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술일기가 뜸하다. 기록상으로 보면 일주에 잘해야 한두번 마시는 듯하다. 작년엔 이런 주가 드물었는데 올해는 왜 이렇게 술을 안마실까. 올해는 조직관리를 안한단 말인가?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까봐 말씀을 드리자면, 답은 규정강화에 있다. 낮술은 아무리 마셔도 안치고, 밤술은 작년처럼 소주 한병 이상이 아니라 소주 한병 초과여야 술을 마신 거다. 그러니 오후 4시부터 소주 한병 반을 마시고 2차 가서 다시 소주 한병을 마신 어느날은, “6시 이전까지는 낮술에 포함된다”는 규정 때문에 달랑 소주 한병만 마신 게 되어 술로 카운트가 안된다. 그리고 작년엔 소주와 맥주를 마시면 술을 마신 게 되었지만, 올해는 “맥주는 술이 아니다”는 조항이 신설되어 순수하게 소주만으로 카운트가 된다(물론 안그런 적도 있지만...). 그래서 소주를 한병에 못미치게 마시고 2차에 가서 생맥주를 마신 10월 17일은 술일기에 기록이 안된다. 그러니 여기 올라오는 술일기는, 정말 주량껏 마셨다는 얘기.
103번째: 10월 15일(일)
마신 양: 소주 두병
수시면접이 끝나고 우리 학교에 있는 몇 안되는 친구 중 하나와 술을 마셨다. 원래 면접이 5시 전에 끝날 줄 알고 6시 반 쯤 보자고 했는데, 면접인원을 보고 시간을 따져보니 도저히 안되겠다. 사실대로 고백하고 “8시에나 가능하겠다”고 해야 했지만, 난 7시 쯤이면 갈 수 있을 거라고 해버렸다. 인간에겐 찰나의 분노를 피하려는 경향이 있는 법인지라 끊임없이 거짓말을 한다. 언제쯤 올 거냐는 질문에 “거의 다 왔어” “5분이면 도착해” 등등 자신도 안믿는 답변을 하는 건 그런 이유. 하지만 그런 것도 필요하긴 하다. “두시간 있어야 갈 거 같다”고 하면 “너 오지 마!”라고 하지 않겠는가.
7시를 넘어서부터 문자가 오기 시작했다.
“출발은 했냐” “배 고파 디지겠다” “닭이 다 불어터지겠다”
분노의 문자들을 다 못본 체 하면서 열심히 면접을 본 결과 난 8시쯤 그와 마주앉을 수 있었다. 그의 집에서, 그의 어머니가 해주신 닭을 앞에 놓고. 밖 대신 집을 택한 이유는 그의 딸인 뭉실이(마르치스다)가 그 전날 불임수술을 했기 때문이다. 수컷의 경우 그냥 고환만 제거하면 불임수술이 이루어지지만, 암컷은 난소와 나팔관은 물론이고 자궁까지 들어내야 한다. 생각만 해도 무서운 대형 수술, 인간이나 개나 여성의 운명은 이렇듯 가혹하다(불임수술이 과연 개를 위한 건지 아닌지는 여기서 따지지 않겠다). 어려운 일을 겪은 뭉실이는 그 충격 때문에 친구 곁에서 떠날 줄을 몰랐는데, 친구가 움직일 때마다 그 아픈 몸으로 따라다니는 모습이 참으로 안스러웠다. 지난번엔 내가 발라주는 닭 살을 열심히 먹었지만, 이번엔 몸이 아파 식욕도 없는 듯, 바닥에 축 늘어져 있었으니 더더욱 마음이 아팠다.
술을 마신 이후 난 늘 가던 모텔에 갔고, 단골이라고 신분을 밝혔음에도 5천원을 못 깎아주겠다는 아주머니에게 삐졌다.
“단골이고 뭐고, 깎아줄 수 없다니까요!”
그날 난 내 연구실 의자에서 잤는데, 하등 불편할 게 없었다. 그러자 깨달음이 찾아왔다. 그래, 바로 이거야. 돈 3만원 굳었잖아. 다음날 택시를 타고 사우나를 갔다왔음에도 돈이 남았다. 안녕, 모텔 소더비. 난 앞으로 쭉 내 연구실에서 잘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