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책
기차를 기다리면서 의자에 앉아 누군가와 전화를 했다. 개표가 시작될 때 자리에서 일어난 나, 플랫폼에서 “기차가 들어온다.”는 방송이 나올 때쯤 손에 들고 다니던 책을 의자에 놓고 온 걸 알았다. 기차값보다 책값이 더 비싸다는 걸 떠나서, 그렇게 잃어버린 책은 두고두고 내 화를 돋울 것이기에 전력을 다해서 개찰구를 빠져나가 의자 있는 곳으로 달렸다. 여자애 둘이 기쁜 표정으로 의자 옆에 서 있다. 그 중 하나가 가방 지퍼를 닫는데, 그 속에 초록색 표지를 한 책이 들어있는 것을 내 작은 눈은 놓치지 않았다. 그녀들 곁으로 다가가 “저..”라고 짧게 한마디 했다. 여자 왈, “혹시 책 찾으러 왔습니까?”
“네....”
여자는 가방에서 책을 꺼내면서 뭐가 좋은지 웃었고, 친구 역시 “좋다 말았다!”며 웃었다. 내가 작업의 명수였다면 책을 다시 그녀에게 주면서 명함 한 장을 끼워 넣었겠지만-전 다 읽었습니다 하.하.하-난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책을 받아서 기차 있는 곳으로 뛰었다. 내가 어찌나 빨랐는지 내가 탄 뒤 몇십초 후에 기차문이 닫혔다. 해피엔딩이었다.
2. 갈비
크리스마스 날 남동생이 놀러왔다. 결혼을 한 사람들의 크리스마스는, 다른 일요일과 다름없이 심심하기 짝이 없고, 어디 가서 저녁이나 한 끼 해결해야 하는 그런 날이다. 몸이 아파 큰아빠만 찾는 조카가 온 것도 모른 채 열나게 잠을 자던 난 약속시간을 알리는 알람에 홀연히 일어나 타이레놀 두알을 먹었다.
“어, 너 왔니? 나 간다.”
난 외투를 집어들고 바람같이 집을 나섰다.
영화 시작까지 남은 시간은 30여분, 버거킹 같은 데서 밥을 먹을까 생각하던 난 왼쪽 주머니에 휴대폰이 하나 있는 걸 발견했다. 난 휴대폰을 절대로 그 주머니에 넣지 않는다. 꺼내봤더니 역시나 모르는 휴대폰, 액정에 띄운 사진도 모르는 여자다.
“아니, 이 여자는... 제수씨?”
그랬다. 그건 제수씨의 휴대폰이었다. 게다가 안주머니에는 남동생의 휴대폰도 들어 있었다. 즉, 난 급히 나오다 그만 동생의 외투를 입고나온 것이다. 난 집에 잽싸게 전화를 했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나와 내 친구는 그래서 결국 저녁을 굶어야 했다. 핫바와 오징어 등을 사가지고 들어갔지만 세시간의 기나긴 상영시간 내내 배가 고팠다. 안되겠다 싶어 영화가 끝나고 전화를 걸었다.
“엄마, 저 밥 좀 주시면 안될까요? 11시 반 쯤에 갈건데...”
“얼마든지 차려줄께!”
늦은 밤, 엄마는 제사 때 남은 갈비를 덥혀서 내 저녁을 차려 주셨다. 버거킹보다야 갈비가 나으니 해피엔딩이긴 하지만, 내년이면 67이 되는 어머님이 언제까지 모자란 아들을 뒷바라지 하실까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파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