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세 때, 혈압이 높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실습을 위해 측정한 혈압이 150을 넘었던 것이다.

진료를 받은 결과 원인을 알 수 없는 소위 본태성 고혈압.’

의사는, 일단 젊으니까 덜 짜게 먹는 걸로 해보고 안되면 약을 먹자고 했다.

난 그 뒤로도 계속 평소 먹던대로 먹었고, 대신 병원을 다신 가지 않았다.

지금 직장에서 건강검진을 할 때, 담당자는 이렇게 말했다.

오자마자 재서 그런가 혈압이 높네요. 다시 한번 잴께요.”

다시 잰 혈압은 먼저번보다 더 높았다.

의사들은 죄다 혈압약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생각해보겠다고 한 뒤 넘어갔다.

그런 게 귀찮아서 한번은 남이 혈압을 잰 뒤 가져가지 않은,

정상 혈압이 찍힌 기록지를 내 것인양 낸 적도 있다 (이거 범죄일까요... -.-)

 

올해 초, 일이 너어어어무 많았다.

거의 매일같이 새벽에 잤고, 하루에 서너시간씩 자는 일정이 반복됐다.

일은 끝이 없었고, 할수록 더 많아졌다.

갑자기,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죽으면, 아내와 강아지 다섯 마리는 어떻게 될까, 에 생각이 미쳤다.

그래, 오래 버텼어. 이젠 약을 먹을 때야.

신입생 OT에 갔을 때, 방을 같이 쓰게 된 내분비 선생님에게 혈압상담을 했고,

외래진료를 보기로 약속했다.

그는 내 혈압에 살짝 놀랐지만, 이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선생님도 혈압약 먹기 싫으신 것 같은데, 우리 딱 한달만 먹읍시다.”

그의 말에 따르면 혈압을 30만큼 내린다고 할 때,

약으로 15를 내리고 나머지는 내가 살을 뺌으로써 혈압을 내리자고 했다.

실제로 중환자실에 들어갔다 온, 그래서 체중이 지금보다 14킬로가 덜 나갔던 2011년엔

내 혈압이 생애 최초로 정상이었으니,

살만 뺀다면 혈압약을 끊을 수도 있을 터였다.

 

그 한달간 난 살을 빼고 혈압약을 끊는 상상을 대략 오십번쯤 했다.

스스로를 위로한답시고 혼자서 고기를 먹을 때도,

자정이 넘어서 배가 고프다며 라면을 끓여먹을 때도,

입이 심심하다면서 말랑카우를 계속 쳐넣을 때도 그 생각을 하며 좋아하곤 했다.

그렇게 한달이 지났을 때, 굳이 체중을 측정할 필요도 없을만큼 난 체중이 높아져 있었고,

의사는, 이전보다 훨씬 크기가 큰, 그래서 효과도 더 센 약을 두달치 처방해 줬다.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난 지금, 난 여전히 그 커다란 혈압약을 먹는다.

그리고 오늘 건강검진에서 그때보다-약을 큰 걸로 바꿨을 때보다-

더 체중이 높아져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아무래도 남은 평생, 혈압약을 먹어야 할 것 같다.

, 다음은 덤이다. 초음파를 할 때 담당선생님이 한 말,

지방간이 너무 심하네요. 신경 좀 쓰셔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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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7-11-10 09: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입이 심심하다면서 말랑카우를 계속 쳐넣을 때도 ...
이 대목에서 (죄송하지만) 빵 터짐요...^^;;;
혈압약을 드심이 나으실 듯... 허허허.

마태우스 2017-11-10 10:10   좋아요 2 | URL
비연님 안녕하세요 저 아무래도 계속 먹어야할듯요. 목캔디도 좋아하고 말랑카우도...집 책상 위에 두봉지 있답니다 ㅠ ㅠ

비연 2017-11-10 10:50   좋아요 3 | URL
ㅜㅜ 저도 말랑카우 마아아아니 좋아하는데.
급먹고 싶어지네요... 뱃살 빼야 하는데 말이죠. ㅜ

책한엄마 2017-11-10 09: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건강하세요-^^*
이번에 우다다 나온 책들이 건강에 해를 끼쳤나봅니다.
재미있게 잘 읽고 있어요.
좋은 책 많이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마태우스 2017-11-10 10:10   좋아요 4 | URL
네 감사합니다. 글구 제 책은 아직 부족합니다. 될때까지 쓰겠단 각오로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stella.K 2017-11-10 14:33   좋아요 4 | URL
아유, 마태님 여기서 어떻게 더 재밌게 씁니까?
저도 꿀꿀이님과 같은 생각이어요.
저는 요즘 두 권의 책을 동시에 읽고 있는데
지금 읽고 있는 책이 재미면에선 그다지 재미가 없어요.
그런데 보내주신 책 짬짬히 읽으면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세 권을 한꺼번에 읽는 경우는
머리털나고 처음이거든요.ㅎ

그나저나 혈압이 높으셔서 어째요.
건강 조심하세요. 건강하셔야 책도 계속 쓸 수 있죠.^^

비공개 2017-11-10 10: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말랑카우에서 저도 빵! ㅋㅋㅋ
최근 책도 많이 나오고 엄청 바빠지셔서 건강에 많이 영향을 미쳤나 봅니다.
건강하셔야 하는데요!!

마태우스 2017-11-16 05:47   좋아요 2 | URL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말랑카우 한봉지, 이 글 쓰고 나서 사흘 후에 원샷했어요 ㅠㅠ 앞으로 집에 들이지 않기로 했답니다. 님도 건강하시고 좋은 글 쓰시길 빕니다

희망찬샘 2017-11-10 21: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헛. 우째요. 심각한 이야기를 안 심각하게 쓰셨지만... 그래도 심각하네요. 저도 엄니께서 ˝너도 엘리베이터 타지 말고 계단을 걸어 올라 가보는 것이 어떠니?˝하셨지만...

마태우스 2017-11-16 05:48   좋아요 2 | URL
안녕하셨어요 계단 걷는 것도 참 좋은데, 막상 걸으려면 너무 힘들어서 오래 지속하지 못했습니다. 앞으론 좀 해볼게요...저희 아파트 4층이라 아주 적당해요.

2017-11-11 1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