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의 제왕
존 그리샴 지음, 신현철 옮김 / 북앳북스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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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난 존 그리샴의 책을 거의 다 읽었다. 그의 책 대부분이 내게 큰 재미를 가져다 준 것은 사실이지만, 실망을 준 책도 몇개 있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를 우리나라에 알린 <The firm>이나 <펠리칸 브리프>같은 초기작에 비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그리샴의 내공이 훨씬 더 향상되었다는 것. 그전까지는 <레인 메이커>를 그리샴 최고의 작품이라고 꼽았지만, 이 책을 읽고나니 그리샴 최고의 작품은 바로 이 책이다.

어찌나 재미있는지 이 책을 읽었던 사흘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는데, 개인적으로 기차에서 이 책을 보는 건 피하라고 충고하고 싶다. 이 책에 정신이 팔려 하마터면 내려야 할 역에서 못내릴 뻔했다. 덮는 순간까지 스릴과 서스펜스를 느끼게 해주는 수작이고, 그의 책에서 늘 느껴지는,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관심도 어김없이 확인할 수 있었다.

한가지 이해가 안가는 일 하나. 해리슨 포드도 그랬고, 짐 캐리도 그랬듯이, 큰돈을 벌고나면 있던 부인도 갈아치우는 판에, 소설의 주인공은 엄청난 돈을 벌고 난 뒤에도 싫다고 자신을 차버린 여자친구-레베카-에게 집요하게 구애를 한다. 심지어 그녀가 유부녀가 된 뒤에도 거듭 애정을 보여 결국 그녀를 불행한 결혼생활로부터 구해내기까지 한다. '영원한 사랑'이란 걸 믿는 사람이 별로 많지 않은 요즘, 가족에 대한 사랑이 남다른 그리샴이 아내에게 보내는 영원한 사랑을 그런 식으로 표현한 게 아닐까?

그리샴이나 마이클 크라이튼의 소설을 읽으면서 늘 느끼는 거지만, 우리나라에도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소설을 썼으면 좋겠다. 국문과를 나온 소설가만 소설을 쓰니까 소설 주인공이 맨날 문창과 교수 아니면 소설가이지 않는가. 회사원이나 의사, 회계사 등 자신의 직업세계를 모델로 한 소설이 많이 나올 때, 우리 소설의 도약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여느 출판사라면 두권으로 나누어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켰을 462페이지의 두꺼운 책을 한권으로 만들어 서비스를 한 '북@북스' 출판사에 감사드린다. 한가지. 읽기도 지겨운 해설판이 왜 모든 책의 뒤쪽에 달려 있는지 난 모르겠다. 해설을 해야 책을 이해할 만큼 독자들이 무식한 것도 아닐테고, 그 해설들도 대부분 상찬 일색이다.

독자 대부분이 실망한, 하두 지루해 하품만 나던 <소환장>을 가지고 '그리샴의 작품 중 가장 발빠른 전개를 자랑한다'라고 사기를 쳤던 신현철 씨는 이 책에 대해 '법정 스릴러를 더욱 정교하고 감동적으로 배치하는 성숙함을 담아내고 있다'는 찬사를 보낸다. 이런 해설이 꼭 필요한가? 맞건 틀리건, 책을 읽은 독자들이 이 책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면 안되는가? 문학평론가가 쓴 해설은 그의 권위로 인해 읽는 이의 상상을 제약하고, 책의 느낌을 하나로 획일화시킨다. 온갖 어려운 수사로 점철된 해설을 읽다보니 종이가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한마디 더. 꽤 오랜 기간을 사귄 레베카가 주인공과 대화할 때, 레베카는 시종일관 존대말을, 주인공은 반말을 썼다. 저자의 잘못은 아니지만, 눈에 거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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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는 왜 유명할까? - 걸작으로 보는 서양미술사
아멜리아 아레나스 지음, 정선이 옮김 / 다빈치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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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미술에 관해 좋은 책들을 많이 내는 '다빈치' 출판사의 책이다. 이런 책이 나올 수 있다는 것, 나온지 7개월만에 2쇄를 찍었다는 건 우리 사회도 비로소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징조가 아닐까 싶다. 문화에 대해 '밥이 나오냐, 떡이 나오냐'는 냉소로 일관했던 우리들, 문화에 돈을 쓰기보다는 아파트 평수를 늘리고 차를 바꾸는 데만 관심이 있던 우리들도 비로소 문화를 즐길 여유를 갖게 되었다는 게 반갑기 그지없다.

요즘 들어 부쩍 미술에 관한 책을 읽고 있다. 뭉크가 누군지도 모를만큼 미술에 문외한이던 나도 열심히 책을 읽다보니 미술관에 가고픈 욕구가 갑자기 생기는 걸 보면,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은 진리인가보다. <명화는 왜 유명할까?>란 책은 우리가 익히 봐온 명화들을 알기쉽게 풀이해 놨는데, 나처럼 미술 공부를 해보겠다는 의욕이 넘치는 초보자에게 적합한 책인 것 같다.

이 책의 제목에 나오는 질문, 명화는 왜 유명한가에 대해 앤디 워홀은 이렇게 말했단다.
'복제했을 때 돋보이는 작품' 이 책의 저자는 이 말을 이렇게 해석한다.

[워홀은 언제나 맥빠진 척하면서 사물의 진실을 예리하게 바라본다...워홀은 걸작이 지닌 현대적 의미를 분명하게 정리해 놓았다...그림이 복제되어 책 표지나 포스터, 상품 디자인, 광고 등에 사용되는 사이에 명화가 '불후의 명성'을 얻는 기묘한 현상에 착안한 것이다(22쪽)]

외국에 갔을 때 에펠탑처럼 사진이나 TV로 봐오던 건축물을 보며 즐거워하듯, 미술관에서 우리의 시선을 끄는 것도 언제나 낯익은 그림이다. '카메라 플래시가 번쩍거리고, 관객들이 겹겹이 둘러서서 목을 길게 빼고 있다. 단 한번이라도 그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듯하다...'모나리자' 앞에서 벌어지는 풍경이다' 그 사람들 중 모나리자의 미술적 성과를 이해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이 책의 저자인 아레나스는 미술교육 프로그램 전문가는 고등학교 때 자신의 경험을 이렇게 설명한다.

[뭉크의 '절규'를 편집성 분열증의 전형이라고 한 설명에 무척 놀랐다. 그림의 정경이 ...눈에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동급생들도 그러했는데, 나 역시 뭉크의 그림에서 가정 생활의 중압과 기말 시험의 두려움이라는 사춘기의 수많은 악령을 엿보았다(171쪽)]

선생님의 말이 달달 외워서 머리에 담아야 할 무조건적인 진리였던 우리와는 달리, 다른 나라 애들은 선생의 가르침에 맞서 자신만의 눈으로 그림을 감상한다. 이런 문화적 감수성은 어릴 적부터 꾸준한 교육을 받아야만 길러지는 것이리라. 중년에 접어든, 그래서 머리가 굳어져 버린 나는 아무리 많은 책을 읽고 그림을 본다고 해도 그런 감수성을 갖기는 불가능하다. 우리의 후손들은 우리와는 다른 환경에서 문화적 소양을 기르기를 기대하지만, 점점 치열해지는 입시 경쟁을 생각하니 마음이 암담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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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바꾸는 아티스트
지승호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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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쉬운 게 어디 있겠냐만은, 인터뷰는 철저한 사전 작업이 필요한 분야다. 오프라 윈프리는 인터뷰 대상이 정해지면 사전 질문을 250개 정도 뽑는다고 하는데, 그녀가 인터뷰의 달인으로 평가받는 건 바로 그런 노력 덕분이다. 지승호님의 등장으로 인해 우리나라도 제대로 된 인터뷰어를 갖게 되었다. 다행스런 일이다. 지승호님은 이 책에서 소개된 9명에게 '아티스트'란 호칭을 붙였는데, 내가 보기에 진짜 아티스트는 인터뷰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지승호님이 아닐까 싶다. 사람들은 인터뷰의 가치를 인색하는 데 인색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제대로 된 인터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을거다.

이 책을 통해 평소 좋아하던 사람들의 생각을 알 수 있어 좋았는데, 특히 음반 다운로드에 관한 글들에 공감이 갔다. 공감했다는 건 내 생각과 일치되어 기분이 좋았다는 뜻, 나 역시 불법 다운로드 반대론자다. 왜? 내가 다운로드를 할 줄 모르니까. 신해철의 말이다.
'내가 지적하는 문제는 대중의 정신적인 태도다. 그들은 이미 기득권 집단이다. 자기 주머니에서 돈이 나가는 게 싫어서 공짜로 다운받고자 하는 이익집단임에도 불구하고, 문화운동으로 호도하려고 한다'

어느 사이트에서 지승호님이 '먹고 살아야 하니 이제 인터뷰는 그만하겠다'고 쓴 걸 봤다. 이해는 되지만 아쉬운 마음이 컸었는데, 이 책을 보니 지승호님이 앞으로도 계속 좋은 인터뷰를 해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이 많이 팔려서 그가 아무 걱정 없이 인터뷰를 할 수 있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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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뫼비우스 그림 / 열린책들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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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라는 베르베르, 이번에 나온 <나무> 역시 절찬리에 판매 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다소 생소한 '예약판매'라는 걸 할만큼 베르베르의 인기는 대단했다. 알라딘에 올라온 리뷰도 찬사 일색이다. '역시 베르베르!'라나? 하지만 베르베르의 팬으로 그가 낸 책은 거의다 읽은 나로서는 이번 책에 대해 별로 좋은 평가를 내리고 싶지 않다. 다 재미있다고 말하는데 혼자만 아니라고 하면 그 혼자가 이상한 사람이겠지만, 난 그래도 말하련다. 이 책, 하나도 재미 없었다고.

물론 그의 상상력은 기발하다. 왼손의 반란이라든지, 생각에만 집중하게 뇌를 떼어낸다는 '완전한 은둔자'도 그렇고, 사자를 애완동물로 쓰는 이야기 등은 그가 보통 사람이 아님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뿐이다. 기발한 상상력은 그 자체로 끝이 나며, 그전 작품들에서 느꼈던 감동과 웃음을 주는 데는 실패한 듯하다. 소설은 상상력만이 다가 아니니까.

책을 다 덮고 나서 '이런 소설은 나도 쓴다!'고 말하고 싶었을만큼 내 실망은 컸다. 일전에 그가 그린 만화책 <EXIT>를 읽었을 때도 절망을 했는데, 작가의 이름만 보고 책을 고르는 건 위험한 것 같다. 물론 나에게 있어 베르베르는 아직도 최고의 작가이고, 그가 다음에 책을 내면 당연히 사겠지만, 높아진 기대가 베르베르의 나태함에 배신당한 것 같아 기분이 영 씁쓸하다.

어찌보면 개인의 영광일 뿐인 박세리의 우승에 환호하고 박찬호의 1승에 기뻐하는 건, 우리가 스스로에 대해 자긍심을 갖기보다는 타인, 특히 우리가 부자나라로 알고 있는 미국이나 유럽의 평가에 좌우된다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닐까? 나 역시 거기서 자유롭지 못해, 영화나 책에서 우리나라 얘기가 나오면 공연히 가슴이 뿌듯하다. 한국을 유난히 좋아하는 베르베르는 책에서 한국 얘기를 빼놓지 않는데, 이번 책에도 그런 대목이 있다.

[공중 그네 곡예사는 상냥하고 예쁘게 생긴 한국 여자였다. 그녀가 처음으로 손가락을 내밀어 내 살갗을 만졌다....(61쪽)]

모국 프랑스보다 그의 책을 더 많이 팔아준 한국에 대한 베르베르의 보은일 것이며, 그런 섬세함이 고맙기까지 하다. 하지만 책에 코리아를 등장시키는 것보다는 더 좋은 작품을 씀으로써 삶에 지친 우리의 마음을 다독여 주는 게 천재 작가의 보다 나은 보은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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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죽이기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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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전, <김대중 죽이기>를 읽던 기억이 난다. 풍부한 자료들로부터 도출된 저자의 결론은 아무 생각없이 살던 내게 커다란 충격이었다. 난 그 책을 읽으면서 밤을 하얗게 지새웠는데, 그 책은 나로 하여금 강준만 매니아가 되는 데 일조했을 뿐 아니라 2년 뒤 대선에서 한때 '대통령병 환자'라고 욕했던 김대중에게 표를 던지게 만들었다. '정권교체가 세상을 바꾼다'는 강준만의 말과 달리 세상은 별로 바뀐 게 없는 것 같다.

남북 정상회담 등 눈에 띄는 가시적인 변화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수구 세력의 지배라는 우리 사회의 구도는 노무현의 당선 이후에도 그대로 유지된다. 아니, 노무현이 대통령이 된 이후 수구세력은 더욱 극심한 '죽이기'에 들어가, 취임 넉달을 지냈을 뿐인 노무현에게 '하야' '재신임' 등의 말들이 공공연하게 나돈다. '언론탄압' 운운하며 엄살을 피우지만,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실질적인 세력은 바로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종이신문이 아니던가.

최근 몇년간, 해마다 열권 가까이 나오는 강준만의 책들을 읽다보니 이젠 남의 도움 없이도 언론의 왜곡된 기사에 대해 비평할 수 있는 능력이 길러졌고, 인터넷으로 여러 신문을 모니터하는 게 일상생활이 되었다. 그런 나에게 이번에 나온 <노무현 죽이기>는 별로 새로울 게 없었고, <김대중 죽이기>에서 느꼈던 만큼의 감동을 느끼는 건 애초에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의미가 없는 건 아닐게다. 내가 아마츄어인 데 반해 강준만은 엄연히 프로, 내가 미처 몰랐던 것들을 깨우쳐 준 대목이 여러 곳이다. 더구나 지금까지 조선일보만 봐온 분들이라면 이 책이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바보들은 항상 언론 탓만 한다'는 발언으로 조중동에 대서특필된 강성구 의원처럼, 요즘은 노무현만 물어뜯으면 무조건 크게 써주는 분위기다. 신문에 이름 한번 나볼까 안달하는 의원들이 부쩍 막말을 많이하는 건 그런 분위기에 편승하고자 함인데,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표현이 이런 세태에 적합할 듯하다. 강준만의 책을 읽을 때마다 언론개혁이 없이는 우리나라의 미래는 없다는 말을 되씹게 되는데, '외환위기보다 더 어렵다'면서 연일 경제위기를 조장하는 우리 수구언론들은 언제나 정신을 차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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