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때 난 술만 마시면 어디론가 전화를 하는 버릇이 있었다. 십년도 넘은 거니 고질병이라고 해야겠다. 나만 그러는 게 아니라 다른 남자들도 그런 사람이 많은가본데, 하여간 그건 좋지 않은 버릇이다. 전화건 사람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못하고, 심지어 전화건 사실조차 모르니 전화를 받아준 사람은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는가. 게다가 되지도 않는 소리를 들어주는 것도 힘이 들고.
내가 전화하는 사람들은 또 대개가 여자, 그래서 헛소리 참 많이도 해댔다. 세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한 건 귀여운 수준이고, 사랑한다는 말도 한 적도 있단다. 아침에 통화버튼을 눌러보면 술먹고 집에 가던 시간에 전화를 했던 기록이 항상 남아있다. 전화해서 내가 무슨말을 했는지 물어보기도 겁이 난다. 이걸 고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다. 전화기 배터리를 빼놓고 술을 마신다든지, 아예 전화를 안가지고 간다든지, 아니면 전화를 잘 거는 특정인의 번호를 아예 지워버린다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화걸기는 심심치 않게 이어졌다. 배터리를 다시 끼워놓고, 특정인의 전화번호를 외우는 건 술취한 상태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난 결국 이런 버릇을 고치고야 말았다. 최근 두달간, 난 거의 한번도 술에 취해 여자에게 전화를 걸어 헛소리를 한 적이 없다. 아침에 통화기록을 눌러보면 한통화도 전화를 건 게 없는 날이 계속되자 이제는 좀 안심을 하기 시작했다. 담배는 두달 끊어도 모른다지만, 이건 두달간 안그랬으면 끊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어떻게 이걸 고쳤나 궁금할 것이다. 답은 ‘사건을 크게 한번 저지른 다음’. 내가 6월쯤에 전화를 자주 걸던 사람이 있었다. 평소에는 그 정도가 아니었는데 그녀에게 전화했을 땐 내가 심한 말-그녀는 어떤 말인지 알려주지 않았다-을 했단다.
“평소에는 그렇게 겸손하고 착한 사람이 어떻게 그리 돌변할 수가 있냐”고 놀라는 그녀에게 난 그저 부끄럽기만 했다. 그녀는 무척이나 모욕을 받은 듯했고, 앞으로는 더 이상 그런 일을 겪고싶지 않다고 했다(내가 도대체 뭐라고 했을까?). 그녀와 나의 친분은 그걸로 끝이 났다. 그녀와의 우정을 잃은 뒤에야 난 그 버릇을 고쳤으니, 비싼 댓가를 치룬 셈이다. 고쳐서 좋긴 하지만, 의문은 남는다. 왜 지금까지는 그런 문제가 없었을까? 내가 전화했던 그녀들이 인내심이 좋아서? 몇 명에게 물어봤더니 “그냥 귀여운 말만 했다”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취중진담을 믿진 않지만, 내가 그녀를 마음 속으로 싫어하고 있었던 것일까. 어찌되었건 통화기록을 아침마다 확인하고 공포에 떨어야 할 일이 없으니 좋긴 하다. 희생자가 된 그녀에게 미안하기는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