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해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지금 생각으로는 학생 때였던 것 같다. 그해 12월 31일 밤 11시를 지났을 무렵, 난 집을 향해 차-재벌2세잖아요 제가-를 몰고 있었다. 홍대 앞에 왔을 무렵, 난 여학생 하나가 길가에 쓰러져 있는 것을 보았다. 술이 많이 취해서 그런 것 같은데, 또다른 여학생이 그녀를 부축하고 있었고, 남자애 하나는 필사적으로 택시를 잡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날 택시를 잡는 건 무척이나 어려워 보였다. 더구나 술까지 취한 학생들을 태워줄 택시는 없었다. 난 차를 후진시켰다.
“저...제가 태워다 드릴까요?”
남학생이 앞에 탔고, 여학생들은 뒤에 탔다. 그녀의 집은 고대 쪽이었다.
중간쯤 갔을 때, 여학생이 깼다. 오버이트를 하고 싶단다. 차를 세웠다. 남학생이 등을 두드렸고, 여학생은 열심히 먹은 것을 게워냈다. 등을 두드리던 남학생이 저쪽으로 달려가더니 오버이트를 한다. 달리 할일도 없고 해서, 난 그 학생의 등을 두드려 줬다. 각자 할일을 마치고 나자 난 차를 출발시켰고, 그 여학생은 좀 더 편안한 표정으로 잠이 들었다. 그녀 집 골목까지 차를 댄 나는 사례하겠다면서 지갑을 꺼내는 남학생을 뿌리치며 집으로 왔다. 집에 와서 내리려는데, 차 문 옆에 책이 한권 있었다. 모르고 놓고 내린 모양이다. 그 책은 점을 보는 것에 관한 책이었고, 난 그 책을 다음날인 1월 1일에 쉬엄쉬엄 읽었다. 내가 살아오면서 앞날을 미리 안 적이 몇 번 있다면, 그건 전적으로 그때 읽은 책 덕분이다. 사례가 여러번 있지만 딱 한가지만 얘기해 본다.
1990년인가 91년에, 롯데와 삼성이 준플레이오프 4차전을 한 적이 있다. 3전 2승제지만 중간에 한번 비기는 바람에 4차전까지 가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는데, 신문들은 롯데의 승리를 점쳤다. 그때 난 써클룸 노트에다 이렇게 썼다.
[롯데가 이긴다는 전문가들이 많다. 하지만 그런 주장은 지구가 네모났다는 주장처럼 허황된 것이다. 3차전까지 승패를 맞추지 못하는 건 이해할 수 있어도, 이렇게 뻔한 승부를 예측하지 못하는 건 직무유기다. 난 스코어도 맞출 수 있다. 11-3, 삼성 승리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삼성이 10-2로 승리했다. 난 앞날을 점치는 내 능력에 스스로 놀랐고, 다음날 학교에서 칭찬받을 생각을 하며 밤을 하얗게 샜다. 하지만 막상 다음날, 친구들은 우연히 맞춘 것으로 치부하며 내 예측력에 별반 신경을 쓰지 않았다. 좀 서운했지만 그 이후부터, 난 중요한 일들을 예측하고, 결과가 그대로 되는 걸 보면서 혼자 즐거워한다. 그럼 내기 같은 걸 하면 많이 따지 않느냐고? 그 책에 써있던 문구 하나는 지금도 기억이 난다.
“이 능력을 상업적 목적에 사용하면 안된다.”
믿거나 말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