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회의 때, 환갑을 맞은 선생님이 한탄을 하셨다.
“요즘 나이로 누르는 게 통해?”
내가 대답했다. “제가 그런 게 통하는 마지막 세대입니다”
85학번인 나는 선배 말에 까빡 죽는 그런 후배였다. 별 일도 아닌 걸 가지고 써클 선배 하나가 우리를 붙잡고 두시간 동안 야단을 칠 때, 조는 척을 한 나를 제외하곤 우리 동기들 모두 묵묵히 그 선배의 호통을 견뎌냈다 (사실 내가 잘못해서 그런 건데..). 그때만 해도 “선배는 하늘”이었다.
86년, 후배들이 들어왔다. 난 그들의 자유분방함에 무척이나 놀랐다. 일년 전 우리가 1학년일 때는 써클 일을 하느라 서울과 지방 곳곳을 누볐었는데, 얘네들은 여름방학마다 가는 강원도 진료봉사를 앞두고 지네들끼리 제주도로 놀러간다. 진료 중에도 내가 뭘 시키면 “저 지금 바쁜데요”라고 하는 등 상상을 초월했다. 우린 안그랬는데 쟤네는 왜 그럴까? 후배는 언제나 버릇없어 보인다는 말이 있지만 그 차원은 아닌 것 같았다. 우리는 1학년 때 선배들로부터 전폭적인 사랑을 받았지 않는가?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85년 학번까지는 싹수가 있는데, 86년부터는 뭔가 이상해졌다는 것, 물론 그 이유는 몰랐다.
마흔을 향해 치닫는 지금 그 이유를 생각해봤다. 85학번과 86학번이 급격하게 갈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교복자율화? 그건 우리도 경험했고, 86 중에도 재수, 삼수한 애도 많으니 말이 안된다. 86년 아시안게임? 여름진료는 그 전에 갔다. 그러다 생각한 것이 바로 논술시험이었다. 우리 때까지만 해도 그냥 오지선다였는데, 너무 찍는 것만 하면 국가경쟁력이 저하된다면서 논술시험이 도입된 것. 첫해니까 그게 당락에 큰 영향을 줬을 리는 없겠지만, 수험생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거다. 공부하기도 바쁜 터에 책까지 읽어야 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무튼 그렇게라도 책을 읽은 애들이 대학에 왔고, 그들은 자유분방한 에너지가 넘치는 첫 세대가 되었다. 왜? 책을 본 애들은 안본 애들과 달리 매사에 의문을 잘 품고, 부당한 명령에 대해 반항을 한다. 자유로운 상상력을 어느 정도 고양시킨 세대의 특징은 그런 데 있다.
그래서 책은 불온하다. 국민들이 책을 읽으면, 그래서 매사를 따지기 시작하면 사회 정의가 바로 서 버린다. 진시황이 책을 불질렀듯이 독재자들은 하나같이 책 읽는 것을 싫어했다. 사회정의를 내세운 전두환 때에 애마부인을 필두로 한 야한 영화들이 무더기로 상영된 것, 프로야구가 생긴 것, 통금이 없어진 것은 그러니까 결코 우연이 아니다. 탄압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어가며 사회정의를 목놓아 외쳤던 그 시절 젊은이들과 달리, 요즘 애들은 책을 읽지 않으며, 읽어도 처세 책들만 디립다 읽는다. 우리 사회에서 정의가 점점 실종되어 가는 것도, 그럼에도 누구 하나 나서서 싸우려 하지 않는 것도 젊은이들이 책을 읽지 않는 탓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