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에 나온 시집이 바로 이거예요...
“오늘 시간 있냐?”
친구가 써클 졸업생 모임이 있다며 전화를 했던 어제, 난 약속이 있었다. 8시 20분에 하는 <콘스탄트 가드너> 예매가 되어 있었던 것. 영화가 끝난 후라도 가겠다고 말했다. 약속 장소인 일산에 가보니 생각보다 많은 선, 후배들이 모여 있다.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들. 1차부터 합류하지 못한 건 아쉽지만, 한시간 남짓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나이든 사람끼리 가는 노래방은 편하다. 내가 아는 옛날 노래만 하니까. 양희은이 부른 <한계령>을 부른 선배도 있었고, 한 후배는 <꿈의 대화>를 부른다. 윤도현의 <사랑 two>가 최신곡으로 느껴질 정도. 나이가 들어서 편한 것 중 하나는, 노래를 안부르고 버텨도 괜찮다는 것. 남이 하는 걸 따라하는 건 좋지만, 마이크를 대고 부르는 건 이제 싫다. 가끔씩 노래를 하라는 사람이 있었지만 한곡도 안부르고 버텼다. 그냥, 노래 부르기 좋아하고 노래도 잘 부르는 사람들의 노래를 듣고 있는 게 좋다.
12시 반, 술자리가 끝났는데 선배 누나가 줄 게 있다고 우리를 데려간다. 차 트렁크에 들어있던 건 한 무더기의 시집.
“어,누나 시집 냈어요?”
하지만 책날개의 저자 사진을 보니 누나가 아닌, 남자의 것이다.
“아아, 남편 분이시군요.”
저자 소개를 읽던 중 난 경악을 금치 못했다.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다...2003년 시단에 데뷔했다.”는 소개말 밑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있었기 때문.
“2005년 4월 아름다운 봄날, 북한산 봉우리에서 꽃처럼 졌다.”
늘 여유롭던 그 누나가 그런 아픈 일을 겪다니. 일년 전 이맘때, 누나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분이 쓴 시들을 모아 추모 시집을 냈나보다.
후배 둘과 집으로 오는 도중 이상하게 술이 먹고 싶었다. 전날인 목요일날 취하도록 마셨으니 금단증상은 아닐 터, 그럼 부군을 잃은 누나 때문이었을까? 더더욱 이상한 건 혼자 마시고 싶었다는 것. 우리집 근처에서 후배 둘을 보내고 참이슬 두병과 참치캔을 샀다. 소주는 잘 들어갔다. 한병을 비우고 또 반병을 마셨지만 전혀 취하지 않았다. 저녁을 안먹었다는 걸 새삼 깨닫고 라면을 끓인 것도 그때, “다이어트 보름이 물거품으로 변하는구나!”는 탄식에도 불구하고 라면은 너무도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