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십년 전, 어머님은 밭에서 노는 꿈을 꾸셨다. 아는 할머니는 꿈 얘기를 듣자 대번에 딸을 낳을 것이라고 말했고, 그로부터 열달 후 어머니는 누나를 낳았다. 그 후 어머니는 구렁이 두마리가 벽에 붙어 있는 꿈을 꾸셨다. 구렁이처럼 길다란 건 남성의 상징, 어머님은 그 뒤 나와 남동생을 낳으셨다. 여기까지 듣고 엄마한테 물었다.
"그럼 여동생 가질 땐 무슨 꿈을 꿨어요?"
그땐 아무 꿈도 안꾸셨단다. 넷씩이나 낳으려니 좀 지겨웠던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태몽없이 태어난 여동생은 우리 가족 중 가장 인물이 출중한데 비해 구렁이 꿈을 꾸고 태어난 나는 뭔가 많이 모자라니, 태몽이라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닌가보다.

옛날에, 아주 옛날, 지금은 헤어진 여친과 사귈 때였다. 어느날 여친의 어머님이 꿈을 꾸셨는데, 새끼 호랑이를 안아올리는 꿈이었단다. 어머님이 딸에게 물었다. "너 오늘 민이 만나냐?" 여친이 그렇다고 하자 어머님은 이렇게 말했단다. "조심하거라"
하지만 우린 그날 아무일도 없었고-손만 잡아도 아기가 생긴다면 모르겠지만-집에 가는 와중에 갑자기 설사가 나와, 화장실을 찾느라 진땀을 흘려야 했다. 그 뒤부터 우린 '대변을 본다'를 '호랑이를 잡는다'고 표현하곤 했다.

내 친구 중 일년 전에 결혼한 녀석이 있다. 어제 그와 만나 술을 마셨는데, 그가 이런 말을 한다.
[내 마누라가 얼마 전에 고추-먹는 고추가 아니라-를 달고 다니는 꿈을 꿨데. 아무리 떼어도 안떨어졌다나. 무슨 그런 흉칙한 꿈이 있냐고 하더니, 글쎄 애가 생겼다지 뭐야]
친구는 지금 임신 5주째란다. 아들인지 딸인지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꿈의 성격상 아들이 아니겠는가.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해 친구에게 물어봤다. "5주 전엔 뭐했는데?" 친구는 술에 취해서 아무 생각도 안난단다. 그러자 같이 있던 여자애가 덧붙인다. "그럼 딸이네!" 그 여자, 남자가 술먹고 하면, 그래서 술취한 정자가 들어가면 딸을 낳는다는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는가보다.

아직 장가는 안갔지만 그래도 태몽 전문가인 전직피디 박모씨는 이렇게 말한다. "대부분의 꿈은 태몽으로 해석될 소지를 가지고 있다. 결혼한 상황에서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아이를 바라면 그게 꿈으로 나타나는 수가 많으니, 그런 꿈을 꿀 수밖에 없다" 내가 태몽으로 해석되는 게 아예 불가능한 꿈들, 예를 들면 학장님한테 혼난다든지, 고교시절로 돌아가 시험 전날까지 공부를 한자도 안하는 그런 꿈들만 꾸는 이유는 아마도 내가 아이를 낳을 상황이 아니어서 그런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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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2-06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태몽은, '앗, 이거 태몽이야!!'라는 느낌이 확~ 온다던데...^^ 나중에 결과랑 껴맞추는건진 모르겠지만, 태몽과 성별이 대충 맞아떨어지는 건 신기하죠. 시험치는 꿈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그렇다던데~
 

여친과 4시반 영화를 보기로 했는데, 일이 잘못되어 2시 반에 극장에 도착해 버렸다. 두시간 동안 뭘한담? 어디 구석에 숨어 책을 읽으려고 했지만 좀 궁상맞아 보일 것같아 혼자 다른 영화를 봐야겠다는 깜찍한 생각이 떠올랐다. 아직 못본 <말죽거리>를 보면 어떨까 했는데 시간이 안맞는다. 2시 반에 상영하는 건 딱 한편이 있었고, 그게 바로 <그녀를 모르면 간첩>이었다. 비는 시간이 없었으면 절대로 보지 않을 영화였지만, 보고나니 생각보다 괜찮았다. 영화가 막 시작하려고 해 소변도 못보고 달려가서 앉았는데, 그로부터 두시간 동안 가장 잘 참을 수 있는 자세를 취한 채 버티고 앉아있었던 것만 봐도 재미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지 않는가? 그러니까 이 영화를 <낭만자객>과 비슷하려니 하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일 것이다.

 

1) 김정화: 언젠가 <논스톱>이라는 시트콤을 본 적이 있는데, 그때 김정화를 처음 봤다. "참 시원하게 생겼네?" 이게 내 첫 느낌이었다. 그 시원함이 어디 가는 건 아닌지라 영화에 나오는 그녀를 보고 있노라니 <니모를 찾아서>를 보는 느낌까지 들었는데, 김정화만 봐도 그다지 돈이 아깝지 않다는 게 내 주장이다. 난 작고 아담한 스타일을 좋아하는지라 김정화가 내 타입은 아니지만 말이다. 이렇게 말하면 꼭 이런 질문이 따른다. "니 타입이면 어쩔 건데?" 내가 뭐 어떻게 하겠다고 했나? 그냥...그렇다는 거지.

 

 

2) 벨소리: 영화에 나오는 벨소리는 웃기는 게 많다. <싱글즈>에서 장진영의 휴대폰은 "대-한민국"이었는데, <간첩>의 남자주인공 공유의 벨소리는 다음과 같다.

"안받아? 이거 흥미진진한데. 받을 때까지 울려보자고. 전화를 안받는 건 상대방을 두번 죽이는 거라구"

 

3) 줄거리: 좋은 영화와 나쁜 영화의 차이는 말이 되는가 안되는가의 차이일 것이다. <천국의 계단>이 높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비난을 받는 건, 말이 안되는 대목이 너무 많아서다. 예컨대 네티즌들이 지적한대로 앞의 사물도 잘 못보는 최지우가 별장 밖에 서있는 권상우를 보고 장 속에 숨는 건 말이 좀 안되잖아? 물론 <간첩>의 장면들은 굉장히 유치한 것들이 많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괜찮게 느껴진 건, 전체적으로 봐서 말이 그럭저럭 되기 때문일 것이다. 김정화의 키스로 끝나는 마지막 장면도 내게는 신선했다.

 

4) 백일섭: 연기를 잘하는 백일섭은 영화를 푸근하게 만들었다. 그의 부인으로 나오는 김애경도 마찬가지인데, 옛날에 난 김애경이 나오는 에로영화를 동시상영 극장에서 본 적이 있어서, 그녀를 보면 아직도 거부감 비슷한 감정이.... 내가 원래 좀...이상하다. "뽑기는 완성된 모양을 생각하면 손끝에 힘이 들어가 깨지기 마련"이라는 백일섭의 "뽑기론"은 참 인상적이었다.

 

5) 유머: 좋은 유머와 나쁜 유머의 차이는, 나쁜 유머가 뜬금없고 영화랑 매치가 잘 안되는데 반해, 좋은 유머는 영화 속에 녹아들어가 그 자체는 웃긴 말이 아니라도 관객에게 웃음을 준다. 영화에 나온 나쁜 유머의 예다.

공유: (비디오방에서) 아니 저게 뭐야? 아줌마, 시네마천국 틀어달랬잖아요?

아줌마: 신애마천국 맞잖아!

그럼 좋은 유머는? 글쎄, 좋은 건 아니고, 그냥 어중간한 유머의 예다.

김정화: ......통일의 길을 닦아야죠....

김애경: 통일의 길은 불도저가 닦고 있으니 넌 들어가서 마루나 닦아 이년아.

 

유치한 장면이 꽤 나옴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괜찮았다고 생각을 하지만, 남들은 어떨까? 맥스무비의 별점순위를 보니 6.64로, 내사랑 싸가지의 5.38보다는 높다. (참고로 <낭만자객>은 5.03 정도 되었다) 6.6 정도면 뭐 적당한 평가라고 생각을 하는데, <태극기 휘날리며>가 9.08로 1위다! 이럴 수가. 그 영화가 재미있나보다. 100억원을 들인 영화라 망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재미있다니 다행이다. 나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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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2-05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유치할꺼 같애~라고 생각했었는데, 의외로 괜찮은가보죠?? 마태우스님 영화감상문을 보고 있으면, 대사들을 어찌저리 기억하고 계시는지 신기하다는...^^

진/우맘 2004-02-05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배우 이름은 잘 기억 못 하면서 대사는 잘 외우시는군요. 한 번 본 연극은 다 외워버리는 <유리가면>의 마야도 아닐터인데...

마태우스 2004-02-06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거요. 사실은 제가 영화 중간중간에 맘에 드는 대사가 있으면 노트에다 적거든요.... 저 머리 나뻐요T.T
 

주종: 소주 6잔 + 생맥주 2000cc 정도?

TGI는 생일 +/- 사흘 동안에 오면 서비스를 준다. 그런데 우리나라 식당은? 집에서 미역국을 끓여줄 뿐,  밖에 나가면 생일이라고 뭐하나 주는 게 없다. 어제 친구랑 중국집에서 점심을 먹은 뒤 계산할 때 주민증을 내밀고 이렇게 말했다. "저 오늘 생일인데 할인혜택 없나요?"

주인여자는 아주 냉정하게 돈을 받으며 말했다. "그런 거 없습니다" 웃으면서 말했으면 덜 무안했을텐데,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

저녁도 역시 중국집에서 먹었다. 종업원에게 주민증을 보여줬다. "저 오늘 생일인데 뭐 없나요?" 종업원은 한번 알아보겠다고 한 뒤 사라졌는데, 그 뒤로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몰랐다. 그게 그렇게 시간이 걸리는지.

맥주집에 가서 다시 물어봤다. "저...오늘 생일인데, 서비스 같은 거 없나요?" 종업원은 잠시 뒤 나타나 이렇게 답했다. "그런 건 없구, 음악만 틀어준대요"  빠-빠-빠---콩그래출레이션...어쩌고 하는 그 음악, 온갖 시선이 집중되고, 당사자는 쑥스러워 고개를 푹 숙이는 그런 음악. 난 그냥 됐다고 했다. 참 이상하다. 한치라도 한마리 서비스 주는 게 그렇게 어려운가? 왜 우리는 모르는 사람 생일에 그렇게 인색할까? 생일날 쥐꼬리만한 서비스라도 받으면 기분이 더 좋아질테고, 다음에 또 그곳을 찾을텐데.... 혹시 내 생일을 질투하는 건 아닐까? 모르겠다. 혹시 내가 소원대로 책방을 하게 된다면, 난 생일을 맞는 사람에겐 매장에 있는 책 한권을 공짜로 고르도록 해야겠다. 혹시 그가 3만원이 넘는 웹스터 사전을 고르면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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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의마들렌 2004-02-05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서비스가 보편화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때때로 모르는 사람에게 너그러워 질 수 있어야 할텐데 말이죠. 그걸 뭐 법적으로 강요를 할 수도 없고-_-;;
담에 정말로 책방을 하게 되시면, 연락 주세요. 후후~ 생일날 싸아비쓰으으으으!!!!

비로그인 2004-02-05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술집에서 쥐꼬리만한 서비스를 줄때도 있는데, 왠지 고맙죠~ ^^ 케익을 들고 가서 그러나?? 어떻게 보면 슬픈 사연인데 읽다보니 또 웃음이 나네요. ㅎㅎ

갈대 2004-02-06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라진 종업원...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ㅋ

마태우스 2004-02-06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아이님/네, 연락 드리겠습니다. 혹시 웹스터 사전을 고르시려는 분이 별아이님은 아니겠지요?^^
앤티크님/어, 그래요? 애절하게 웃기는 거, 그게 제 캐치프라이즈인데.... 칭찬으로 알아듣고 감사드려요.
갈대/ 혹시 변비 때문에 고생하는 분은 아닐까요....

sooninara 2004-02-07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라진 종업원 배달나가서 집 못찾아서 헤매인거 아닐까요?

waho 2004-02-11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일 축하 쿠폰이나 약간의 서비스에 현혹되어 공짜 기미만 보여도 꼭 가고마는 제겐 강릉은 쿠폰 불모지랍니다. 그나저나 종업원 교육 잘 좀 시키지..
 

 

 

 

 

 

많은 분들이 진우맘님(이하 님 생략)의 서재에 비치된 심리검사를 의뢰한다. 그러면 진우맘은 검사결과를 친절하게 알려주는데, 그걸 쓰는데만 한사람당 20-30분이 걸린다고 한다. 진우맘은 말한다. "떠오르는 서재 중 내 심리검사 안받은 사람 나와보라 그래"
떠오르는 서재는 아니지만, 나도 진우맘의 서재에서 심리검사를 받았고, 그 이후부터 좀더 자신감을 가지고 인생을 살고 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을 즐겨 분석하는 진우맘님(이하 님 진짜로 생략)을 한번 분석해보면 어떨까? 그래서....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 안에서 진우맘님에 대해 생각나는대로 두서없이 써봤고, 그걸 여기다 올린다.

내가 그런 것처럼, 진우맘도 알라딘 서재에 목을 매셨다. 그래서 진우맘의 서재는 서재지수 10위, 마이리뷰.마이리스트 톱50, 마이페이퍼 톱10이라는 화려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그의 서재는 하루 50-100명이 찾는 인기서재다. 342개에 달하는 마이리뷰가 말해주듯, 진우맘은 한창 때 책을 무진장 많이 읽었다. 그당시 진우맘은 한달에 평균 40개 정도의 마이리뷰를 써 2만원어치씩 상품권을 받았다는데, 2002년 1월에 쓴 마이리뷰를 세어보니 무려 77편에 달한다. 이쯤되면 "인간이냐?"는 탄식이 나올 법도 하다.
하지만 최근들어서 진우맘은 책을 잘 읽지 않는다. 왜? 어느날 갑자기 생긴 마이페이퍼 때문이다. 마이페이퍼가 생긴 후 진우맘은 모든 신경을 그쪽으로만 쓰기 시작했는데, 거기에 목숨을 거는 사람이 워낙 많은지라 진우맘은 톱10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걸 진우맘은 "책을 못읽게 하려는 알라딘의 음모"라고 말했는데, 사람들이 책을 덜읽으면 마이리뷰 10편당 하나씩 지급되는 상품권을 덜줘도 되니,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진우맘. 예진과 연우의 엄마란 뜻이다. 두 아이의 엄마, 그래서 난 진우맘이 30대 중반쯤 되지 않았을까 생각했는데, 엊그제 알았다. 그는 놀랍게도 방년 29세다!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 다음 코멘트를 보자.
[전 중학교가 남녀공학인데다가 중 3담임 선생님이 남녀짝꿍까지 시켜줘서 아직까지 남자인 죽마고우들이 몇 있습니다만은, 이 녀석들...좀 더 키워야할 것 같습니다. 남자 나이 스물 아홉, 서른이면 이제 짝 만나서 결혼할 생각에 바쁠 나이잖아요. 대화의 수준이 보장이 안 됩니다. 게다가 이태백(아시죠? 이십대 태반이 백수) 시대라서, 맨날 술 값은 제가 덤탱이를 쓰지요. -.-]
독서의 달인인 진우맘과 대화의 수준이 안되는 건 이해할 수 있어도, 술값까지 덤터기를 씌우다니, 좀 멀리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진우맘이 자신의 사진을 띄운 적은 아직 없지만, 아이들의 얼굴로 유추해 볼 때 영화배우 정선경을 닮았을 것 같다!!! (이것도 맞나요?)

난 여자의 결혼은 모든 낭만을 포기하고 삶이라는 굴레로 들어가는 것으로 생각했다. 자아실현? 결혼하면 끝이다. 하지만 진우맘을 보면서 난 그게 편견이었음을 알게된다. 마이페이퍼에 올라온 글들로 보건대 진우맘의 삶은 너무도 유쾌하고, 운치가 있다. 두 아이의 엄마가 저런 멋진 삶을 살 수 있다니, 진작에 진우맘을 만났더라면, 베티 프리단이 <여성의 신비>같은 책을 안쓰지 않았을까? 다음 글을 보자.
[제목:  컴 앞으로 오는, 멀고도 험한 길
1차 관문...도련님의 출퇴근 시간. 우리 집 컴은 도련님이 산 거다...도련님이 야근 나간 저녁이라던가, 놀러 나간 낮, 혹은 퇴근 전의 새벽...그런 시간을 교묘히 뚫어야 한다.
2차 관문...강적, 조예진. 원조 엄마 중독 예진. "놀아줘~"의 대가이다. 이런 그녀를 물리치고 컴 앞에 앉기는 매우 힘들다...3차 관문...그다지 강적은 아니지만, 신경쓰이는 조연우...]
그렇다. 진우맘은 이런 관문을 뚫고 그토록 많은 글을 써온 거다. 진우맘의 페이퍼를 읽으며 고단한 하루의 피로를 잊는 나같은 사람들이 보기엔, 돈을 얼마씩 내서 초고속 컴퓨터를 사서 기증하고, 교대로 예진이와 놀아주기, 뭐 이런 이벤트를 벌이면서 진우맘의 글쓰기를 돕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보라. 다음은 진우맘이 글을 남긴 시각이다.
-나는 알라딘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추천: 1 I 2004-02-01 03:52 (추천은 방금 내가 했다. '0'이면 좀 그렇잖아?)
-황금같은 시간이 끝나간다... 추천: 0 I 2004-02-05 01:39
급기야는 이런 멘트도 볼 수 있다. "큰일이다. 곧 알라딘 정기점검 시간인데..."(나도 엊그제 알았는데, 알라딘은 새벽 5-6시에 점검을 한다)
그러니까 진우맘은 이렇게 온몸을 던져가며 톱10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중이다. 재미있는 글을 보니 좋긴 하지만, 저러다 건강이 상하면 어쩌나 걱정이 슬그머니 된다. 진우맘님, 쉬엄쉬엄 하세요!

애엄마는 사실 바쁜 존재다. 다음 글을 보자. [연우는 지금...책을...먹고 있습니다. 책이 마음의 양식 뿐 아니라 몸의 양식도 된다고 생각하는건지... 연우는 양띠인데, 아무래도 자기가 염소띠라고 생각하나봐요. 온갖 종류의 종이를 씹는 것을 매우매우 좋아한답니다. 책 씹기에 지쳤는지 새로운 놀이를 찾아냈습니다. 엄마 노예놀이? 들고 있던 책을 일부러 떨어뜨리고는 주워달라며 좋아하네요...] 애가 커감에 따라 엄마는 점점 시간이 없어진다.
[원래 저는 속독, 탐독, 폭독을 일삼는 활자중독자였습니다. 화장실에서는 락스통이라도 읽어야 직성이 풀리는 제 사전에 구입하고도 못 읽은 책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죠. 그/러/나... 진/우의 엄마가 된 지금은 하루가 온전히 제 것이 아니네요]
거기다 페이퍼까지 쓰려니, 점점 책읽을 시간이 없다. 그래서 진우맘은 만화를 보기 시작한다. 책을 좀 읽는 사람들 중에는 만화를 폄하하는 사람이 참 많다. <느낌표>의 MC가 그러다 항의를 받은 것처럼, 우리에겐 만화에 대한 이상한 편견이 있다. 좋은 만화 한편은 보통 책 열권보다 훨씬 나은데 말이다. 하지만 우리의 진우맘은 그런 편견으로부터 자유롭다.
[아영맘에게 좋은 자극을 받았습니다. 그래, 호흡이 긴 책이 소화가 안 될 상황이면 좋은 판타지나 만화라도 보자!]
최근 그의 페이퍼를 보면, H2라는 만화에 대한 멋진 감상문이 연재되고 있다. 그렇다고 진우맘이 완전히 책을 떠났을까? 물론 아니다. 지난 1월에는 다섯권의 리뷰를 썼고, 12월엔 열편이다. 우리나라에서 이 정도라도 책을 읽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책을 읽는 목적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책을 많이 읽으면 글을 잘쓰게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평범한 일상 얘기도 진우맘의 손을 거치면 참으로 재미있고 유쾌한 한편의 서사시가 되어 버리니까. 요즘 한가한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 바쁜 일상 속에서도 열심히 서재를 가꾸는 진우맘을 보면서 난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꿈과 사랑과 용기를 얻는다. 지난번 알라딘마을 잔치에서 아차상에 그치긴 했지만, 그의 서재는 내 마음 속의 베스트서재다. 진우맘의 서재가 더 발전하기를 빌어본다. 훌륭한 엄마 밑에서 크는 예진이와 연우가 얼마나 멋진 인격체로 자랄지를 상상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 원래 이런 리뷰는 그가 쓴 모든 글을 읽고 써야 하지만, 몇편만 읽고 써서 매우 부실한 분석이 되어 버렸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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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맘 2004-02-05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TT 감동의 눈물. 누군가 나를 분석할만한 가치가 있는 대상이라고 생각해 준다는 자체가, 감동적이군요. 참, 뭐라 말씀드려야할지...그저, 고맙습니다.
정선경...이 이 사실을 알면 제 서재를 폭파할지도 모릅니다.^^;;;; 이제껏 연예인 닮았단 얘기는 한 번 밖에 못 들어봤습니다. 한참 눈에 콩깍지 씌운 울 신랑이, 저보고 하희라 닮았다고 했다가 뭇매를 맞았었지요... 저도 제가 외모로는 하위 몇 %라고 생각하는데...환상을 깨시려면, 그림책 리메이크 7페이지 쯤에서 언뜻언뜻 저를 찾으실 수 있습니다.^^

sooninara 2004-02-07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우맘님..축하해요..이글보고 마태우스님의 서재에 놀러왔습니다
 
 전출처 : chaire > '발리에서 생긴 일'과 그람시

'발리에서 생긴 일'....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는 드라마라는 생각을 하면서 보고 있는, 나의 주말 드라마다. 처음에는 네 사람의 심리게임을 보는 재미에 푹 빠져서 보다가, 요즘에는 '어, 이거 결코 가볍지 않은 내용인걸' 하는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다.

감탄하게 하는 대목의 시작은, 일전에 스밀라 님도 메모한 적이 있는 그 대사로부터 출발한다. "니들, 이뻐, 너무 이뻐..." 하는 강인욱(소지섭)의 대사.

강인욱이 이쁘다고 말한 것은, 그 아이들(노래방 도우미 하는 조연 여자애와, 이수정이라는 이름으로 분하고 있는 하지원)의 외모가 아닐 것이다. 그 아이들의 처절한 삶의 투쟁이 아름답다는 뜻이다. 그것은 강인욱에게, 어쩌면 현실감 있는 계급투쟁으로서의 진실한 무게감을 던졌을 터이다.

이후 드라마는 단순한 '사랑의 삼각관계' 드라마라는 트렌디 성격을 넘어서서, 이 사회에서 아직도 건장한, 영원히 건장할 '계급'의 문제로 육박해가는 듯하다. 네 명의 인물군은, 각 계급을 상징하고 있다. 가장 높은 계급에 위치한 두 남녀, 중간계급이라고 할 수 있는 한 남자, 하위계급의 두 여자... 이 중 가장 복잡한 심리의 주인공은 말할 것도 없이 강인욱이다. 그는 아래와 위를 동시에 인식하고 있는 자답게 들끓는 욕망의 기제 속에 내던져진 지식인의 형상을 표상하고 있다. 그래선지 사랑 앞에서도, 권력 앞에서도 어정쩡한 태도를 지키며, 재는 것도 많다. 그리고 극중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박예진이 연기하고 있는 재벌그룹가 딸의 심리상태도 단순히 '이기적'이라고만 매도하기에는 복잡한 데가 있다. 그러나 오히려 정재민과 이수정으로 분하고 있는 조인성과 하지원의 캐릭터는 단순 명료하다. 그들은 자기 현실만을 느끼고, 그 현실을 받아들인다. 오히려 순수하다.

드라마는 이렇게 다른 계급의 남녀들의 사랑이 얽히는 구도로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다. 사랑에는 국경도 없다지만, 아직 사랑에는 '계급'이라는 무서운 장벽이 남아 있음을, 서늘하게 가르쳐주는 의미심장한 드라마, 그런 드라마답게 이 드라마는 과감하게 이런 대사를 표면에 내민다.

"그람시라고 알아?" 그람시... '헤게모니'라는 단어를 최초로 사용한 사람, 막시즘을 잘 해석한 정치사상가라고 하는 그... 위의 대사를 하면서 드라마는 그람시의 '옥중수고1(정치편)'를 버젓이 클로즈업하고 있다. 극중의 이수정은 이 책을 강인욱에게 빌려받고, 그 책을 읽은 덕분인지 나중에는 정재민을 향해 이렇게 외친다.

"당신의 헤게모니가 내게 주제파악을 하게 해주었어요..." (정확한 대사는 아님)

찌르르... 전기가 통해왔다. 하지원이 어떤 계급을 선택할지, 혹은 하지원이 이재민과 강인욱이라는 두 계급 모두의 위선을 시원하게 벗겨내줄지... 자못 기대된다. 그리고, 나도 여태 이름만 들어본 그람시의 책을 숙독해야겠다, 많이 늦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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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우주 2004-02-03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식으로 어설프게 인용하는 거 어색하던데..--; 저도 두어번 봤는데 별반 재미없던데요. 마태우스님의 드라마 사랑은 정말 깊군요...^^; 늘 감탄하고 있답니다...ㅋ.ㅋ.ㅋ

쎈연필 2004-02-04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라마의 헤게모니가 어쮜나 막강한지. 저는 티브이를 밥 먹을 때만 봐서, 가끔 그 드라마를 보기도 한 것 같군요. 그 드라마 덕분에라도 그람시 책을 사람들이 읽게 되면 참 환영할 일이군요^^. <감옥에서 보낸 편지>가 신영복 선생의 엽서와 흡사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