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사이트를 청소년 유해매체목록에서 삭제한 일에 대한 토론이 있었다. 사실 난 동성애가 유해사이트에 등재된 사실도 몰랐었는데, 어찌되었건 인권위의 권고로 그게 삭제된 것은 이 사회가 느리긴 하지만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토론자의 면면은 다음과 같았다.
<찬성>
유지나 (동국대학교 영화영상전공 교수)
홍승기 (변호사)
<반대>
김성천 (깨끗한 미디어를 위한 교사운동)
전원책 (변호사)

사실 동성애라는 건 옛날부터 있어온 것이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파김치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배추김치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파김치를 먹는 사람이 소수라 해서 "안돼! 배추김치를 먹어야 돼!"라고 윽박지를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왼손잡이를 탄압한 역사를 가진 우리 사회에서는 동성애가 자연스러운 성적 취향이라기보다, 꾸짖어서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할 대상이 된다. 동성애를 치유의 대상으로 보는 김씨의 말을 들어보자. "성적지향의 혼란으로 방황하는 청소년을 이성애로 계도해야 한다!"
전씨의 말이다. "동성애가 그럼 정상입니까?"
그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동성애는 억압적 아버지로부터 외상을 입어서 발생한 것" 아니 무슨 동성애가 질병인가? 난 어릴 적 아버지한테 그렇게 두들겨 맞았지만, 누구보다 여자를 좋아하는데?

유해물 삭제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청소년을 백지상태며,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밖에 보지 않는다. 그들에게 있어서 청소년은 언제나 미성숙하고, 자신이 이끄는대로 나가는 존재다. 과연 그럴까? 방청석에 나온 청소년의 말이다. "동성애에 관해 다들 알고 있다. 별로 낯설지 않다" 인터넷에 올라온, 청소년으로 짐작되는 사람의 말이다. "우리반에 동성애자가 몇 있지만, 다들 잘 지낸다" 그렇다. 전씨야 동성애자를 동물 보듯이 보는 미성숙함을 과시하지만, 청소년들은 동성애를 삶의 다양한 양식 중 하나로 포용한다. 과연 누가 더 미성숙한가?
유지나: 청소년이 왜 백지상태냐?
전씨: 난 그당시 백지였다.
유지나: 전 아니었는데요? (방청석, 웃음)
하는 말로 보아 전씨는 그당시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였나보다. 하지만 그는 왜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하는 걸까?
김씨는 청소년기에 자신의 성적취향을 알 수 없다고 하지만, 그가 인용한 자료만으로도 그건 충분히 반박된다. "서울대에서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동성애자의 51%가 대학에 간 이후에 성적취향을 알게 되었다고..."
그럼 나머지 49%는 그 전에 알았다는 얘기잖아? 방청석에 나온, 겸이라는 동성애자의 말이다. "저는 중학교 때 알았어요... 정보도 구할 수 없고...자살도 생각했어요....주변에는 아웃팅을 당해 폭력, 따돌림을 당하는 애들도 있어요"

이런 게 과연 바람직한 걸까? 청소년기가 백지상태라는 데는 동의하지 않지만, 올바른 가치관을 함양해야 할 시기인 것은 틀림없다. 그러니 더더욱 동성애에 관한 진실을 알려줄 필요가 있는 건 아닐까? 세상에는 다양한 삶이 존재한다는 걸 어렸을 때부터 가르쳐주지 않는다면 이런 사람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토론에 나온 학부모를 보자. "전 동성애를 가지고 왈가왈부한다는 것 자체가 불쾌해요. 이 프로로 인해 동성애를 모르던 애들의 호기심을 부추겨...." 난 이런 인간이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불쾌하다. 말하는 기세로 보아 이분의 자녀가 동성애자라면, 패 죽이겄네? 동성애를 알면 호기심 때문에 동성애자가 된다? 보라. 이분은 동성애에 관해 이토록 무지하다.

동성애를 음란, 변태스러운 괴물로 만든 건 다름아닌 이성애자들이고, 그들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허상을 빌미로 동성애를 탄압한다. 이런 상황이니, 네덜란드처럼 동성애자간에 결혼도 할 수 있는 나라도 있는 반면, 우리나라 동성애자들은 음지에 숨어 자신을 속이면서 살아야 한다. 한술 더떠서, 이성애자들은 그들이 음지에 숨는 걸 동성애가 범죄라는 얘기라고 강변한다. 위에서 언급한 학부모가 겸이에게 한 말을 보자. "왜 이름을 안밝히죠? 동성애가 그렇게 당당하다면 이름을 밝혀야죠!" (언젠가 혼전동거에 관한 토론을 할 때, "남이 먹다만 수박을 누가 먹겠냐"는 주장을 폈던 엄앵란 씨도 어렵게 나온 혼전동거자에게 그런 말을 했었다)

전씨의 말처럼 열린사회라는 게 무조건 좋은 건 아니겠지만, 우리 사회는 닫혀도 너무 닫혀 숨이 막힐 지경이다. 우리, 제발 숨 좀 쉬고 살자.

사족: 토론할 때 보니까 전씨는 아주 나쁜 버릇을 가지고 있더만. MC가 질문을 하면 꼭 관계없는 얘기를 장황하게 한다. MC가 "제가 한 질문은 그게 아닌데.."라고 끼어들면, "지금 그 말씀을 드리려고 하는 중입니다"는 말을 한다. 물론 그 다음에 한 얘기도 별 관계가 없는 말이고, 그런 게 한번이면 몰라도 무려 3번인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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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월의꿈 2004-02-09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0인토론에서 이런 주제로 토의를 했군요. 아- 그렇다면 볼것을 그랬습니다.(볼까말까하다 안봤는데ㅠ-ㅠ;)인터넷으로 다시 볼 수 있겠지요?
...동성애.. 왈가왈부하지 말고 그 분들을 좀 놔 드렸으면 합니다. 다수와 취향이 다르다고해서 숨도 못쉬고 살아가는 사람들이..(고통은 모르지만) 안됐네요..

갈대 2004-02-09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닫혀도 너무 닫혀 숨막힐 지경이란 말에 200% 동감 +_+

마태우스 2004-02-09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월의 꿈님/오랜만에 오셨네요? 정말 님 말씀대로 그분들을 놔 드렸으면 좋겠어요.
갈대님/부끄러워요....<--누가 칭찬해 주면 습관적으로 하는 말입니다.^^

겨울 2004-02-09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놓친 것이 안타깝네요. 유해물에서 삭제되었다는 소식 신문에서 접하고 박수를 친 게 어끄제인데 100인토론 단상에까지 올랐다니 정말 무섭군요. 타인의 성적정체성을 놓고 이러니 저러니 하는 것 자체가 상처 아닙니까? 우리나라에서도 동성애문학이 활성화되어 햇빛 찬란한 공간으로 나왔으면 좋겠어요. 보다많은 영향력있는 사람들이 커밍아웃을 하는 것도 한 방법이 아닐까요. 가령 간달프역의 이안 맥컬린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