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번째 술을 2월 2일날 마셨다.
내 베스트프렌드의 아버님이 돌아가신 날.
그날은 내가 스페인에 가기 전날이었다.
친구에겐 미안하지만
친구 아버님 빈소를 찾은 뒤 출국을 할 수 있었기에
마음이 좀 홀가분했다.
8개월쯤 전인가
친구 아버님은 간암 판정을 받았다.
착하디착한 내 친구만큼
아버님 역시 좋기만 한 분이셨는데
인간의 수명이란 착함의 정도와는 별 상관이 없다.
학생 때, 간암 환자가 어떻게 되는지를 보고 나서부터
“다른 암은 몰라도 간암만큼은 걸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간이란 곳이 워낙 혈관이 풍부해서인지
수술로 다 제거했다 싶어도 금방 재발했다.
씨티 사진에서 보이던 간암 덩어리가 어찌나 공포스럽게 느껴지던지.
내가 아는 친구는
간암에 걸린 아버님을 위해 간이식을 해드렸는데
그 아버님은, 일년도 못사시고 돌아가셨다.
물론 아버님의 일년이 간의 절반과 바꿀만한 것이긴 해도
아주 나중에 친구는 이렇게 투덜거렸다.
“아이 참, 더 오래 사셨어야지 그렇게 빨리 가시면 어떡해!”
혈관을 막아 암덩어리를 제거하는 시술이 성공적이었다고
친구는 좋아했지만
난 그냥 “어, 그래.”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경과가 좋아서 퇴원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그랬다.
“잘 되었구나.”라고 했어도
그건 진심에서 나온 말이 아니었다.
아무리 의학이 발달했다 쳐도
암과의 싸움은 자신과 가족들의 희생을 요구하는 어려운 싸움이다.
시술이 끝나자마자 암은 다시 자랐고
그 힘든 방사선 치료도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허리로 전이가 되었고
그 통증은, 참을성 많은 친구 아버님도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그러다가 뇌출혈이 생겼다.
아버님은 의식을 잃었고
호흡기에 의존한 채 실날같은 삶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2월 2일
날 볼 때마다 인자한 웃음을 지으시던 아버님은 저 세상으로 가셨다.
자식이 많은 게 좋을 때가 딱 한번 있다.
친구 아버님의 부친상에 가보니
아들 셋이 딱 버티고 서있는 모습이 참 든든해 보였다.
무척이나 의가 좋은 그 형제들이 있으니
눈을 감으실 때, 아버님의 마음이 더 편하셨을 거다.
다음날 아침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이런 때 가서 정말 미안하다고.
친구가 전화를 걸었다.
“미안하면 화환이나 하나 보내 줄래?”
정말로,
난 친구의 부탁이 고마웠다.
난 조금 비싼 화환을 보냈고
보지는 못했지만 그 화환이 나의 빈자리를 조금은 가려 주었으리라.
친구 아버님의 명복을 빈다.
* 스페인에서 난 한번도 술을 마시지 않았다. 물론 전혀 안마신 건 아니지만 올해 들어 더 까다로워진 규정을 충족시키는 술자리는 한번도 없었다. 딱 한번 규정량을 채운 적이 있다. 하지만 그건 낮술이라, 카운트에서 제외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