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령 받기 전엔 열심히 할 것처럼 굴다가

막상 교수가 되고나면 어떻게든 서울로 갈 궁리만 하는 선생들을 싫어했더랬다.

뻔히 다 알면서 들어와놓고

여기 여건이 안좋다고 침을 튀기며 비판을 하다가

이곳보다 더 안좋은 대우를 감수하고 북쪽으로 가는 사람들이란.




어제 총 103명의 수시입학 면접을 보았다.

인생이 걸린 일이라 바짝 쫄은 학생들한테 난

생사여탈권을 움켜쥔 저승사자로 느껴졌을 거다.

하지만 면접에 있어서 내 자의성은 한계가 있었다.

3불정책 때문에 본고사가 안되니

편법으로 영어와 수학문제의 답을 면접 때 말하게 하니까.

불과 10분 동안 두 과목의 어려운 문제를 풀고

5분 동안 우리 앞에서 답을 말해야 하는 학생들.

이건 지식 테스트의 의미가 아닌, 순발력을 더 많이 측정하는 시합이다.

물어보면 다 알면서도 당황해서 손도 못댄 학생들이 꽤 있었으니 말이다.


우리 학교가 천안에 있는지라

환자 유치 및 지역발전에 기여한다는 명목으로-사실상 전자가 거의 다지만-

충남 지역의 고등학교에 다니는 혹은 졸업한 학생에게

‘지역 우수자 선발’의 명목으로 다섯명을 선발하고-‘지역 수시’

나머지 모든 지역의 학생들 중에 또다시 다섯명을 선발한다-‘일반 수시’


몇몇 학생은 정말 기가 막히게 잘했다.

영어 발음은 원어민 같았고

난 보기만 해도 어지러운 수학 문제를 척척 풀었다.

그런 애들한테 물어보면 거의가 일반 수시란다

필경 서울과 경기, 그리고 대전 지역 학생들일 거다

(대전은 충남에 있지만 서울에 준하는 곳으로 인정되어 지역수시에서 제외)

하지만 안 그런 학생도 많았는데

국어책을 읽듯이 영어를 읽고, 수학 문제는 손도 못대거나 엉뚱한 답을 했다.

그런 학생들에게 “어디 지원자예요?”라고 물으면 죄다

“지역 수시요”라고 답한다.

즉, 수도권 애들에 비해 충남 학생들의 실력은 현저히 떨어졌다.


사람들이 기를 쓰고 서울에 올라가려는 이유는 아마 이 때문일 거다.

자신이 아닌, 애들의 영어실력 향상을 위해서 해외연수를 가고

기러기 아빠도 감수하는 마당에

애를 위해 서울로 가는 것을 마다해서야 되겠는가.

그들을 이해하긴 하지만

갈수록 심해지는 서울과 지방의 학력 격차는 마음 아프다.

서울 내에서도 그건 마찬가지여서 내가 지금 학교를 다닌다면

강북에 사는 난, 아마 죽었다 깨어나도 의대를 들어가지 못했을 거다.


행정수도가 옮겨진다고 해서 서울의 기득권이 위협받을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헌재의 위헌 결정에 강남 분들이 환호하는 걸 보면서

어느 것 하나도 빼앗기지 않으려는 그들의 탐욕이 몸서리쳐졌었다.

“수학은...하나도 못풀었습니다.”란 말과 함께 쓸쓸히 돌아서는 학생의 어깨 위로

그때 그 사람들의 환호가 눈앞에 오버랩되었다.

이 나라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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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ninara 2006-10-16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방에서 잘하는 아이들은 서울로 지원하고...서울에서 점수 딸리는 아이들은 천안으로 온게 아닐까요? 의대니까 일정 실력을 갖추어야 지원이라도 하겠죠.

BRINY 2006-10-16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저희 애들도 지역수시 등등으로 거기 많이 썼는데, 영어 면접 준비 좀 봐줬는데, 영 아님~^^;; 아무리 예뻐하는 애라도 아닌 건 아님^^;; 이런 간단한 문장도 못쓰냐라고 구박했지만, 1, 2주에 되는 게 아님^^;; 역시나 오늘 와서는 울상을 하고선 '망쳤어요...'이러더라구요.

마태우스 2006-10-16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니님 안녕하시어요. 지금 서울의 웬만한 대학은 죄다 의학대학원으로 바뀌어서요 현역 고교생 애들이 의대에 가는 게 굉장히 어려워졌습니다. 글구 저희 지원한 지역우수 애들은 대부분 학교에서 공부 잘하는 애들이래요...

마태우스 2006-10-16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리니님/안녕하시어요 반갑습니다. 님과 저의 관계는 그러니까...님이 원서를 써주시고 제가 그 애들을 면접보는군요. 밀접한 관계!

BRINY 2006-10-16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3학년 담임은 아니구요^^;; 그냥 3학년 인문계 한교과 담당하고, 제가 담담하는 CA부서에 있는 3학년 애들 면접 준비 좀 도와주고 진로 상담 좀 해주고 그 정도랍니다. 전 자연계 애들은 잘 모릅니다^^;; 내년쯤이면 제가 1학년때 국사를 가르친 자연계애들이 마태님께 면접보러 갈 지도 모르겠군요. 그 때 잘 좀 부탁드려요~~

sooninara 2006-10-16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학대학원이요? @.@
울 아이들 대학 갈때 되면 정말 걱정됩니다. 좁은문을 통과할수 있을지.ㅠ.ㅠ

blowup 2006-10-16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 님. 그럼 지금 서울에 있는 대학들은 거의 다 의과대학원만 있고, 학부는 없다는 건가요? (언제부터 그렇게 된 건가요?) 그럼, 자연계 학부에서 의과대학원을 가게 되는 건가요?(그런 이야기를 언뜻 듣기는 했지만. 구체적 관심사가 아니어서 잘 살펴보지 않았는데. 정말 많이 바뀌었나 봅니다. 시간이 되시면, 간략하게 설명해 주세요. 검색보다 마태 님의 설명이 더 재미있을테니까요.)

marine 2006-10-16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울과 지방은 비단 학력차만 아니라 거의 모든 면에서 현격한 격차가 나니까 어디서부터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마태우스 2006-10-16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리니님/아 네...내년에도 제가 면접을 본다면요^^ 선생님한테서 국사를 배웠다면 일단 바른생각을 갖고 있을 듯 싶네요.
수니님/그러게 말입니다 갈수록 살기가 힘들어지는 느낌....
나무님/안녕하세요 나무님. 회의 가기 전 잽싸게 답변 드립니다. 서울에 있는 의대는 대부분 의학대학원으로 갔습니다. 정부에서 로스쿨과 연계시키고 BK21을 가지고 압박을 하기도 하는 등 엄청나게 푸쉬를 했지요. 그 결과 그렇게 된 것이구요, 하지만 서울대처럼 절반만 의학대학원에 간 학교도 좀 됩니다. BK 받으려고 그렇게 편법을 쓴 건데요, 어찌되었건 서울의 의대는 그로인해 정원이 팍삭 줄어버렸어요. 서울의대의 경우 제가 갈 땐 210명이 정원이었는데 지금은 60명인가를 뽑죠 아마. 그러니 전국 100등 안에 들어도 위험하단 말이 나오고있다는... 그리고 의대대학원에 안가고 저항하는 학교는 대부분 지방의 사립대입니다. 의학대학원에 간다고 지방까지 애들이 오겠냐, 차라리 현역 애들 받아서 잘 가르침으로써 실리를 취하자 뭐이런 생각을 하고 있답니다. 제 설명, 재미있진 않았지만 그래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블루마린님/그러게 말입니다. 문제는 그게 점점 커지고 있다는 거죠... 교육을 통해 대물림까지 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비로그인 2006-10-16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 년을 바라보고 세운다는 교육정책이라고 말은 하더니만 정말 수시로 바뀌어서 그 현장을 떠난지 몇 년이 지나자 이젠 정말 어찌되는지를 모르겠어요. 이러니 제 주위에서는 속속들이 한국을 떠나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만은..'이라고 말하면서요.

2006-10-16 17: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Mephistopheles 2006-10-16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건 몰라도 우리나라 교육은 이대로라면 미래가 없다..
라는 생각에는 절대적으로 동감하고 있답니다..

애쉬 2006-10-16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첫인사를 이런 곳에 하게 되는군요. 면접 얘기 듣고 인사 안할 수가 없었어요. ^^ 토욜날 저희반도 거기까지 면접보러 다녀온 아이들이 몇 있었걸랑요. (여긴 부천) 울상 지으며 나왔다는 아이들 우리학교 애들 아닌가 싶어 마음이 아픕니다~ 저희 학교는 경기도에 있지만, 서울과의 학력 격차는 심각하게 느끼고 있어요. 특히 입시에서는 더 차이가 나더군요. 작년과 또 달라요~ 점점 특정학교들은 서류 점수에서부터 밀리더라구요. 아, 정말 대학 가기 힘들어요. ㅜ.ㅜ
담엔 부천애들 보이거들랑 신경 좀 써 주셔요. ㅋ

ceylontea 2006-10-16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리 자주 바뀌니.. 지현이 클 때쯤은 어떤 세상일지 상상도 안갑니다... ㅠㅠ;

2006-10-16 18: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6-10-16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당장 제 동생(지금 중3임)이 대학 갈 때만 해도 어떤 정책이 또 펼쳐져 있을지 상상이 안갑니다..

기인 2006-10-17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방은 서울의 식민지이지요. 일제치하에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였던 것과 유사하게. 식민지가 별겁니까? 지방의 자원(인적자원, 물적자원)의 착취를 통해 부의 축적을 이루고, 이를 평등하게 재분배하지 않음으로서 생기는 식민본국(식민본지역)과 피식민지역의 경제적, 문화적 차이들. 지역들이 계속 분절되면서 위계가 생겨나가고. 쩝..
어쨌든, 저 '단'자를 보니 가슴이 뭉클해지네요. 저는 단대부고 나왔거든요 ^^;;;

수퍼겜보이 2006-10-17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인님 말씀 동감.

미래소년 2006-10-17 0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서울이어도 차이가 많이 납니다.
특히 특정 대학교의 경우, 각 고등학교별 차등 점수 체계를 두고 있고요.
작년 우리 반 반장이었던 아이가 의대 입시에 실패한 후 차선책으로 간호대에 합격해서 1학기 다니더니 도저히 안 되겠다며 반수를 준비하더군요.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참, 기인님 제 동생도 단대부고 나왔어요~*)

라이더 2006-10-17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전 제 고향 부산에 가면 그냥 막 슬퍼집니다. 만세 부를때 왜 부산 사람들도 같이 만세를 부르는지, 아직까지 우리동네가 이해가 안되여. ㅠ.ㅠ

마태우스 2006-10-19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이더님/부산도 그러면 다른 도시야 더 말할 나위도 없겠지요. 저도 천안에 있으면서 점차 천안주민스런 생각을 갖게 되는데요, 좀 많이 열악합니다.
미래소년님/그렇죠..고교등급제를 금지한다 해도 많이들 하고 있나보더군요... 입시제도에 정답은 없지만 지금은 넘 삭막해요..
수퍼겜보이님/저두요
기인님/앗 단대부고 나오셨나요? 반갑습니다. 단으로 연결이 되는군요 ^^ 지방서울은 식민지이기도 하지만 마이너와 메이져 같아요. 마이너리그서 잘한 사람은 메이져로 가고.... 써놓고보니 별반 좋은 비유가 아닌 듯...
주드님/뭐, 정책이 오락가락하는 건 있겠지만 한가지는 확실할 듯 싶어요. 미친듯이 과외를 하고 돈을 쏟아부은 곳에 길이 있으리라는..... 우울한 현실입니다

마태우스 2006-10-19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분/님 서재에 댓글 달았어요
실론티님/이런 혼탁한 세상에 애를 보내는 게 미안하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애쉬님/부천 애들 보면 잘해줄께요.... 님 애들이 좋은 성적을 거뒀으면 좋을텐데요... 대학서열에 이어 고교서열도 이제 절대적인 게 되어버리는 듯...
메피님/그러게 말입니다. 한숨만 나오죠...
주드님/떠날 수 있는 사람은 떠나겠지만, 대부분이 또 떠나지 못하는 사람인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