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학교에 왔을 때는 대략 다섯명의 동기가 근무하고 있었다. 시시때때로 동기모임을 하면서 세를 과시하던 그 시절과 달리, 지금은 나 혼자만 85학번의 명맥을 잇고 있다. 그들은 다 서울로 떴다. 그들이 있기엔 이곳이 너무 작은 곳일지 모르지만, 사실 난 이 학교에서 나같은 사람에게 봉급을 주면서 데리고 있다는 것에 늘 감사드리고 있다. 어려운 말로 표현하면 ‘감지덕지’.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난 이곳에서 좀 오래 남아있고 싶다. 설사 하버드에서 영입 제의가 온다고 해도 말이다.
거기 걸림돌이 되는 건 ‘빌어먹을’-죄송합니다-재임용 제도였다. 몇 년마다 그가 낸 업적을 검사해서 계속 데리고 있을지를 결정하는 제도. 김민수 교수의 경우에서 보듯 재단에서 밉보인 교수를 솎아내는 도구로 쓰인다는 비판이 있긴 해도, 사실 이 제도는 교수들에게 최소한의 연구를 하게 하는 동력이라고 생각한다. 실험을 해서 논문을 쓰는 데 그다지 소질이 없는 난 저서를 써서 어떻게 이 난관을 돌파해보고자 하지만, 내가 그간 썼던 책들은 하나같이 대중서로 분류가 되어 몇점 안되는 점수가 매겨지곤 했다. 올해 쓴 <헬리콥터의 변명>은 일반인은 도저히 알아먹을 수 없는 초절정전문 용어에, 저자인 나도 무슨 뜻인지 모르는 난해한 문장으로 점철되어 있음에도, 그 책은 대중서라는 딱지와 함께 고작 50점의 점수를 획득했다. 이런 현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잘릴 때를 조용히 기다리는 것 뿐. 첨엔 작년인 줄 알고 “8월이면 난 잘린다.”고 생각해 왔건만 8월은 다행히도 그냥 지나갔고, 올 12월 말에 내가 심사를 받아야 한다고 서류를 내란다. 그때부터 난 하루도 마음 편히 살지 못했다.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았고, 러닝머신을 10킬로씩 뛰어도 힘들지 않았다. 예쁜 여자를 오래 바라봐도 잘리지 않았으며, 석달간 안자른 텁수룩한 머리가 성가시지 않았다. 내가 그토록 오지 말라고 했던 그날이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어제 학과장 회의 때, 23명의 재임용 대상자 명단을 본 학장이 이런 말씀을 하신다.
“점수 안되는 사람이 있나?”
교학과 사람은 “한명이 안될 것 같다.”고 하기에 난 내 얘기를 하는 줄 알았다. 다행히 난 아니었다. 다른 사람이 말한다.
“그 선생, 이번에 박사학위 받으니까 괜찮을 걸요?”
“그럼....지금까지 서류 낸 사람 중엔 안되는 분 없어요.”
서류 마감은 11월 9일이었고, 난 그때까지 서류를 내지 않았다.
“이 점수도 안되면 문제가 있지.”라고 학장이 말했을 때, 내 가슴이 얼마나 두근거렸겠는가. 회의가 끝나고 공문을 봤더니 3년간 내가 획득해야 할 점수가 무려 310점이었다. 책 두권이니 100점, 공동번역한 게 12점, 그렇다면 논문이 최소한 200점은 되어야 하는데... 불안해진 나는 주임교수와 학과장을 한 걸 교수업적에 쳐넣었고-그것들은 각각 5점씩을 받았다-과학동아에 원고를 쓴 증빙자료를 제출했다. 그 점수는 겨우 3점이었지만, 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다.
마감 전날인 어젯밤, 불안해진 난 내가 아는 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시간 가량의 통화에서 내가 한 말은 “어떡해”와 “아이고” “책임져” 등 몇단어가 안됐다. 운명의 아침은 밝았고, 난 떨리는 마음으로 내 서류를 챙겼다. 전자계산기를 두들기는 내 손이 얼마나 떨렸을지 짐작이 갈거다. 하지만 기쁜 일이 있었다. 내가 얼떨결에 쓴 애들 교재가 인정을 받아 생각지도 않게 105점이 더해졌다. 그렇다면 논문에서 100점 정도만 얻으면 된다. 난 논문 리스트를 보면서 계산기를 두들겼다. 37.5점, 52점, 앗싸 100점, 37.5점... 총 합계를 본 난는 기절할 뻔했다. 논문 점수만 525점, 저서까지 합친다면 742점이었다. 난 생존했다.
돌이켜보면 난 내 스스로를 너무 비하하는 게 아닌가 싶다. 이렇게 고득점을 쌓아놓고도 310점이 안될까 걱정했다니, 난 참 바보다. 교학과 담당선생과 얘기하다 안 사실이지만, 내가 원래 따야 할 점수는 480점이었다. 그것도 무난히 넘으니 다행이지만, 310점을 걱정했던 내가 480이 커트라인이었던 걸 미리 알았다면 어디로 도망가거나 비관해서 타이레놀을 먹는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까. 이번 사건을 계기로 좀 열심히, 그리고 바르게 살아 보련다. 이 결심이 다음 재임용 때까지 갈 수 있기를 빌고, 한시간이 넘도록 내 넋두리를 들어준 그 미녀분께 마음을 담은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