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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군대다 - 여성학적 시각에서 본 평화. 군사주의. 남성성, 청년학술 56
권인숙 지음 / 청년사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박정희가 우리 사회를 병영으로 만들려고 했던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군인들이 장관을 비롯해 각종 요직을 도맡아한 것은 물론이고, 학교마다 학도호국단이 있었고, 초등학교 애들마저 조회라는 걸 하느라 줄을 맞춰 교장 선생 앞에 도열해야 했다. 군부독재는 물러갔지만 그 잔재는 아직도 우리 사회에 굳건히 남아 있어, 임지현은 이를 ‘일상적 파시즘’이라는 멋있는 용어로 부르기도 했다. 권인숙이 쓴 <대한민국은 군대다>는 우리가 익히 아는 바를 좀 더 세련된 문장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군사독재와 싸우는 과정에서 학생운동 역시 군사화 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여성은 철저히 배제되었다는 건 다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대개의 훌륭한 저작들이 그렇듯이 이 책은 거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 깊고도 넓은 사유를 통해 읽는 이를 성찰의 세계로 이끈다. 학위논문을 중심으로 쓴 책이라 지루할 수도 있겠지만, 중간중간 나오는 인터뷰 사례들이 그 결점을 보완해 주며, 징병제에 대한 저자의 고찰은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줬다.
특히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군대 내 성폭력에 관한 글이었다. 대학 2학년 때, 전방에 입소해 일주일간 있었던 적이 있다. 그때 난 나를 탐욕스러운 눈으로 보는 몇몇 군인들의 시선에 겁을 먹었었다. 그게 내 착각만은 아닌 것이 그들 중 일부는 성적인 접촉을 시도하기까지 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는데, 2004년 인권위 조사에 의하면 15%의 남성이 군 복무 중 성폭력 피해를 입었단다. 공공연한 비밀임에도 그게 여론화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저자의 말이다. “성폭력의 피해자가 된다는 것은 남성임을 부정하는 것과 동일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피해자로서의 자신을 바라보고 알리는 것은 치명적인 남성성의 훼손으로 여겨진다.”
성폭력을 자행하는 사람 모두가 게이인 것은 아니다. 아니, 사실 게이는 거의 없다. 남성들만의 공간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일 뿐. 게다가 성폭력은 “훈육과 위계질서 확립의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가해자들은 뭐라고 할까?
“성폭력의 이유로 가장 빈번하게 주장한 것은 장난이고 그리고 친근감의 표시일 뿐”
하지만 그 결과는 치명적이다. 피해자의 말, “사실은 그 일 이후로 여자 친구랑 성관계도 잘 안되고 피하게 되요.”
넬슨이란 정신과 의사에 의하면 이런 성폭력 발생은 “권력 행사의 욕구에서 나온다.”고 하는데, 원인이 무엇이든 군대라는 곳이 남자라면 누구나 거쳐가야 할 곳이라는 점에서 사회적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 보면 내 성장기인 70, 80년대의 기억들이 기술되어 있다. 지금에 비하면 생활수준이 보잘것없고 개인의 인권이란 게 사치스럽게 여겨지던 그 시절,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때 애들보다는 지금 애들이 훨씬 더 불쌍하게 여겨진다. 물론 그건 나만의 느낌은 아닌 것이, 우리 어릴 때와 달리 지금 애들의 얼굴에서는 웃음이란 걸 찾아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70, 80년대 우리 사회는 분명 병영체제였건만, 지금은 그보다 훨씬 더 살벌한 전시 체제가 되어서가 아닐까. 군대보다 무서운 건 바로 신자유주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