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일대 일
김규항님은 “일대 일로 만나서 나쁜 사람은 없다.”고 했다. 얼굴을 맞대고 만나도 악의 기운이 샘솟듯이 발산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 이 말은 진리다. 어떤 사람에 대한 미움의 감정도 그 사람을 보지 않았을 때, 혹은 소통이 끊겼을 때 증폭되기 마련이다.
2. 수업
안그래도 내 이름으로 된 수업이 많아 죽겠는데, 한 강좌의 책임교수를 반강제로 떠맡았다. 십년 선배가 좀 맡아 달라고 부탁하는데 거절하기가 뭐했다. 나 또한 몇 년쯤 후에 후배에게 같은 말을 하겠지. 예과 강의의 운명은 이렇듯 축구공 같다.
그 강좌는 자연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의료의 여러 가지 측면을 가르치는 내용인데, 임상 각 과의 선생님들이 한시간씩 강의를 한다. 그리고 그 강좌가 시작되기 전, 책임교수가 일일이 선생님들께 전화를 걸어 강의 여부를 허락 받아야 한다. 그게 가장 어려운 일, 난 문자메시지와 메일로 무수히 연락을 했다. 메일로 답을 주신 분은 딱 세분, 전화해 주신 분은 두분. 나머지는 연락두절이었다(휴대폰도 잘 안받는다). 그나마 연락을 준 분들도 “나 그 강의 3년이나 했는데 이제 좀 빼주면 안될까?” “시간이 안되는데 다른 사람 시키면 안되겠니?” 같은 거라, 맥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틀간 머리만 긁다가 오늘 낮에 직원식당에 밥을 먹으러 갔다. 거기서 난, 만나고자 하는 사람들을 꽤 만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날 보고 미안해했다.
“아 참 제가 연락 드리려고 했는데... 강의 언제라구요?”
그때 못만난 사람은 강의에서 제외시켰고, 그 대신 눈에 띄는 새로운 사람들을 강의에 집어넣었다. “한번만 도와 주십시오”라고 말하면 못이기는 체 하고 해주겠다고 했다.
“선생님, 항문질환 좀 해주시겠어요? 그게요, 은근히 많다니깐요.”
“선생님도 의리상 한시간 해줘야지 않겠어요? 난청 어때요?”
물론 꼭 연락해야 할 선생님이 두분 계시지만, 스물두분 중 스무명에게 확답을 받은 건 쾌거라 할만하지 않은가. 역시 일대일로 만나서 나쁜 사람은 드물다.
3. 제법인데
이번주 금요일부터 2박 3일간, 신입생들이 들어왔다고 재학생이 총 출동해 오리엔테이션을 겸한 여행을 간단다. 그런 데 가면 순전 술만 먹인다는 인식이 박혀 있어서 작년에는 못가게 했는데, 그랬더니 애들이 아주 강경해졌다.
“올해는 꼭 가야 합니다!”
자기 돈 내고 자기들이 가겠다는데 계속 말리는 게 말이 안되고, 학장님도 허락하셨는데 내가 뭐라고 반대한담? 하여간 나도 거기서 1박을 해야 한다. 과연 2박3일간을 무슨 일정으로 채우나 싶어 계획표를 보다가, 먹던 쵸코렛이 기도로 들어갔다. 이틀째인 토요일 아침 9시 반부터 2시간 반 동안 홍세화 선생님의 강의가 잡혀 있는 거다.
난 사실 우리 학생들이 사회에 별반 관심도 없고,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줄 알았다(우리 학생 뿐 아니라 다른 대학 애들도). 그전에 김규항 님이 강사로 오셨을 때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걸 보고 그럼 그렇지라고도 한 적도 있다. 그런데 지들이 알아서 홍세화님을 초빙하다니, 우리 애들이 그렇게 멋진 애들이란 말야? 술을 좀 먹더라도 그 강의만 듣는다면 오리엔테이션 2박3일은 헛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음날 아침 대구에 내려갈 일이 있어서 홍세화님의 강의를 못드는 게 정말 안타깝다. 멋진 제자들 같으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