딘 eBook <케어> (아서 클라인먼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사람들은 우리 삶에 들어왔다가 떠났다. 오래 믿고 의지하던 친구들과 연락이 끊겨서 실망했으나 이들은 이후 더 힘든 시기에 다시 나타나기도 했다. 가볍게 알았던 지인들이 기대하지 않았을 때 결정적인 도움을 주기도 했다. 이러한 양상은 밀물과 썰물처럼 몇 년간 계속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시간과 관계의 변화를 재구성하기는 쉽지 않다. 물론 항상 곁에 있었던 사람들은 가족인 피터, 앤, 우리 어머니 마샤로 거의 매일 연락했다. 우리는 함께 이 비정한 병증이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알아내려 애쓰고 있었다.

-알라딘 eBook <케어> (아서 클라인먼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엄마와 특히 각별했던 우리 아들은 한번은 엄마를 가족의 일상 안으로 들이기 위해 아빠가 더 노력하지 않는다면서 나에게 성을 냈다. 나는 아들을 비난하지 못했다. 어쩌면 나는 조앤의 침묵을 방치하고 내 시간을 갖고 싶었을지 모른다. 이는 많은 주 간병인에게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방어기제라 할 수 있다. 내 나름대로는 나만의 시간이 거의 없어 힘겨워하고 있었다. 아들의 공격이 정당했다고, 나는 나중에야 깨달았다. 조앤이 내게 해준 그 모든 일을 생각해 보라. 나는 이기적이었다. 아들과의 말다툼은 더 커졌다. 이때 딸이 우리 사이에 들어와 중재하려 했다. 나는 무너져서 울어버리고 말았다. 아들과 딸은 내게 다가왔고 우리 셋은 한참을 비통하게 울었다. 아이들은 나날이 나빠지는 엄마의 상태가 우리 부부 관계를 얼마나 망가뜨리고 있었는지 몰랐던 것이다. 그리고 그때 내가 지금 지고 있는 수많은 압박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아들과 딸에게 더 많이 의지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알라딘 eBook <케어> (아서 클라인먼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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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케어 - 의사에서 보호자로, 치매 간병 10년의 기록
아서 클라인먼 지음, 노지양 옮김 / 시공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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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1980년 첫 단독 저서로 《문화적 맥락에서 본 환자와 치유자Patients and Healers in the Context of Culture》를 출간했습니다. 대만에서의 질병 치료 경험과 민족지학적 연구를 바탕으로 집필한 이 책은 당시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책과 자료를 참고하면서 의료 시스템의 새로운 모델을 서구에 소개하고자 했습니다. 당시의 기준이던 공중 보건 모델과는 다르게 가족과 환자 스스로의 돌봄이 중요함을 강조했습니다.

-알라딘 eBook <케어> (아서 클라인먼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제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의료에서 질병과 돌봄의 경험이 도덕적으로나 감정적으로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2006년의 책 《당신의 삶을 결정하는 것들What Really Matters》에서는 건강과 사회복지 분야에서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로 이런 생각이 퍼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고통과 돌봄의 경험은 삶의 위협과 불확실성을 확인시켜 주기도 하지만 질병, 위험, 의심에 대처하면서 인내력과 정신을 강인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알라딘 eBook <케어> (아서 클라인먼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The Soul of Care》에서 나는 다시 이 주제로 돌아갔습니다. 조발성early-onset 알츠하이머를 앓다 2011년에 세상을 떠난 아내 조앤 클라인먼을 돌보는 사람으로서 나의 경험을 기록했습니다. 가족 간병인이 되어 돌봄에서 관계의 질이 얼마나 중요한지 직접적으로 체험했습니다. (우리는 46년 간 결혼 생활을 했습니다.) 서로의 곁을 지키면서 생성되는 존재감presence이 얼마나 중요한지 배웠습니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부부가 만난) 그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조앤과 내가 견딜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를 배웠고 그전에는 미처 몰랐던 심오한 진실을 깨달았습니다. 조앤은 떠났지만 그녀를 돌본 기억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알라딘 eBook <케어> (아서 클라인먼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조앤의 눈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아내는 이례적인 종류의 조발성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 이 고문과도 같은 사건은 카프그라 증후군Capgras syndrome의 전형적인 증상으로, 퇴행성 신경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망상이다. 환자는 친밀한 가족이나 친구를 알아보지 못하고 자신이 들어와 있는 물리적 공간이 비현실이고 가짜라고 여기기도 한다. 조앤에게는 대체로 단발성이고 몇 시간 만에 끝나며 쉽게 잊히기도 하지만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세상이 무너지는 일이다. 수십 년 동안 형성된 둘 사이의 유대감이 한순간에 깨진 유리 조각처럼 느껴지는 경험인 것이다.

-알라딘 eBook <케어> (아서 클라인먼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나는 훈련받은 정신과 의사다. 그러니 이 상황을 다룰 기술이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나는 그저 충격으로 몸서리치는 비참한 남편일 뿐이다. 암스테르담에서 그랬듯 아내의 섬망 증세는 이번에도 몇 시간 동안 지속되었다. 그 지옥 같은 시간 동안 나는 아내의 눈에 띄지 않는 구석에 숨어서 아내의 증상이 가라앉고 대화가 가능해질 때까지 기다린다. 그러나 나는 조앤의 간병인이고 주 보호자다. 어떻게든 조앤과 정상적인 대화를 해보려 노력하지만 계속 거부만 당한다. 결국 나는 다른 사람인 척하며 아내에게 어떻게 도울 수 있겠냐고 묻는다.

-알라딘 eBook <케어> (아서 클라인먼 지음, 노지양 옮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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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어떻게 일할 것인가
아툴 가완디 지음, 곽미경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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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잘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특히 그 일에서 실패라는 것이 너무 쉽고 흔하다면? 의대생 시절이나 레지던트 시절, 내 최대 관심사는 유능해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레지던트는 그날 내게 능력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똑똑히 보여 주었다. 그는 일반적인 폐렴의 발병과 치료에 관한 지식뿐 아니라, 특정한 환자가 특정한 순간에 어떻게 폐렴에 걸리는지 또 주어진 자원과 인력으로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관한 특수성까지도 이미 꿰고 있었다. - <어떻게 일할 것인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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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우리의 아픔엔 서사가 있다 - 하버드 의과대학 교수가 들려주는 온몸으로 삶의 무게를 견뎌내는 우리의 질병과 그 의미에 대하여
아서 클라인먼 지음, 이애리 옮김 / 사이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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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응석받이로 자랐습니다. 그래서 동네 아이들에게 원망을 많이 샀고, 그 애들은 제게 못되게 굴었죠. 제가 처음으로 경험한 모순은 부모님이 말씀해 주신 삶과 실제 제게 펼쳐진 삶 사이의 간극이었습니다."

-알라딘 eBook <우리의 아픔엔 서사가 있다> (아서 클라인먼 지음, 이애리 옮김) 중에서

어머니는 한 명의 독립된 여성으로서, 음악가로서 제가 하는 일에 관심을 보인 적이 없어요. 제가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 주지도 않으셨고요. 어머니는 직업을 갖거나 돈을 벌어야 할 필요가 없었던 분이에요. 중상류층이자 특권층 집안에서 자라셨으니까요. 아버지도 비슷하셨어요. 삶에 대해 더 많이 알고 계셨어야 했는데 말이에요. 집에서 나와 독립된 삶을 사는 데에 어려움을 느끼는 제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납니다.

-알라딘 eBook <우리의 아픔엔 서사가 있다> (아서 클라인먼 지음, 이애리 옮김) 중에서

환자와 그 가족의 설명 모델을 파악해 두는 행위는 의사가 치료 전략을 구상할 때 환자의 시각을 진지하게 고려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의사 역시 자신의 설명 모델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면 환자와 그 가족들이 언제 치료를 시작할지, 어떤 의사에게 어떤 치료를 받을지, 비용과 이익이 어떻게 되는지 등 보다 유용한 판단을 내리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양측의 설명 모델에 나타나는 두드러진 갈등을 환자와 의사가 함께 조율한다면 효과적인 치료를 가로막는 주요 장애물을 제거할 수 있으며, 열에 아홉은 더 공감이 되는 윤리적인 치료로 이어진다.

-알라딘 eBook <우리의 아픔엔 서사가 있다> (아서 클라인먼 지음, 이애리 옮김) 중에서

스틸 씨의 자녀들도 아빠의 질병을 각자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큰아들은 자신의 좋지 않은 학업 성적과 학습 장애 진단으로 아빠의 병세가 심해진 것인지 걱정했다. 둘째와 셋째는 자신들이 자주 싸우는 바람에 아빠가 점점 숨쉬기 어려워한다고 생각했다.

-알라딘 eBook <우리의 아픔엔 서사가 있다> (아서 클라인먼 지음, 이애리 옮김) 중에서

단어의 현대적 의미를 파악하는 데 어원설은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낙인stigma’이라는 단어는 다르다.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낙인은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는 표식을 가리켰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이 쓴 낙인에 관한 책은 만성질환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책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알라딘 eBook <우리의 아픔엔 서사가 있다> (아서 클라인먼 지음, 이애리 옮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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