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란 놈은 매우 경쟁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경쟁적이라는 게 잘만 승화하면 나쁠 거야 없겠지만, 그게 '술'에만 국한된다는 게 문제다. 누군가 내게 '술한잔 하자'라고 말을 건네면, 난 그걸 '한판 붙자'는 메시지로 해석을 하고, 누군가 내게 잔을 부딪혀 오면 '오늘 한번 해보자'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한창 때인 십여년 전, 난 내 옆에 앉아있던 주당에게 "2분마다 원샷합시다"라는 제안을 했다. 우리는 진짜로 시계를 봐가면서 소주 한잔씩을 마셔댔는데, 아무리 비워도 그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공포심이 들어 몸이 떨리는 차에 그가 나를 툭 치며 말했다. "2분 됐는데요"   그날 어떻게 집에 갔는지 물론 기억에 없다. 담을 넘다가 긁힌듯한, 10센티 길이의 상처가 내가 어떻게 집에 왔는지를 말해 줬을 뿐.

그런 경험은 사실 부지기수다. 내가 술을 마신 역사는 사실 술대결의 역사니까. 유유상종이라고, 술대결을 즐기는 내 곁에 묘하게도 그런 사람들이 많은 탓이다. 13잔을 스트레이트로 원샷을 하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상대의 모습에 질려 '화장실에 간다'고 도망쳤던 부끄러운 기억도, 오징어 다리 하나가 남았다며 소주 한병을 더 시키려는 친구의 팔에 매달려 "살려달라"고 빌었던 비참한 기억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런 패배의 기억들을 상기하며 더욱 열심히 몸을 만들곤 하지만, 이젠 은퇴할 때가 된 것 같다. 물론 아무리 많이 마셔도 다음날 속이 편하고 멀쩡하며, 새벽같이 일어나 출근을 하는 걸 보면 아직 난 늙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날의 생생함이 전날의 참패를 상쇄시키지 못할 터, 최근의 대결에서 번번히 정신을 잃은 걸 보면 아무래도 대결적 술마시기는 그만둬야 할 성싶다.

어제도 그랬다. 여자 셋, 남자 둘이 그 중 하나의 집에 모여 삼겹살을 구워먹으며 소주를 마셨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한명이 3.6.9를 제안했고, 걸린 사람은 원샷을 했다 (도대체 내 주위에는 왜 이런 사람들이 많단 말인가!). 난 3.6.9의 달인이었지만, 3.6.9가 너무 쉽다며 했던, 3.6.9의 원형인 고.백.점프에서는 숱하게 걸렸다. 하두 오랜만에 해서 예전의 감각을 찾지 못한 탓이다. 그래도 종합적으로 따진다면 가장 우수한 성적, 다시 말해서 술을 가장 덜 마셨다는 얘기다. 그런데.... 어떻게 그 집을 나왔는지, 집에는 어떻게 왔는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들 중 하나로부터 "잘 들어갔냐"는 전화를 받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우리집이었고, 벤지는 한심하단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문제는 그때 시각이 9시 반밖에 안됐다는 것. 그렇다면 난 언제쯤 맛이 간걸까. 거기서 우리집까지 40분은 족히 걸리니, 8시도 되기 전에 취해 버렸나보다. 혹시 실수는 안했을까, 하는 생각에 몸은 편하지만 마음은 편치않다.

스스로는 계속 부인하지만, 난 더이상 젊지 않다. 이런 대결적 술마시기에서 이제 그만 은퇴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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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4-02-10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화이팅을 외쳤건만...소용이 없었군요. 남들 퇴근길에 섞여 의연한 모습으로 돌아왔어야 할텐데 말입니다. 전 대학 1학년 때, 한참 주량 늘리는 재미로 못이기겠다, 싶으면 화장실에서 응급조치(도로 내놓는^^;;;;)까지 해가며 전투를 벌였는데...부실한 관계로 그런 행각은 1년으로 마무리해야 했습니다. 짧았기에 승전보도 많았지만(혹시, 소주 병나발 완샷 해보셨습니까?ㅋㅋㅋ) 그만큼 아픔도 컸지요.TT 제가 필름이 끊기고도 너무도 멀쩡한 주벽이 있어, 선배들은 겉보기에 헤롱거리는 것들 챙겨 떠나고, 정신 차려보면 길바닥 전신주 옆이었던 것이 한 두번이 아닙니다.(울 엄니아부지가 이 사실을 알면...으으으)
지금은, 몸도 안되고, 술 먹을 시간도 많지 않으니... 보양주로 취해가는 것을 즐기며 마십니다. 새삼, 술은 안 취하려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취하려고 마시는 것이다...는 사실을 깨달은 지금, 주량은 줄었어도 진정한 술자리의 재미를 알아가고 있는데요. 님도 은퇴하시면 저와 같이 백세주나 가시오가피주 한 잔 하시죠.^^

비로그인 2004-02-10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보고 놀라서 뛰어왔더니, 역시나 어제도 패배셨군요...^^ 전에 술마시다 필름이 끊기기 시작하면 위험한 징조니, 술을 줄여가야한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마태우스 님 정말 은퇴하셔야 되는 걸까...ㅎㅎ 진우맘님 경험담도 재밌네요...^^
 

 

 

 

 

 

동성애 사이트를 청소년 유해매체목록에서 삭제한 일에 대한 토론이 있었다. 사실 난 동성애가 유해사이트에 등재된 사실도 몰랐었는데, 어찌되었건 인권위의 권고로 그게 삭제된 것은 이 사회가 느리긴 하지만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토론자의 면면은 다음과 같았다.
<찬성>
유지나 (동국대학교 영화영상전공 교수)
홍승기 (변호사)
<반대>
김성천 (깨끗한 미디어를 위한 교사운동)
전원책 (변호사)

사실 동성애라는 건 옛날부터 있어온 것이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파김치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배추김치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파김치를 먹는 사람이 소수라 해서 "안돼! 배추김치를 먹어야 돼!"라고 윽박지를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왼손잡이를 탄압한 역사를 가진 우리 사회에서는 동성애가 자연스러운 성적 취향이라기보다, 꾸짖어서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할 대상이 된다. 동성애를 치유의 대상으로 보는 김씨의 말을 들어보자. "성적지향의 혼란으로 방황하는 청소년을 이성애로 계도해야 한다!"
전씨의 말이다. "동성애가 그럼 정상입니까?"
그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동성애는 억압적 아버지로부터 외상을 입어서 발생한 것" 아니 무슨 동성애가 질병인가? 난 어릴 적 아버지한테 그렇게 두들겨 맞았지만, 누구보다 여자를 좋아하는데?

유해물 삭제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청소년을 백지상태며,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밖에 보지 않는다. 그들에게 있어서 청소년은 언제나 미성숙하고, 자신이 이끄는대로 나가는 존재다. 과연 그럴까? 방청석에 나온 청소년의 말이다. "동성애에 관해 다들 알고 있다. 별로 낯설지 않다" 인터넷에 올라온, 청소년으로 짐작되는 사람의 말이다. "우리반에 동성애자가 몇 있지만, 다들 잘 지낸다" 그렇다. 전씨야 동성애자를 동물 보듯이 보는 미성숙함을 과시하지만, 청소년들은 동성애를 삶의 다양한 양식 중 하나로 포용한다. 과연 누가 더 미성숙한가?
유지나: 청소년이 왜 백지상태냐?
전씨: 난 그당시 백지였다.
유지나: 전 아니었는데요? (방청석, 웃음)
하는 말로 보아 전씨는 그당시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였나보다. 하지만 그는 왜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하는 걸까?
김씨는 청소년기에 자신의 성적취향을 알 수 없다고 하지만, 그가 인용한 자료만으로도 그건 충분히 반박된다. "서울대에서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동성애자의 51%가 대학에 간 이후에 성적취향을 알게 되었다고..."
그럼 나머지 49%는 그 전에 알았다는 얘기잖아? 방청석에 나온, 겸이라는 동성애자의 말이다. "저는 중학교 때 알았어요... 정보도 구할 수 없고...자살도 생각했어요....주변에는 아웃팅을 당해 폭력, 따돌림을 당하는 애들도 있어요"

이런 게 과연 바람직한 걸까? 청소년기가 백지상태라는 데는 동의하지 않지만, 올바른 가치관을 함양해야 할 시기인 것은 틀림없다. 그러니 더더욱 동성애에 관한 진실을 알려줄 필요가 있는 건 아닐까? 세상에는 다양한 삶이 존재한다는 걸 어렸을 때부터 가르쳐주지 않는다면 이런 사람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토론에 나온 학부모를 보자. "전 동성애를 가지고 왈가왈부한다는 것 자체가 불쾌해요. 이 프로로 인해 동성애를 모르던 애들의 호기심을 부추겨...." 난 이런 인간이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불쾌하다. 말하는 기세로 보아 이분의 자녀가 동성애자라면, 패 죽이겄네? 동성애를 알면 호기심 때문에 동성애자가 된다? 보라. 이분은 동성애에 관해 이토록 무지하다.

동성애를 음란, 변태스러운 괴물로 만든 건 다름아닌 이성애자들이고, 그들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허상을 빌미로 동성애를 탄압한다. 이런 상황이니, 네덜란드처럼 동성애자간에 결혼도 할 수 있는 나라도 있는 반면, 우리나라 동성애자들은 음지에 숨어 자신을 속이면서 살아야 한다. 한술 더떠서, 이성애자들은 그들이 음지에 숨는 걸 동성애가 범죄라는 얘기라고 강변한다. 위에서 언급한 학부모가 겸이에게 한 말을 보자. "왜 이름을 안밝히죠? 동성애가 그렇게 당당하다면 이름을 밝혀야죠!" (언젠가 혼전동거에 관한 토론을 할 때, "남이 먹다만 수박을 누가 먹겠냐"는 주장을 폈던 엄앵란 씨도 어렵게 나온 혼전동거자에게 그런 말을 했었다)

전씨의 말처럼 열린사회라는 게 무조건 좋은 건 아니겠지만, 우리 사회는 닫혀도 너무 닫혀 숨이 막힐 지경이다. 우리, 제발 숨 좀 쉬고 살자.

사족: 토론할 때 보니까 전씨는 아주 나쁜 버릇을 가지고 있더만. MC가 질문을 하면 꼭 관계없는 얘기를 장황하게 한다. MC가 "제가 한 질문은 그게 아닌데.."라고 끼어들면, "지금 그 말씀을 드리려고 하는 중입니다"는 말을 한다. 물론 그 다음에 한 얘기도 별 관계가 없는 말이고, 그런 게 한번이면 몰라도 무려 3번인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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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월의꿈 2004-02-09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0인토론에서 이런 주제로 토의를 했군요. 아- 그렇다면 볼것을 그랬습니다.(볼까말까하다 안봤는데ㅠ-ㅠ;)인터넷으로 다시 볼 수 있겠지요?
...동성애.. 왈가왈부하지 말고 그 분들을 좀 놔 드렸으면 합니다. 다수와 취향이 다르다고해서 숨도 못쉬고 살아가는 사람들이..(고통은 모르지만) 안됐네요..

갈대 2004-02-09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닫혀도 너무 닫혀 숨막힐 지경이란 말에 200% 동감 +_+

마태우스 2004-02-09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월의 꿈님/오랜만에 오셨네요? 정말 님 말씀대로 그분들을 놔 드렸으면 좋겠어요.
갈대님/부끄러워요....<--누가 칭찬해 주면 습관적으로 하는 말입니다.^^

겨울 2004-02-09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놓친 것이 안타깝네요. 유해물에서 삭제되었다는 소식 신문에서 접하고 박수를 친 게 어끄제인데 100인토론 단상에까지 올랐다니 정말 무섭군요. 타인의 성적정체성을 놓고 이러니 저러니 하는 것 자체가 상처 아닙니까? 우리나라에서도 동성애문학이 활성화되어 햇빛 찬란한 공간으로 나왔으면 좋겠어요. 보다많은 영향력있는 사람들이 커밍아웃을 하는 것도 한 방법이 아닐까요. 가령 간달프역의 이안 맥컬린처럼요.
 

 

 

 

 

 

"민아, 실미도 재밌냐?"
어머니의 난데없는 질문에 난 좀 당황했다. 어머니가 <실미도>를 어떻게 안담? 왜 그런 걸 묻지?
"친구들이 보자고 그래서 월요일날 아침에 보기로 했는데, 갈까 말까 망설이는 중이야"

순간 난 너무도 죄송한 마음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난 왜 어머니는 영화 같은 걸 생전 안보신다고 생각을 했을까? 재미있는 영화가 있으면 어머니한테 같이 보러가자고 할 수도 있는 건데, 왜 난 꼭 젊은 여자랑만 영화를 봐야 한다고 생각한 걸까. 어머니는 TV로 <완전한 사랑>'이나' 보면서 눈물짓는 존재라는 고정관념이 내게 있었던 건 아닐까.
"어머니, 그거 꼭 보세요. 정말 재미있어요. 어머니 보시면 좋아할 거예요"

<실미도>에 대해 이런저런 비판의 소리가 있기는 하지만, 난 그렇게 대답했다. 나나 어머니나 그 안에 숨어있는 위험한 이데올로기를 볼만큼 예리한 비판의식의 소유자는 아닐 테니까. 눈물이 유난히 많은 어머님이시니, 영화 주인공들에게 동화되어 그들의 장렬한 최후에 눈물을 흘리시지 않을까?

"돈도 돈이지만, 두시간 동안 앉아있는 게 시간이 아까워서..."
시간 타령을 하지만, 난 안다. 돈이 아까워서 그러는 걸.
"아네요 엄마. 6천원으로 두시간 동안 즐길 수 있는 건 영화밖에 없어요. 그리고 영화보는 건 대표적인 문화생활이라구요"

학창시절엔 그래도 잘나가셨던 우리 어머니는 틈만 나면 극장을 찾던 영화광이셨단다.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를 비롯해서 <맨발의 청춘> 등등 그 당시 했던 영화는 안본 게 없단다. 그런 어머니가 결혼을 하고 우리 넷을 낳고나서 영화를 비롯한 모든 문화예술과 담을 쌓게 된 거다. 사회에 대해서도 관심을 끊고 사셨기에 자식들로부터 "엄만 몰라도 돼!"라는 말을 수시로 들으셔야 했다.

어머니는 뉴스를 보다가 내게 가끔씩 질문을 던진다.
"민아, 열린우리당은 원래 어디 있던 당이냐?" "실미도라는 섬이 진짜로 있다냐?"
어머니가 이렇게 된 건 우리들을 기르느라 애쓰신 탓이지만, 난 그런 질문을 받으면 웃음부터 난다. 그리고 이렇게 면박을 준다. "아유 엄마, 그것도 몰라?" 지금 생각하니 그렇게 건성으로 설명을 하곤 했던 내 자신이 부끄럽기 짝이 없다.

앞으로는 어머니께 재미있는 영화가 나오면 보시라고 권해 드려야겠다. 그런데 어머니랑 영화를 같이 보는 것은 가능할까? 생각만 해도 왠지 쑥스러운 기분이 든다. 그게 나빠서가 아니라, 엄마랑 같이 극장에 온 사람을 별로 보지 못해서다. 다른 사람들이 "쟤좀 봐. 애인이 없으니까 엄마랑 왔나봐"라고 놀릴까봐 무섭기도 하다. 그래, 영화를 같이 보는 건 좀 무리인 것 같다. 어머니도 각시 대신 당신과 극장에 가는 아들이 안스럽겠지. 하긴, 우리 어머니는 친구도 많으시니, 좋은 영화를 추천해 주는 것만도 충분히 훌륭한 일일 것이다. 엄마, <실미도> 재미있게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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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 2004-02-08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끄럽습니다. ㅠ_ㅠ

비로그인 2004-02-08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무척 찔리네요...특히 엄마한테 건성으로 대꾸하고 했던 모습이...엄마가 일부러 연예정보 같은거 알아오셔서 얘기꺼내시고 하면, 인터넷서 이미 다 봤어요-라며 시큰둥하고 했거든요...반성!!

마태우스 2004-02-09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갈대님/아네요, 제가 더 부끄럽죠
영이님/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말씀 감사드려요.
앤티크/음... 갑자기 "우리 모두 반성합시다"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앤티크님 이미지를 보니 어머님께 노경을 사드리고 싶어지는군요^^

비로그인 2004-02-09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경이...뭔지요?? ^^;;

만월의꿈 2004-02-09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반성합니다ㅠ-ㅠ; 엄마가 뭔가를 물어보면 항상 건성으로 대답했던것..
앞으로는 꼬박꼬박 자세하게 알려드려야 하겠죠^-^;

마태우스 2004-02-10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뒷얘기: 어머님은 <실미도>를 너무 재미있게 보셨답니다. 다음주에는 <태극기>도 보기로 하셨다네요. 어머님의 인생은 이제 시작입니다!!!
 

 

 

 

 

 

신문을 보니 노무현이 종친회 사람들과 오찬-오찬이 뭘까? 까마귀 반찬? 아님 반찬이 다섯가지?-을 함께 했단다. 야당에서는 그걸 두고 "총선용"이라고 비난한다. 하기사, 선거 때가 아니면 종친회 사람을 왜 만나겠는가? 궁금한 건 그게 총선용인가 아닌가가 아니다. 난 종친회라는 곳이 도대체 뭘 하는 곳인지 모르겠다. 모임이란 뭔가 목적이 있어야 하는데, 단순히 성과 본관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모임이 될까? 숫자가 얼마 안되는 '편'씨나 '판'씨면 전혀 말이 안될 게 없지만, 전주이씨 종친회 같은 사람들은 누가, 어떻게 모이며, 뭘 하는지 정말 궁금하다. TV에서 보니 사무실도 따로 있던데...

어쨌거나 무슨무슨 종친회 그러면 난 일단 숨이 막힌다. 듣기만 해도 '고리타분' '수구' 이런 단어들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언젠가 문신에 관한 찬반의견을 TV에서 한 적이 있다. 문신을 반대하는 측 의견을 듣기위해 기자가 찾아간 곳은 유명한 모씨 종친회. 그들이 하는 말은 '역시나'였다. 그들은 문신을 "범죄자들만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고, "혐오감을 조장하는 반사회적 행위"로 규정했다.

종친회1: 문신하는 애들은 군대 보내면 안되. 우리편 사기가 떨어지잖아.

종친회2: 아냐. 혐오감을 주니, 최전방에 보내면 적들이 놀라지 않을까?

물론 난 문신을 좋아하지 않고, 내가 할 생각도 없다. 하지만 문신이란 게 자기 몸을 이용해 뭔가를 표현하는 것이며, 그건 전적으로 그 사람의 자유고, 그로 인해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생각은 한다. 문신을 했다고 군대를 못가게 한다는 건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다. 조폭들이 문신을 많이 하는 건 사실이지만, 문신을 했다고 다 조폭은 아니잖는가?

기자는 종친회 회장의 집에 찾아갔다. 그의 부인 역시 문신에 적대적이었고, 마루를 닦고있던 며느리도 "그런 걸 왜하느냐"며 질색을 한다. 원래부터 그런 사람을 뽑은 것인지, 아니면 들어와서 세뇌시킨 건지, 투철한 사상으로 무장되어 있는 그들을 보면서 숨은 어떻게 쉬고 사는지 측은해졌다. 모르긴 해도 그들은 몇십대 조상까지 제사를 아주 자알---모실테고, 남자들은 부엌 근처에 얼씬도 하지않을 것이다.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 이런 철학이 가장 잘 구현되는 곳이 그집이 아닐까.

그러고보니 호주제 폐지 얘기만 나오면 갓쓰고 나와 시위를 하는 것도 그들이 아닌가. 예비군 동대장들 때문에 향토예비군 제도를 없애지 못하듯, 시대착오적인 호주제가 유지되는 것도 다름아닌 종친회 때문이리라. 표심을 좌우하는 종친회가 버티고 있는데 어느 의원이 감히 호주제 철폐를 주장하겠는가.

호주제 폐지의 전도사 고은광순의 말대로 '면면히 이어져내려온 성씨'는 허구다. 난 서씨와 김씨의 자손이며, 아버지는 서씨와 김씨, 어머니는 김씨와 임씨의 자손, 이런 식으로 10대만 거슬로 올라간다면 나란 놈이 수많은 성씨로부터 비롯된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우리의 성씨라는 것도 중국과 교통하게 되면서 신라 귀족이 중국을 모방해 성씨를 사용한 것이며, 조선시대 중반까지 양반이 아닌, 즉 인구의 절반 가량이 성씨가 없었"단다. 족보가 가장 많이 만들어진 것은 바로 일제 강점기, 상황이 이럴진대 성씨라는 게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는가. 종친회라는 게 필요한 시기도 없진 않았겠지만, 인터넷과 휴대폰으로 모든 이가 연결되는 21세기까지 종친회가 힘을 쓰는 현실은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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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nyside 2004-02-07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성씨란건 다분히 허구적입니다. 난 울 엄마랑 똑같이 생겼는데, 성이 다르죠.. 대전에는 '성씨 공원'이란게 있는데요, 각 성씨를 나타내는 조형물이 늘어서 있답니다. 가족끼리 놀러간 그곳에서, '진주 정씨' 조형물 앞에서 소외되었던 울 엄마를 보며 씁쓸했던 기억이 나네요.

겨울 2004-02-07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소외된 어머니의 성씨를 이름의 맨 앞에 놓는 일을 실천하려합니다. 서명에서부터 시작해야죠. 어떤 성과 어떤 성의 아들 혹은 딸로 인지되는 것은 평화로운 공존의 향기가 납니다.

진/우맘 2004-02-09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찬 - 여느 때보다 잘 차려 먹는 점심. 주찬(晝餐).
이라는군요. 저도 오찬, 오찬하면 아침밥인지 낮밥인지 언제나 헷갈리던 차에, 찾아봤습니다.^^
 

 

 

 

 

 

<느림>이란 책에서 쿤데라는 이런 말을 한다. "모든 걸 결정하는 것은 바로 목소리"라고. 여러 사람이 모였을 때, 낮으면서도 부드럽고, 감미롭고, 힘차게 울리는 목소리를 가진 자는 좌중의 관심을 끈다는 얘기다. 반면 이 책에 나오는 벵상처럼 목소리가 여리고 뾰족한 사람은 말을 시작해도 잘 알아듣지 못하며, 그래서 언성을 높일 수밖에 없고, 사람들은 그가 고함을 지른다고 생각을 한다. 나는 벵상과 같은 과, 그래서 여러 명이 모인 자리에서 긴 얘기를 못한다. 내가 뭔가 얘기를 시작하면 누군가 이런다.

"참, 오늘 야구 어떻게 되었지?" 그러면 사람들은 내 얘기를 무시하고 거기에 관해 얘기한다. 그때의 비참한 심정은 당해보면 안다. 난 그게 내가 말을 조리있게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알고보니 목소리 탓이었다는 걸 쿤데라 덕분에 알게 되었다. 하긴,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높은 목소리로 대답하는 날 물끄러니 바라보다 이렇게 말씀하셨으니까. "넌 목소리가 왜 그러냐?"

하지만 어쩌랴. 목소리는 바꿀 수 없는 것을. 그럼 난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한단 말인가? 쿤데라가 다른 책에서 목소리가 안좋은 사람이 주목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해주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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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2-08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좌중의 주목을 쉽게 받는 목소리와, 그렇지않은 목소리가 있다는 생각은 들어요. 전 그차이가 목소리에 실린 '기'때문이라고 생각했었는데...ㅎㅎ

마태우스 2004-02-08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라구요. 그것도 일리가 있는 말 같네요. 전...'기'도 없어요. 식당 같은데서 제가 종업원을 부르면 온적이 거의 없거든요.

진/우맘 2004-02-09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랬구나... 저도 높고, 가늘고, 여린데다가...좌중의 주목을 받겠다고 목에 힘을 줄라치면 바르르 떨려서 "왜 우냐?"는 질문을 받는, 최악의 목소리입니다.
그래도, 이런 목소리가, 시낭송이나 성경 낭독이나 나레이션에는 득이 될 수도 있답니다. 힘내세요.(하지만...마태우스님은 남자였지...ㅋㅋㅋ)

보이스 2011-05-21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폴포츠같은 목소리를 원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