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시골 의사
프란츠 카프카 지음, 이덕형 옮김 / 문예출판사 / 200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귀가 따가울 정도로 명성이 자자한 카프카의 변신을 이제야 읽었다. 세상을 다 아는 것처럼 굴었던 친구 하나가 대학 1학년 때부터 카프카 얘기를 했던 것이 내게 반발심을 주었는지, 그 책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던 것. 하지만 <시지프 신화>를 읽다보니 까뮈가 <변신>을 잔뜩 칭찬해 놓았다. 그래서 읽었다. 내가 책을 고르는 기준은 이토록 단순하다.


십여년 전, <서편제>에 100만이 넘는 인파가 몰렸을 때, 한 평론가가 이렇게 썼었다.

“서편제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는 사람이 그 중 얼마나 될까.”

그 말에 기가 죽어 그 영화를 보지 못했던 나는 <변신>을 읽고 나서도 같은 감정을 느낀다.

“변신을 읽긴 했지만 내가 이 소설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했을까?”
하지만 영화의 이해가 감독의 의도를 파악하는 게 아닌 것처럼, 소설을 읽는 목적도 작가의 의중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문제작을 하나 읽었다고 자위할 수 있다는 것도 책을 읽은 보람 중 하나가 아니겠는가.


<변신>에서 궁금한 것은 잠자가 변신한 벌레의 크기가 과연 어느 정도일까 하는 거였다. 사람 크기인 것 같기도 하고, 그보다 더 작은 것 같기도 하고. 읽는 내내 그 생각을 하다보니 <변신>이 끝난다. 두 번째 단편인 <유형지에서>는 읽을 때는 데자 뷰 현상이 나타났다. 전에 한번 읽은 느낌이 나고, 결말도 생각이 났다. 설마 내가 이 소설을 전에 한번 읽었을까? 한가지 한심했던 장면은 그 장교가 기계를 설명할 때 뭐가 뭔지 머리속에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는 것. 사실 나는 공간 지각력이 없다. 내가 길눈이 그토록 어둡고, 아는 사람의 얼굴도 못알아보는 것도 그래서이리라. 평면적인 숫자를 다루는 수학 1은 그런대로 했지만, 각종 도형이 날아다니는 수학 2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던 것도 그 일환일 것, 나는 결국 그 기계가 어떻게 생겼는지 이해하는 걸 포기해 버렸다.


<시골의사>와 <판결> 역시 뭐가 뭔지 모르는, 무지하게 난해한 소설이었다. <시골의사>의 끝은 이렇게 끝난다.

“속았구나! 속았구나!...결코 다시는 돌이킬 수가 없구나!”

도대체 누가 누구에게 속았다는 걸까. 내가 속인 건가? 역시나 카프카는 무지하게 난해한 작가, 알베르 까뮈가 카프카를 찬양한 것도 이제야 이해가 된다. 내공 높은 사람들끼리만 통하는 게 있는 법이고, 나 같은 사람이 그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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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2-01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버지의 사과 폭격을 맞고 등에서 진물이 나는 걸 보면 대략 사람 크기이긴 한 것 같습니다. 저는 단식광대, 유형지에서 도 좋았습니다. `변신'은 한 작품을 가지고 한 달 내도록 공부했던 기억이 나요. 하면서도 참 좋다, 하면 할수록 좋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내 가방 속에 카프카의 변신이 원어로 들어있다는 것이 원없이 좋았습니다.

다락방 2006-02-01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변신] 을 아직 안 읽고 있는데 말이죠..흐음..

라주미힌 2006-02-01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해가 안가면 남들이 '이해' 못하도록 몽롱한 리뷰를 씁니다 냐하하하... (착각인가)

moonnight 2006-02-01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사람 크기일 거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네요. 저역시 카프카의 소설은 내공이 딸려서. ㅠㅠ "도대체 누가 누구에게 속았다는 걸까, 내가 속인 건가? "에서 웃게 만들어주시네요. 마태우스님의 즐거운 리뷰를 읽을 수 있다는데도 소설의 의미가 있습니다! ^^

마태우스 2006-02-01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밤님/아 사람 크기가 맞습니까? 그렇군요. 그 정도 크기라면 질겁할 만도 하네요. 님의 즐거운 댓글이 달리는 것에 리뷰 쓴 보람을 느낍니다^^
라주미힌님/오오 그것도 좋은 방법...저는 이해 안가는 책은 관계없는 얘기만 잔뜩 하는데...^^
다락방님/그렇군요. 안읽으셔도 됩니다. 아름다운 책이 얼마나 많은데요^^
주드님/워, 원어로 읽으셨군요! 대단하십니다. 한달간 공부를 하셨다니, 그것도 놀라워요! 님의 글 내공이 다 그런 데서 비롯된 것이군요!

한솔로 2006-02-01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프카 단편집 달랑 하나 읽고, 카프카 책 만든 편집자도 있습니다. 그 편집자는 심지어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도 안 읽고 호메로스에 관한 책을 만들었다지요-_-;;;

마태우스 2006-02-01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솔로님/그렇군요!! 제가 아는 사람은 헬리코박터에 걸리지도 않고 관련 책을 쓰기도 했답니다^^

산사춘 2006-02-01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구도 안함서 마태우스라 한담서요? 전 산사춘 맛없어서 안마셔요.

sooninara 2006-02-01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어릴때 대충~~ 변신을 읽어서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손바닥만하다고 혼자 생각했었다는...
그리고 전 변신을 아직도 이해 못하겠어요.

플라시보 2006-02-02 0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까뮈, 카프카 전부 안읽었습니다. 으음.. 생각해보면 읽을 기회가 많았는데 이상하게도 안읽게 되더라구요. (참. 그리고 저도 약사나 의사도 아니면서 플라시보라고 합니다.^^)

마태우스 2006-02-02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라시보님/까뮈를 안읽어도 늘 당당하신 님의 자신감이 부럽습니다. 전 이상하게 빚을 진 기분이 들어서 말입니다.
수니님/고교 때 읽은 분들은 당시에 변신을 이해했을까요. 하긴 지금 읽은 저도 잘 모르겠던데..
춘님/저 축구 잘해요! 흥.

비로그인 2006-02-02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해해도 별은 네개네요.

roseinn 2006-04-07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변신>에서 궁금한 것은 잠자가 변신한 벌레의 크기가 과연 어느 정도일까 하는 거였다" 이 구절 정말 압권입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간디스토마 2011-04-16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소설속의 아픈 척 꾀병부린 꼬마아이에게 "속았구나..."하고 탄식한게 아닐까요?
그 애 하나 때문에 자신의 하녀까지 (초반에 하녀를 노리는 괴한이 등장하죠;)위험속에 내팽겨치고 달려왔으니까
카프카소설은 저도 무슨 의미인지 난해하긴 합니다.(두번정도 다시 읽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