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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시인의 사회
N.H 클라인바움 지음, 한은주 옮김 / 서교출판사 / 2004년 3월
평점 :
어떤 분이 자기 자녀 둘을 연속해서 민족사관고에 넣었다고 잔치를 벌였단다. 민족사관고는 대안학교고, 대안학교는 공부보다 인성을 강조하는 곳, 그래서 난 그 학교가 교육열 높은 학부모들에게 냉대받는 줄 알았다.
“왜 잔치를 해? 민족사관고의 명문대 진학률이 높아?”
“그게 아니라, 거기 가면 아이비리그 가기가 쉬워.”
우리 사회도 어느덧 아이비리그가 성공의 척도로 자리잡았나보다. 서울대를 중심으로 한 획일적인 서열구조가 좀 더 다양해졌다는 데서 위안을 얻어야 할까?
<죽은 시인의 사회>의 무대인 웰튼 아카데미는 해마다 졸업생의 70%가 아이비리그로 진학하는 명문 고등학교다. 죽어라 공부만 시키는 학교, 마지못해 거기에 따르는 학생들, 그 학교에 새로 부임해 온 키팅 선생은 학생들에게 “너희가 사는 건 진정한 삶이 아니다.”라고 설교한다. 대부분의 개혁이 그런 것처럼 키팅의 뜻은 좌절되고 말지만, 막판에 책상 위로 올라선 학생들의 결연한 태도는 그 학교에도 서서히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 이야기가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성적을 올리기 위해 스파르타식 교육을 받는 장면이 나와야만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애들은 중학교 때부터 그보다 훨씬 더 고단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 판인지라 그들의 고생이 가슴에 와 닿지가 않았다. 중학생인 내 조카는 맨날 밤 10시가 넘어 집에 오고, 내가 영화라도 한편 보여주고 싶어도 “시간이 없다.”고 손사래를 치는데, 책 속의 아이들은 그래도 연극도 하고, 여자친구도 사귈 뿐 아니라 몰래 기숙사를 빠져나와 시를 읊을 만한 낭만도 있다. 그러니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뭘 이정도 가지고 그러냐.”고 시큰둥한 표정을 지은 것도 이해되지 않는가?
이 책이 그다지 감동적이지 않았던 한가지 이유를 더 댄다면, 한참 전에 봤던 동명 영화의 감동이 워낙 컸기 때문이다. 원작이 훌륭하다고 다 좋은 영화가 나오는 건 아니지만, 키팅으로 나온 로빈 윌리엄스의 연기는 아주 멋졌고, 책상 위로 올라선 소년들의 맑은 눈망울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책을 읽는 내내 난 영화의 장면장면들을 머리 속으로 떠올리려 노력했는데, 책에서 절세미녀로 나온 ‘크리스’가 영화에서 어땠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아서 안타까웠다. 이 책을 선물해주신 별사탕님께 내 하얀 마음을 담은 감사 인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