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젠 신문에서 '황'이란 글자만 봐도 멀미가 날 지경이라고들 한다. 맞다. 우린 너무 오래 황우석 이야기만 했다. 나도 지겹다.
스스로도 지겨우면서 그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황우석의 처지가 꼭 난파선처럼 느껴져서다. 오해 없기를 바란다. 난 지금 황우석 편을 들고자 하는 건 아니다. 난 원천기술 유무에 무관하게, 2개 가지고 11개를 만들었다고 한 것만 가지고도 황우석은 과학계에서 퇴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규리 선생이 평화방송에 보낸 이메일을 봤다. 자신은 이식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 줄기세포의 진위 여부를 몰랐단다. 그게 사실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광경을 보는 심정은 씁쓸하다.
논문을 쓸 때 아무것도 안한 사람의 이름을 집어넣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 과의 경우 나이든 교수님이 애착을 보이는 기생충을 가지고 논문을 쓴 경우, 그분이 직접 연구를 안하시더라도 계속 이름을 넣어드리는 건 일종의 관행이다. 진급을 해야 하는데 논문점수가 모자란 경우, 지도교수에게 부탁해서 마구잡이로 이름을 넣어 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본다면 공저자로 이름이 들어갔다 해도 모두 같은 책임을 지는 건 아닐 것이다. 그러니 이번 사태의 경우 주요 책임은 역시나 교신저자인 황박사에게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공저자로서 일말의 책임의식은 느껴야 하는 게 아닐까? 자기 이름이 실린 논문이 조작으로 밝혀졌는데 어떻게 '난 몰랐다."고만 할 수 있는 걸까? 황우석 박사의 첫번째 논문은 200개 난자에서 줄기세포 한개를 만들었다는 것이고, 두번째 논문의 핵심은 그 확률을 높여 11개를 만들었다는 게 그 핵심이다. 공저자라면 한번쯤 그 줄기세포를 봤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럴 위치가 아니어서 그렇다고 치자. 실제 안규리 선생은 자신이 장기이식에만 관심이 있었고, 자문 역할만 맡았을 뿐이라고 했다. 줄기세포 일이 잘 되어 장기이식 단계까지 가려면 아무리 짧게 잡아도 십년은 걸릴 터, 안규리 선생이 당장 할 일은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2004년은 물론이고 2005년 논문에 굳이 안선생의 이름이 들어가야 할 이유가 뭐가 있을까?(주치의라고 논문에 이름을 실어주는 경우는 없다...). 안선생의 역할이 그렇게 미미했다면 논문에 이름을 넣어서는 안되는 거였고, 일단 이름이 들어갔다면-아무리 황박사가 책임자일지라도-공저자로서 자신의 역할을 하지 못한 점에서 일정 부분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퇴임을 하셨지만 논문을 1천편 이상 써서 다작상을 받은 지제근 교수라는 분이 있다. 말이 천편이지 30여년간 매년 30편 이상을 썼다는 건 거의 기적이다. 물론 그분은 모든 증례논문이 한번쯤 거쳐야 하는 병리과 소속이라 유리하긴 하다. 하지만 그분의 훌륭한 점은 당신의 이름이 들어간 모든 논문의 슬라이드를 당신이 직접 판독하셨다는 것이다. 그거야말로 진정한 학자의 자세가 아닐까.
안규리 선생을 아는 분은 다들 이런다. "그분은 절대 그럴 분이 아니다."라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몰랐다."만을 강변하는 그분의 모습은 날 슬프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