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적 인식은 학문의 소재(Materie) 속에 침잠하여 그 소재가 스스로 전개하는 운동을 통해 앞으로 나가면서 이를 통해 자기 자신에게로 복귀한다.(39쪽, 13~14행)-알라딘 eBook <헤겔의 정신현상학> (이병창 지음,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 중에서 - P54
헤겔은 우선 개인의 자아에 대립하는 소외된 정신적 본질의 세계에서 출발한다. 여기서 개인은 자기를 교양하면서 자신을 정신적 본질에 일치시키는 것을 통해 소외를 극복한다-알라딘 eBook <헤겔의 정신현상학> (이병창 지음,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 중에서 - P113
칸트 도덕철학의 출발점은 준칙이다. 준칙이란 한 사회에 널리 퍼진 행위 규칙을 의미한다. 칸트는 경험적으로 완전한 일반성을 지닌 준칙을 발견하기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경험은 개별적이므로 아무리 많은 경험을 겪더라도 개연성을 얻을 뿐 일반성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알라딘 eBook <헤겔의 정신현상학> (이병창 지음,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 중에서 - P140
이 점에서 칸트는 행위의 동기를 중요시한다. 행위가 도덕법칙을 따를 때 진정으로 도덕적으로 된다는 것이다. 그는 비록 행위가 결과에서는 도덕법칙과 일치하더라도 이는 합법적(Legalt.t)일 뿐이며, 동기에서 도덕법칙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면 도덕적(Moralit.t)이라 할 수 없다고 말한다.-알라딘 eBook <헤겔의 정신현상학> (이병창 지음,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 중에서 - P141
칸트의 도덕적 자유의지(헤겔의 용어로는 ‘도덕적 [자기]의식’)는 왜 의무라는 형식으로 출현할까?-알라딘 eBook <헤겔의 정신현상학> (이병창 지음,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 중에서 - P142
전치 또는 전위(displacement)라는 개념은 정신분석학에서도 자주 사용된다. 예를 들어 어린아이가 자기의 잘못을 다른 아이의 잘못으로 바꾸는 것을 말한다-알라딘 eBook <헤겔의 정신현상학> (이병창 지음,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 중에서 - P150
b소절에서 전치란 의무론이 하나의 계기를 본질로 여기다가 이로부터 필연적으로 자신과 대립하는 계기를 본질로 여기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알라딘 eBook <헤겔의 정신현상학> (이병창 지음,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 중에서 - P150
https://m.blog.naver.com/syeong21/223693886077하지만 철학을 새롭게 만나면서 새로운 눈으로 철학을 보기 시작했다. 내가 진실로 철학을 좋아했구나 싶다. 다시는 헤어지고 싶지 않은 연인을 만난 기분이랄까. 앞으로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저는 철학과 데이트합니다.” 철학과 연애가 시작되었다. 특히 앞으로는 레비나스 철학과 데이트를 하려고 한다. 강남순 교수의 『데리다와 데이트』를 통해 “데이트”라는 메타포가 철학 공부에 참 좋은 장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 데리다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지만, 데리다 역시 레비나스에게 큰 관심이 있었던 철학자였다. 『데리다와 데이트』는 데리다 철학을 “데이트”라는 메타포로 접근하는 방법을 알려주었을 뿐 아니라, 레비나스 철학이 현대 프랑스 철학자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를 새삼 깨닫게 해주었다.
존재와 탈이해관심의 동시적인 수립인 것이다. 자기를 위해는 자법이다. 자기의식을 의미화한다. 모두를 위해는 타자들에 대한 책임을, 우주의 떠받침을 의미화한다. 앞선 개입 없이 응답하는 이와 같은 방식, 즉타인에 대한 책임은, 인간의 형제애 그 자체이고, 자유에 선행하는 것이다. 근접성 속의 타자의 얼굴이것은 재현 이상의 것인데ㅡ은 재현할 수 없는 흔적, 무한의 방식이다. 그것은 존재들 가운데 자아가 목적을 좇는 한 존재로서, 즉 존재가 의미작용을 장악하여 우주가 된다는 목적을 좇는 한 존재로서 실존하기 때문이 아니다. - P253
타자와의 관계가 소통과 초월일 수 있는 것은, 또 그것이 확실함을 추구하는 또 다른 방식이나 자기와의 일치coincidence가 아닐 수있는것은, 자기로 이해된 주체성에서 출발해서다. - P259
소통이 자유로운 주체인 자아에서 시작하는 것이라면 소통은 불가능할 것이다. 이 자아에게, 모든 타자는 제한일 뿐이다. 전쟁, 지배, 주의, 첩보 등으로 이끄는 제한일 뿐이다. 소통한다는 것,그것은 분명 자신을 여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열림이 인식을 노리Jo 1261는 것이라면, 그것은 온전치 못하다. 열림이 온전한 경우는 그것이 "스펙터클"에, 또는 타자에 대한 인식에 열릴 때가 아니라, 타자에 대한 책임으로 이뤄질 때다. - P260
현상학은 다가감을 기술하는 가운데 주제화를 무-시원으로뒤집는 길을 따를 수 있다. 윤리적 언어는 현상학이 느닷없이 내던져져 있는 역설을 표현하기에 이른다. 왜냐하면 윤리는 정치적인것을 넘어서서 이 뒤집음의 수준에 있기 때문이다. - P264
우리는 이것을 원죄 상태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반대로 그것은 창조의 본래적 선함이다. 박해받는 자는 언어로 자신을 방어할 수 없는데, 왜냐하면 박해는 변명의 자격을 박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박해란 주체가 로고스의 매개 없이 공격당하거나타격을 입는 바로 그 계기를 뜻한다.2) - P265
열림에 대한 강조가 대신함에까지이르는 타자를 위한 책임이라는 것, 탈은폐의 타자를 위함, 타자에게 드러남이라는 타자를 위함이 책임의 타자를 위함으로 변한다는 것, 이것이 바로 이 책의 주제다. 소통의 열림은 진리를 자기 속에서 유지하는 대신 바깥에 위치시키기 위해 단순히 자리를 바꾸는 것이 아니다. 놀라운 것, 그것은 진리를 바깥에 놓는다는 발상또는 광기다. 소통은 단순히 덧붙여지는 것인가? 그게 아니라 자아란, 즉 동일한 것의 견고함안에서의 대신함이란, 타인에게 연대 자체를 증언하는 데서 출발하는 연대이지 않은가? - P260
여기서 문제는 어떤 결과가 자신의 원인을 겪는다는 것이 아니다. 주체적인 것은 겪을 뿐 아니라 고통받는다. 고통스러움은 겪음 뒤편의 "음의 크기를 가진 어떤 거리다. - P192
대상이 들어서는 결합과는 다르다. 알려진 것이 탈은폐되고 전시되는 것을 넘어, 놀래고 놀라게 하는, 놀라운 현존과 이 현존의퇴가 교대로 이어진다alterner. 이 후퇴는 현존의 부정이 아니며, 기"억이나 현실화 속에서 되찾을 수 있는 현존의 순수한 잠복도 아니다. 그것은 이타성이다. 거기에는 (상호적인 것의 공시성 안에 자리 잡은 종합으로 모이는) 현존 또는 과거와 공통적인 어떤 척도도 없다. - P196
내 책임에 명해졌지만 내가 놓친, 잘못한 그자신의 흔적, 그의 죽을 수밖에 없음이 내 책임이고 내가 살아남은 것이 내 죄인듯한 그의 흔적-이것이 얼굴이다. 얼굴은 직관적 지향의 올곧음에 주어진 이미지의 직접성보다 더 팽팽한 무시원적 직접성이다. - P198
그 사태는 이웃을 완전히 내게로 몰아붙인다. 직접성, 그것은얼굴에 재현이 없음이다. 그 얼굴은 세계에서, 지평에서, 조건에서뿌리 뽑힌 "구체적 추상"이다. 여기서는 타자를위한-일자가 맥락 없는 의미작용에 새겨진다. - P199
강박의 수동성에서 의식은 이웃으로부터 오는 떠맡을 수 없는 소환을 더 이상 숨기지 못한다. 이 수동성은 순진한 의식에 대한, 즉 철학 이전의 직접성에 대한 다른 이름이 아니다. 정반대로그 수동성은 에고의 순진한 자발성을 문제 삼는다. 그것은 가장근본적인 문제 삼기다. - P200
자기로 돌아오는 것은 언제나 새로이 자기를 스스로 비우는 것이고, 혈우병의 출혈에서처럼 자기를 용해하는 것이다. 여전히 동일화 가능하고 보호받고 있는 자신의 핵 결합이편에서, 어떤 이라는 준형식적quasi-formel 정체성에 이르기까지자기를 용해하는 것이다. - P200
언어적 방식에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모든 논의가 그것을 둘러싸고 조직되는애매한 지점을 건드리고 있다. 말해진 것을 언표하는 말함은 감성적인 것 속에 있는 최초의 "능동성"으로서, 이 능동성은 이것을 저것으로서 포착해낸다. 그러나 이 포착과 판단과 주제화와 이론의능동성은 그 말함 속에서 순수한 "타인을 위함으로서, 순수한 기호의 부여로서, 순수한 "기호되기"se-faire-signe로서, 순수한 자기표현으로서, 순수한 진정성으로서, 순수한 수동성으로서 출현한다. - P138
다시 복구하는 운동으로 귀착시키고자 했다. 하지만 그런 식의 자기 회수, 재정복, 대-자pour-soi가 생동시키는 것은 여전히, 실체의바탕에서 인지된 주체성이다. 즉, 존재성은 자신의 코나투스를 빠져나가지 못한다. 감성의 주체성, 육화인 주체성은 복귀 없는 포기이며, 타자를 위해 고통을 견디는 모성의 몸이다. - P173
적 의미를 가질 것이다. [반면에] 근접성의 절대적이고 고유한 뜻은 "인간성"을 전제한다. 우리는 이렇게 물어볼 수도 있다. 과연 인접성 그 자체가 근접성 없이, 즉 다가감, 이웃함, 접촉 없이 이해될 수있는가? 그리고 이 공간의 동질성이 모든 차이에 맞서는 정의의 인간적 의미작용없이, 따라서, 정의가 그것의 항인 근접성의 모든 동기작용 없이 이해될 수 있는가? - P176
근접성은 하나의 상태나 휴식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불안정이고, 비장소이며, 휴식처의 바깥이다. 이것은 한 자리에서 휴식을 취하는 존재의 비-편재가 누리는 평온함을 뒤엎는다.따라서 근접성은 포옹처럼, 언제나 불충분한 근접성이다. "충분히가깝지 못하므로", 근접성은 구조로 굳어지지 않는다. - P1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