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누나 아들이다-가 졸업을 했다. 삼촌인데 뭐 하나 해준 게 없어서 졸업식이라도 가줘야겠다고 갔고, 간김에 매형이 사는 졸업식 오찬을 얻어먹었다.
평소에도 인터뷰 같은 걸 좋아하는 나, 조카에게 이것저것을 묻다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졸업을 하는 심경은?"
좋지 않단다. 그래서 친구랑 헤어지는 게 서운하냐고 했더니 그게 아니란다.
"이제부터 공부만 해야 하니까"
누나와 매형 모두 다, 중학교에 가면 놀 생각 하지 말고 공부만 하라고 했단다. 매형이 어제 한 말이다. "너에게 해줄 말이 있다. 자기 절제와 집중, 이걸 명심해라. 그걸 실천해야 공부를 잘할 수 있다"
듣는 나도 숨이 막힐 것 같은데, 조카는 오죽하겠는가. 졸업식장에서 그의 표정이 어두웠던 게 이해가 되었다.
그렇다고 졸업하기 전에 조카가 논 것도 아니다. 매일같이 학원을 다니며 영어, 수학, 국어, 과학을 배웠고, 밤늦게 집에 와서는 숙제를 했다. 누나집에 놀러가서 애들하고 놀려치면-애들은 날 무지 좋아한다-누나는 "숙제했어?"라며 애들을 쫓았다.
조카는 사실 선택받은 아이다. 연수를 간 매형을 따라 2년간 미국에 갔었으니까 말이다. <반지의 제왕3>같은 영화도 문제없이 볼 정도로 영어가 유창하다. 역시 어제 들은 얘기.
매형: 지난번에 토플 몇점 맞았어?
조카: 550점.
매형: 또? 지난번에도 그 점수였잖아!
550점이라니, 난 토익을 봐도 그 점수가 안나올텐데... 유창한 발음으로 미국 사람과 대화를 나누던 조카가 보기에 중학교에서 가르치는 영어는 얼마나 우스울까? "I am Tom. You are Jane"을 읊조리는 아이들과 조카의 격차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일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나 부부는 조카를 닥달한다. 중학생이니 공부만 해야 한다고. 조카는 아마도 엄마 아빠의 기대에 부응해 공부를 잘 할 것이고, 원하는 대학에 갈 것이다. 하지만 난 전력을 다해 달리는 말에게 가해지는 채찍질이 그의 인성을 피폐하게 만들지나 않을지 걱정이 된다. 인생은 경쟁이고, 내가 살기 위해서는 친구를 멀찌감치 떼어 놓아야 한다고 배운 아이들에게 사랑과 관용은 설 틈이 없을 것이다. 공부밖에 몰랐던 애들이 이끄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노라니 조금은 섬뜩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