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절을 잘 못하는 나같은 사람은 그 중에서도 일을 시키기 가장 좋은 부류다. 하나 둘 일이 내게로 떠넘겨질 때는 몰랐는데, 어느덧 정신을 차려보니 우리 학교가 아예 날 중심으로 시스템이 확립되어 있는 거다. 난 열 개가 넘는 위원회의 핵심멤버고, 예과 강의는 내가 없으면 상상할 수 없고, 지금 본3 애들이 하는 PBL이란 수업도 거의 내 주관이며, 심지어 다음달 초에 있는 상조회 모임을 위해 프로그램을 짜는 것까지 해야 한다. 이 상황에서 내가 확 그만둬 버린다면, 우리 학교는 상당 기간 혼란을 겪을 것 같다 (물론 길어야 한달일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학교 측에서는 나에게 ‘연구윤리 위원회’란 임무를 맡겼다. 황우석 박사가 업계에 공헌한 것은 바로 연구윤리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했다는 것, 지금 각 대학마다 윤리위원회를 만들고 운영하는 데 지대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우리 학교 역시 ‘임상시험 센터’라는 걸 만들 생각이며, 이건 그냥 하는 소리지만 장차 나를 ‘센터장’으로 키우려는 시도가 있단다. 그래서 부원장은 날더러 “방학 때 미국 좀 가서 배우고 와!”라고 말한다. 미국에 가기 싫어 몸살을 앓던 중 다행히 삼성병원에서 ‘임상시험 전문가 과정’이라는 걸 개설했고, 우리 학교의 앞날을 책임질 나는 대표로 지원을 했다. 연수비 88만원은 병원에서 내준다고 했지만 문제는 그 40명에 뽑힐 수 있느냐는 거였다.
나: 제가 지원하면 뽑힐 수 있을까요?
담당자: 의사면허 있으면 대충 다 될걸요. 간호사나 약사 분들도 많이 지원하는 모양이어요.
하지만 오늘 온 메일은 경쟁률이 3: 1을 넘은 탓에 “귀하를 모시지 못해서 유감”이라는 소식을 전해 왔다. 6월까지 매주 화요일마다, 6시 반까지 거기 가서 수업을 들을 생각을 할 땐 암담했는데, 막상 떨어지고 나니까 은근히 화가 난다. 눈이 작아서 안된 건지, 아니면 전공 분야가 맞지 않아서 안된 건지 모르지만, 시험센터의 장이 되는 데는 이렇듯 많은 역경이 도사리고 있다. 2학기가 조금 더 바쁘긴 하지만 그때 개설되는 연수과정을 노려보는 수밖에. 센터장은 내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