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과 떨림
아멜리 노통브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노통의 책을 몇권 읽고 나니 그가 어떤 성격인지 대충 짐작이 간다. 물론 소설의 주인공과 작가의 성격이 비슷하지 않은 경우도 많지만, 노통 소설의 주인공은 작가 자신의 실제 모습이라는 확신이 선다. 내가 파악한 노통의 특징은 매우 발랄하다는 것. 책날개의 외모를 보면, 금방이라도 장난을 칠 것만 같다. 60년대였다면 히피가 되었을, 발랄하고 저항정신에 충만한 여자가 숨막히는 관료주의 사회에 편입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두려움과 떨림>은 노통이 일본에서 회사 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일을 다룬 소설이다. 실제로 겪은 것인지 가상인지는 알 수 없지만, 노통으로서는 숨막히는 일본 회사의 분위기가 견딜 수 없는 것이었으리라.

아래 사람을 끊임없이 견제하고, 적성에 맞지도 않는 일을 시키고, 윗사람에게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동양사회를 합리성과 개인주의를 숭상하는 서양인의 시각에서는 이해할 길이 없을 것이다. 노통에 의하면, 회사 뿐 아니라 일본이라는 나라가 감옥이다. 일본 여성들에 대한 노통의 말이다.

[배가 고프다고? 먹는둥 마는둥 해...날씬한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 말이야. 너는 아름다워야 할 의무가 있어....너는 결혼할 의무가 있어...너는 아이를 낳을 의무가 있는데...너의 의무는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는 거야 (75-77쪽)]

일본 남성들 역시 여기서 자유롭지 않지만, 최소한 '질식할 지경까지 이르지는 않았다'는 게 노통의 주장인데, 그는 '일본회사에서 일하지 않는 것 자체가 하나의 목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노통이 예찬하는 서양의 문화가 꼭 그렇게 좋기만 한 것일까?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에도 서양의 문물이 밀려들어와 회사는 더이상 평생 직장이 아니게 되었고, '사오정'이니 '오륙도'니 하는 말들이 유행하고 있다. 긍정적인 측면이 전혀 없진 않겠지만, 이런 변화가 난 무섭다. 미국에서 일하는 내 친구는 거의 석달마다 한번씩 있는 감원에 자신이 포함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생각한다. '저래 가지고 제대로 일할 수 있겠나?' 합리성이란 말은 분명 좋은 것이고 나름대로의 장점이 분명 있겠지만, 자신의 신분이 확실히 보장되어야 더욱 신명나게 일할 수 있는 측면도 있지 않을까 싶다.

동서양의 정신이 어떻든간에, 이 소설은 참 재미있다. 최근 노통의 소설에 약간 식상해 있었는데, 이 책에서는 그녀다운 발랄함이 물씬 느껴져, 매우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기에 기꺼이 별 다섯개를 선사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멍청한 백인들
마이클 무어 지음, 김현후 옮김 / 나무와숲 / 2003년 4월
평점 :
품절


재미있다고 명성이 자자한 이 책을 이제서야 읽었다. 영화는 때를 놓치면 비디오로 봐야 하지만, 책은 원할 때는 언제고-3년 안에는-볼 수 있다는 게 커다란 장점이다. 떠들썩한 명성대로 난 이 책을 매우 유쾌하게 읽을 수 있었는데, 그건 이 책이 잘나가는 위선자들에 대한 냉소와 조롱을 유감없이 퍼붓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저자인 마이클 무어가 원체 장난꾸러기여서 그런 것도 있다. 부시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에서 무어가 한 질문을 보라. '조지, 자네 정말 성인 수준으로 글을 읽고 쓸 줄 아는가?(68쪽)'

최근 나온 <웃음은 최고의 전략이다>라는 책 제목처럼, 자기 주장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은 매우 소중한 자산이다. 그래서 난 시종 진지하게-다른 말로는 지루하게-팔레스타인의 참상을 고발한 촘스키의 <숙명의 트라이앵글>보다 마이클 무어가 이 책에서 발랄하게 묘사한 몇줄의 내용들이 미국인들에게 중동문제에 관해 훨씬 더 많은 것을 깨닫게 해줬다고 생각한다.

무어는 민주당과 공화당이 큰 차이가 없다고 주장한다. [널 엿먹이겠다고 하면서 엿먹이는 놈과 안그런 척하면서 엿먹이는 놈 사이에서 누구를 택하겠느냐는 말이다(301쪽)] 그래서 그는 랠프 네이더를 지지하는데, 그러면서도 그는 선거 직전 부시의 당선을 막는 게 더 중요하다면서 플로리다에서 고어에게 표를 던질 것을 호소한다. 노무현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놓고 갈등해야 했던 우리나라와 매우 흡사한 상황인데, 한국에서 노무현이 당선된 데 비해 미국에서는 우여곡절 끝에 부시가 대통령이 된다. 그 이후 벌어진 일들로 보건대, 무어가 옳았다. 민주당과 공화당은 아주 작은 차이밖에 없지만, 그 작은 차이는 한반도의 운명에 아주 커다란 차이를 가져왔으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지난 대선에서 이회창이 되었다면 우리 현실도 지금과 크게 달라졌을까? 검찰의 독립성이 강화되는 등 긍정적인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참여정부 하에서 이라크 파병이 이루어지고, 노동자들의 분신이 잇따른 걸 보면 누가 되었던지 우리의 삶에는 그다지 큰 변화는 없었을 것 같다.

언론들은 노무현 당선의 의미를 '변화에의 의지가 표출된 것'이라고 한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난 우리가 진정으로 변화를 바라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변화라는 것은 대통령 하나 뽑아놓고 나자빠진다고 오는 것은 아니다. 변화에의 욕구가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끈질기게 싸워나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평소 프로축구를 외면해 오다가 A매치만 열렸다 하면 전국민이 축구팬이 되는 우리나라 축구처럼, 우리 정치도 선거 때만 반짝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노동자를 대표한다는 당이 겨우 5% 남짓한 득표밖에 하지 못하고, 천만 노동자 운운하면서도 노조에 가입한 사람이 100만에 불과한 나라에서, 홍세화님이 늘 주장하는 것처럼 노동자가 자신의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을 가진 나라에서, 변화는 오지 않는다. 변화는 저절로 오는 게 아니며, 노력해서 쟁취해야 하는 것이니까.

끝으로 이 책에서 공감했던 말들을 두개만 적어본다.
[갑자기 여성에게 투표권이 생겼으면 집권자인 우리들을 쫓아내야 마땅할 텐데, 웬걸, 우리를 위해 표를 던지는 것 아닌가(195쪽)]
여성의 지위가 세계 최하위인 우리나라에서 더 새겨들어야 할 말이 아닐까.

[(남자들은) 손을 콧구멍, 항문....으로부터 멀리하자. 버스나 기차에서 ...다리를 모으고 앉자(203쪽)]
동서를 막론하고, 남자에게는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한가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심청 - 전2권 세트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빛나는 명성에도 불구하고, 난 황석영님의 책을 그다지 많이 읽지 않았다. 내가 책을 읽기 시작한 게 그리 오래되지 않은데다, 그때 그분은 감옥에 가 있었던 탓이다. 출소 후 펴낸 <오래된 정원>과 <손님>은 읽었지만, 그전 작품들은 아직 읽을 엄두를 내지 못한 터였다.

<심청>을 읽었다. 황석영님의 작품이라면 일단 어려울 것으로 생각하고 긴장했는데, 이번 책은 좀 달랐다. 일단, 너무 야했다. 조금 읽다가 '이게 황석영 책 맞나?'는 생각에 책 앞부분을 다시 펴보기도 했다. '번지점프 중에 하다'는 에로 영화의 제목처럼, 이게 황석영의 <심청>이 아니라 에로물 <심창>인 줄 알고. 이 심청은, 우리가 아는 심청이 아니었다. 우리가 어려서 들은, 심청이 인당수에 빠져 용왕의 아내가 된다는 이야기보단 황석영님이 쓴 심청이 훨씬 실제에 가깝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효의 상징으로 추앙받는 심청을 거리의 여자로 만들어 놓는 것에 대해 저항감이 앞섰다. 첩으로 팔려간 심청이 자신의 운명에 순응해 기꺼이 보약 역할을 하는 장면부터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 납치되어 창녀 생활을 할 때는 짜증이 났다. 우리가 아름답게 간직해온 여인이 만신창이가 되는 느낌이랄까. 심청의 활약이 시작되는 하권에선 그래도 마음이 흐뭇해졌고, 왕자의 부인이 되어 뭔가 대단한 일을 하나보다 하는 기대도 가졌지만, 남편이 죽고난 뒤 심청은 다시금 룸살롱 마담으로 돌아가고, 보육원을 제외하곤 이렇다할 업적을 남기지 못한 채 고향에서 생을 마감한다. 책에서 강조되던 심청의 총명함과 뚝심이 발휘될 기회는 거의 주어지지 않았던 거다. 책을 읽고나서 조금은 허무했던 건 그런 까닭이다. 실제 심청의 삶이 이랬다고 쳐도, 진실보다는 전설을 더 믿고 싶은 게 내 마음인데.

화류계 여인의 삶. 납치해서 팔아놓고는 몸값을 빚으로 떠넘기고, 일을 아무리 해도 빚이 점점 늘어가는 삶. 이러저러한 경로로 익히 들어서 알고 있던 포주들의 착취를 이 책에서 확인할 때마다 분노가 앞서고, 예나 지금이나 여성들의 삶이 고달프긴 마찬가지라는 생각도 든다. 마음이 짠해서 그렇지 소설적 재미는 매우 탁월해, 주인공이 심청만 아니었다면 훨씬 더 재미있게 읽었을 거다.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 점들을 써본다.

1) 노인이 심청의 기를 흡수하는 대목을 읽고 난 후부터, 대추가 먹기 싫어졌다.
2) 심청의 첫남편 이동유는 천주교에 빠져 심청을 찾을 생각을 포기한다. 종교는 그리도 쉽게 아내를 버리게 만드는가?
3) 그 꿈많고 치밀한 심청이 난수이에서 뭘 하겠다는 계획도 없이 돌아온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심청은 얼떨결에 류쿠로 떠나는데, 작가가 강조했던 총명함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4) 심청과 결혼했던 왕자, 그는 전 아내가 아픈데 심청과 결혼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아무리 왕자라지만, 너무하지 않는가?

앞으로 심청 하면 황석영이 그려낸 심청을 먼저 생각하게 될 것 같다. 전설이 깨진 걸 아쉬워하는 게, 내가 아직 철이 덜든 탓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문 - 2000년 전후 한국문학 논쟁의 풍경
이명원 지음 / 새움 / 2003년 11월
평점 :
품절


'무덤 속의 한국문학'. 언제나 문학에 대한 애정을 표현해 온 강준만 교수가 낸 책의 제목이다. 이 말처럼, 한국문학은 지금 위기에 빠져있다. 신춘문예에 목을 매는 문학청년이 수만명에 달하고, 베스트셀러가 숱하게 양산되는 마당에 무슨 헛소리냐고 할지 몰라도,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다면 우리 문학이 위기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문학이 비루한 현실의 전복을 위한 불온한 것이 되지 못한 채 개인의 내면으로 침잠하는 작금의 상황은 분명 절망적이다. 위기의 원인이 실타래처럼 얽혀있긴 해도, 우리 문학의 위기는 곧 비평의 위기다. 책 말미에 붙어있는 해설을 읽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요즘의 비평은 그야말로 '주례사 비평'으로 전락했다. 작품의 가치를 공정하게 평가하기보다는 문학권력의 눈치를 보느라, 혹은 공적. 사적인 인연에 얽매여 엉터리 비평을 쏟아낸다. 비평가라기보다는 카피라이터로 전락한 듯한 오늘의 비평가들은 우리 문학을 무덤 속으로 이끌고 있는 장본인인 셈이다.

그런 비평계에 한줄기 희망의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젊은 비평가 이명원은 최근작 <파문>을 통해 우리 문학의 추한 현실을 낱낱이 고발한다. 그는 말한다. '실천성이 거세된 이론의 향연은 푹신한 소파와 서늘한 대학연구실에서는 어울릴지 몰라도, 그것을 비평이라고 규정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비평이란...문학 현장에서 고뇌 속에 꽃핀 육성의 언어, 즉 언어적 투쟁과 실천이다 (187쪽)]

그동안, 타락해버린 문학권력을 비판하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권력을 가진 자들이 늘 그렇듯, 그들은 그런 비판들을 발전적으로 승화시키는 대신,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다음과 같은 음해를 시도함으로써 권력을 지키려고 애쓴다. 권력자 남진우의 말이다.

[...기존 문학장에서 자신이 부당하게 배제당하고 있으며 심지어 차별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363쪽)]

또다른 권력자 류보선도 문학권력 비판자들을 다음과 같이 폄하한다. [문학의 존재의미와 문학의 자존 차제를 발본색원적으로 부정하는 비판적 글쓰기의 그 거친 환원주의...(365쪽)]

그들은 문학권력 비판을 문학장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한풀이로 매도한다. 권력을 비판함으로써 자신들의 권력욕을 충족시킨다는 주장도 서슴지 않는다. 권력을 둘 이상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힘의 쏠림으로 정의한다면, 사람 사는 곳에는 어김없이 권력이 있다. 권력 자체가 나쁜 것은 결코 아니다. 문제는 그 권력을 이용해서 어떤 일을 하느냐는 거다. 지금의 문학권력 비판은 문학권력을 가진 자들이 우리 문학을 요즘 유행하는 말로 '두번 죽이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며, 권력 자체에 대한 비판은 아니다. 그걸 뻔히 알고 있을 권력자들이 터무니없는 궤변으로 그 비판을 잠재우려 하는 현실은 슬프기 짝이 없다.

푸코나 바르뜨 같은 철학자나 '아포리즘' 같은 용어가 이따금씩 등장하는지라 이 책을 읽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내공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내공이 없다고 읽지 못하는 건 아니다. 문학에 문외한인 내가 이 책을 읽는 데 열네시간이 걸린 것처럼, 부족한 내공을 시간으로 보충할 수 있는 법이니까. 다 읽고 나면 한국 문학의 어두운 현실에 절망을 느끼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멋진 비평가가 있다는 사실에 희망을 품게 된다. 한마디 더. 책 말미에 나온 조선일보 김광일 기자의 권모술수는 그가 기자인지, 아니면 모사꾼인지 헷갈리게 만든다. 베르베르의 책을 표절해 칼럼을 썼고, 나중에 탄로가 나자 궁색한 변명으로 일관했던 김광일 기자, 당신도 이제 바르게 살아야지 않겠는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4-04-14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먼저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주의 마이 리뷰에 감히(?)도 뽑혔다는 걸 마태우스 님으로부터 전해 듣게 되었습니다. 첨엔 뭘 축하해 주시는 건가 당혹스러웠습니다. ^^*
마태우스 님을 첨으로 뵙게(?)되었던 건 <파문>...이 리뷰 때문이었습니다. 책에 대한 논리적 분석과 속시원한 외침이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알라딘 서재 주인장들의 해박한 통찰력과 가차 없는 통렬한 비판으로 탄생되는 리뷰들을 꼼꼼히 읽어본다는 건, 분명 큰 행운입니다.
앞으로도 좋은 리뷰를 통해 도움받을 수 있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은근한 압력입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야클 2005-07-20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내일 받는데 기대가 커요. 예전에 강준만 VS. 남진우의 문학권력 논쟁을 도서관 가서 복사까지 해가며 보던 기억이 새롭네요. 님 리뷰보고 어제 질렀답니다. 아, 물론 Thanks to도 눌렀구요.
 
오버하는 사회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3년 11월
평점 :
절판


나로 하여금 세상을 바르게 보는 방법을 가르쳐 주신 강준만 교수가 <오버하는 사회>를 냈다. 기쁜 마음으로 책을 샀지만, 그의 다른 책들과 달리 이번 책은 그다지 공감이 가지 않는다. 그는 책 전반부에 많은 지면을 할애해 '열린우리당'을 비판한다. '어리석다' '시대착오적인 망상' '판단이 근시안적' '나라를 휘청거리게 할 만큼 위험천만한 것'등의 수사를 동원하면서. 그가 이렇듯 흥분하는 게 이해가 안가는 건 아니지만,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탈당파들이 민주당 내에서 개혁을 하길 바랐지만, 당내개혁이 불가능하면 나가서 새살림을 차리는 수밖에 없지 않는가. 당시 당권을 쥐었던 소위 '구주류'들의 면면을 보면 어떤 종류의 개혁도 가능하지 않아 보이지 않던가?

그는 열린우리당이 성공할 수 없는 열가지 이유를 나열한다. 사람이란 진짜 이유가 4-5가지 되면 동어반복을 통해 10가지 쯤으로 확대재생산하는 속성이 있는데, 강교수도 거기서 자유롭지 않아, 그가 든 10개의 이유란 것도 사실은 하나다. 호남의 민의를 배신했다는 것. 그렇다면 호남 유권자들은 정치개혁을 바라지 않는다는 얘길까. 그는 일관되게 주장한다. 민주당 구주류가 아무리 타락을 했을지언정 한나라당에 몸담았던 사람들보다는 낫다고. 그건 보기 나름 아닐까? 난 경선으로 뽑힌 자기 당 후보를 흔든 행위는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후안무치한 짓거리로 생각하기에, 그런 식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김대중의 개혁이 실패한 이유는 그 자신의 능력이 부족한 탓이 크지만, 자민련과의 연합도 일부 작용했다고 본다. DJP 연합 동안 JP가 한 게 '몽니' 말고 뭐가 있는가? 마찬가지로 난 민주당 구주류와의 동거로는 정치개혁과 지역주의 청산의 대망이 이루어지기 힘들다고 본다.

'참으로 놀라운 일은 많은 사람들이 민주당 분당과 재신임 정국을 연계시켜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12쪽)' 이런 강교수의 주장이 나로선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재신임을 받겠다고 선언한 건 측근비리 때문이지, 분당은 아니잖는가. 그가 내가 모르는 어떤 것을 알고 있을지 모르지만, 모든 것을 분당과 연관지어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다. 당을 지었다 부쉈다 하는 일은 우리 정치사에서 흔하디 흔한 일인데, 그렇게까지 오버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강교수는 심지어 이런 말도 한다. '이미 극단으로 치달은 코드정치부터 바꿔야 한다 (24쪽)' 코드정치. 보수언론들이 노무현 죽이기의 용도로 숱하게 써먹은 말인데, 그도 거기에 세뇌된 것일까. 노조에 대한 대응이나, 이라크 파병 과정을 보면 노무현의 주위엔 온통 친미사대주의자들이 인의 장막을 쳐놓은 것 같은데, 웬 코드정치란 말인가. 아무리 현명한 사람도 한가지 이슈에만 매몰되면 판단이 흐려지는 법, 때론 분노의 글쓰기도 필요한 법이지만 옳은 판단은 냉정함에서 나오기 마련이다. 분당에 관해서 그와 나는 생각이 다르며, 누구 생각이 옳은지는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내 정신적 스승인 강교수의 책에 이런 서평을 하는 게 미안할 따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