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뫼비우스 그림 / 열린책들 / 200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라는 베르베르, 이번에 나온 <나무> 역시 절찬리에 판매 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다소 생소한 '예약판매'라는 걸 할만큼 베르베르의 인기는 대단했다. 알라딘에 올라온 리뷰도 찬사 일색이다. '역시 베르베르!'라나? 하지만 베르베르의 팬으로 그가 낸 책은 거의다 읽은 나로서는 이번 책에 대해 별로 좋은 평가를 내리고 싶지 않다. 다 재미있다고 말하는데 혼자만 아니라고 하면 그 혼자가 이상한 사람이겠지만, 난 그래도 말하련다. 이 책, 하나도 재미 없었다고.

물론 그의 상상력은 기발하다. 왼손의 반란이라든지, 생각에만 집중하게 뇌를 떼어낸다는 '완전한 은둔자'도 그렇고, 사자를 애완동물로 쓰는 이야기 등은 그가 보통 사람이 아님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뿐이다. 기발한 상상력은 그 자체로 끝이 나며, 그전 작품들에서 느꼈던 감동과 웃음을 주는 데는 실패한 듯하다. 소설은 상상력만이 다가 아니니까.

책을 다 덮고 나서 '이런 소설은 나도 쓴다!'고 말하고 싶었을만큼 내 실망은 컸다. 일전에 그가 그린 만화책 <EXIT>를 읽었을 때도 절망을 했는데, 작가의 이름만 보고 책을 고르는 건 위험한 것 같다. 물론 나에게 있어 베르베르는 아직도 최고의 작가이고, 그가 다음에 책을 내면 당연히 사겠지만, 높아진 기대가 베르베르의 나태함에 배신당한 것 같아 기분이 영 씁쓸하다.

어찌보면 개인의 영광일 뿐인 박세리의 우승에 환호하고 박찬호의 1승에 기뻐하는 건, 우리가 스스로에 대해 자긍심을 갖기보다는 타인, 특히 우리가 부자나라로 알고 있는 미국이나 유럽의 평가에 좌우된다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닐까? 나 역시 거기서 자유롭지 못해, 영화나 책에서 우리나라 얘기가 나오면 공연히 가슴이 뿌듯하다. 한국을 유난히 좋아하는 베르베르는 책에서 한국 얘기를 빼놓지 않는데, 이번 책에도 그런 대목이 있다.

[공중 그네 곡예사는 상냥하고 예쁘게 생긴 한국 여자였다. 그녀가 처음으로 손가락을 내밀어 내 살갗을 만졌다....(61쪽)]

모국 프랑스보다 그의 책을 더 많이 팔아준 한국에 대한 베르베르의 보은일 것이며, 그런 섬세함이 고맙기까지 하다. 하지만 책에 코리아를 등장시키는 것보다는 더 좋은 작품을 씀으로써 삶에 지친 우리의 마음을 다독여 주는 게 천재 작가의 보다 나은 보은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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