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차, 아니 선배 누나와 술을 마시러 대전에 갔다. 그 누나는 다음 달이면 미국에 갈 것이기에 드릴 것도 있으니 인사나 할 생각이었다. 돌아오는 차표를 밤 10시 46분차로 예약했는데, 생각해보니 그 누나가 짐을 싸느라 바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차 안에서 들었다. 애가 둘 딸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나는 내가 가면 언제나 자정 무렵까지 같이 술을 마셔주곤 했지만, 그리고 술도 무지 셌지만, 어제는 어찌될지 모르는 일, 일단 전화를 걸어 "몇시까지 놀아줄 건데요?"라고 물어보려 했다. 역시나 전화를 안받는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 누나의 오래된 휴대폰이 잘 안터진 탓이었지만, 난 "그래! 역시 바쁘군!"이라고 확신을 했다. 난 늦게까지 놀 생각으로 갔는데, 8시쯤 일어나면서 "민아, 나 바빠서 들어가야 되거든?"이라고 해버리면 애매하잖아?
그래서...난 이왕 대전에 간 거, 두탕을 뛸 계획을 세웠다. 학생 때부터 친하게 지냈던, 그리고 졸업 후에도 자주 만난 친구가 대전에서 사업을 하고 있었던 것. 2년 전에 만난 후, 한번 놀러오라는 요구를 계속 묵살하고 있던 터였다. '8시 무렵까지 같이 저녁을 먹고, 그다음에 친구를 만나야겠다'는 깜찍한 계획을 세우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나: 저기 오늘 나랑 두시간만 놀아줄 수 있니?
답이 왔다.
그: 누구세요
윽, 내 번호를 지웠나보다.
나: 나 민이야. 내가 그간 좀 무심했지?
그: 아니 몰라 ^^
윽, 이 녀석이! 하지만 웃음을 뜻하는 이모티콘(^^)이 있기에 장난인 줄 짐작을 하고선 전화를 걸었다. 안받는다. 난 그의 회사로 전화를 했다. 오늘 시간 있느냐고 물었더니 흔쾌히 있다고 한다. "내가 연락 자주 안해서 삐졌냐?"고 물으니 전혀 아니란다. 그럼 그렇지...
선배 누나와 저녁을 먹는 와중에 문자를 보냈다.
나: 나 지금 저녁 먹으니까 너도 대충 밥 먹어. 8시 반쯤 갈께.
답이 왔다.
"눈깔 썩었어? 누구냐구!! 씨바!"
얘가 나 기다리느라 너무 배가 고파진 걸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장난으로 넘어가긴 심한 말이었기에, 난 그 친구 휴대폰이 번호가 바뀐 걸로 생각을 했다. 전화를 걸었더니 웬걸, 그 친구가 받는다. 8시 반쯤 간다고 했더니 의외로 담담하게 그렇게 하란다. 오래 안봤더니 얘가 좀 이상해진 걸까?
그 친구를 만나고서야 알았다. 휴대폰 메시지는 그가 보낸 게 아니라는 걸. 그는 집에다 휴대폰을 두고 다녔고, 마침 놀러왔던 딸의 친구가 그런 문자를 보낸 거였다. 내가 상황을 설명해 주자 그가 이런다.
"걔가 좀 성격이 거칠더라고. 이름도 장미고, 얼굴도 이쁘게 생겼는데..."
어쩐지 이상하더라 했다. 아이들은 휴대폰을 갖고 놀길 좋아하는 바, 휴대폰이 이상하면 아이들을 의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