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칠 때 떠나라’를 봤다. 장진 감독의 작품이다. 난 장진이 좋다. 첫 작품인 <기막힌 사내들>은 그저 그랬지만, 거기 나온 그림자놀이는 내게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 나 역시 그림자놀이를 즐겨하며, 내가 좋아하는 짐 캐리 역시 <에이스 벤튜라 2>에서 그림자를 가지고 별의별 짓을 다하지 않는가. 유치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걸 극대화하는 것, 그 점에서 나와 그는 코드가 맞다.


그의 영화 중 가장 재미있게 본 건 <묻지마 패밀리>였다. 세 개의 단편이 담긴 그 영화 중 첫 번째, ‘사방의 적’을 보면서 난 배가 아프도록 웃었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단다. “나는 재미있다. 당신들도 웃어라”

장진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건 충분히 인정하지만, <묻지마 패밀리>를 제외하고는 그의 영화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은 적은 없다.

-간첩 리철진; 간첩을 인간적으로 그린 몇 안되는 영화라는 것 말고는 많이 부족했다.

-킬러들의 수다; 웃기에는 좀 약했다. 스토리도 좀 말이 안되고.

-아는 여자; 지순하고 순정적인 여자라니, 웬 시대에 뒤떨어진 소리람.

그래도 그의 영화를 끈질기게 보는 건 아직도 그를 믿기 때문이었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그 기대를 충족시켜 주기에 충분했다. 영화를 보고 느낀 점을 써본다.


-새롭다; 수많은 영화가 나왔고, 또 만들어진다. 그러다보면 이거 어디서 많이 본건데 하는 영화도 있다. <분홍신>은 영락없는 ‘링’이고, <금자씨>는 ‘오리엔트 특급살인’이다. 안그런 영화도 물론 있다. 전에 본 <11: 14>는 11시 14분을 향해 모든 사건이 모이는 내용인데, 그걸 보면서 ‘정말 독특한 스타일의 영화구나’ 생각했었다. 이 영화도 그에 못지않다.

-막판까지 긴장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범인이 누구일까도 굉장히 궁금했고, 그와 더불어 ‘이번에는 어떻게 웃길까’를 기대하다보니 시간이 금방 갔다. 이건 그만큼 시나리오가 탄탄하다는 얘기다.

-차승원: 진라면 광고에서 라면이 맛있다는 걸 온몸으로 보여준 차승원은 점점 유머 연기의 달인이 되어가는 듯하다. <귀신이 산다>가 유능한 배우도 시나리오가 개떡이면 별수없다는 걸 보여줬다면, 이번 영화는 좋은 시나리오와 결합된 유머는 영화의 재미를 몇배로 증폭시켜 준다는 걸 입증해 줬다. 또 하나. 차승원 다리 참 길다.

-하여간 장진은; 살인사건 현장 스케치가 끝나고 차승원은 신하균을 인터뷰한다. 1형식, 3형식, 그 추억의 낱말들을 사용해 장진은 우리를 십분간 웃게 해준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주의사항: 사람의 마음 속에는 기본적으로 악마가 있다. 악마와 천사 중 어느 걸 키우느냐는 순전히 그 사람의 의지에 의해 결정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천사를 키우길 기대할 수는 없는 일, 악마가 지배하는 사람과 만나지 않도록 조심하며 살아야 하는 게 우리네 인생이다. 이 영화는 분명 재미있지만, 스포일러를 만난다면 그 재미는 반감되기 마련이다. 아마도 인터넷 댓글을 다는 사람들 중엔 이 영화의 결말을 말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내가 ‘남극일기’를 안본 이유도 야구 기사 밑에 달아놓은 ‘범인은 송강호’란 댓글 때문이었는데, 이 영화를 볼 사람은 확실한 사이트가 아니면 들어가선 안된다. 비자금 기사 밑에 이런 댓글이 달릴지 모르니까.

“박수칠 때 떠나다에 신하균 나온다!”

 

* 며칠 전부터 인터넷 창을 두개 열면 인터넷이 그냥 닫혀 버립니다. My linker에 문제가 있어서 닫는다고 하면서. 그래서 사진 같은 거 복사해 오는 게 집에서는 불가능합니다. 너무 슬퍼요. 흑. 컴맹에게 왜 이런 시련이. 아무리 껐다켜도 안된답니다.


댓글(15)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이드 2005-08-15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아아아아아 나 남극일기 이제 막 보려고 하는데!!! 대밋!

mannerist 2005-08-15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날 간신히 잠 이룬 거 생각하면 -_-; 두 번 보기 싫은 영화. 쿨럭;;;;

마태우스 2005-08-15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너님/그렇죠? 평이 워낙 안좋아 안보기 잘했다고 생각 중입니다
하이드님/이왕 그리된 거 안보시면 어떨까요

수산나 2005-08-15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부터 이영화 본 사람들이 재밌다구 난리에요..으..지금이라도 나가서 봐야겟어요..근데 오늘같은 날 표가 있을려나??허허

이매지 2005-08-15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시사회로 봤지만서도 극장가서 또 보고 싶어지더라구요 -
이 영화보고 차승원에게 빠져버렸으나 최근 방송에 수염기르고 나오는거 보고 다시 또 살짝 비호감으로 -_ -;

2005-08-15 16: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태우스 2005-08-15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복나침반님/님도 장진 스타일을 좋아하는군요! 어여 보세요 실망하지 않으실 겁니다
이매지님/시사회로 보셨군요! 전 시사회는 딱 한번, 그때 그사람들 본 게 다예요
그리고 수염 길러도 차승원은 여전히 멋있지 않나요?
수산나님/요즘은 극장이 많아서 표도 많을 것 같은데요..

sooninara 2005-08-15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진감독..좋아하는데..이영화 찜

플라시보 2005-08-15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영화 봤습니다. 초반부에 엄청 웃었어요.^^

협객 2005-08-16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마태우스님. ^^
저두 친절한 금자씨를 보며.. 오리엔트 특급살인이 떠올랐었는데.. ^-^;
마태우스님이 추천하시니 한번 봐야겠군요.
보러 갈 사람이 남자밖에 없어서.. 아무래도 동막골보단 박수칠때가 나을것 같아서요. ^^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꾸벅

엔리꼬 2005-08-16 0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저도 <기막힌 사내들> 왕팬인데요... 저랑 웃음 코드가 맞으시나봐요... 그 영화 너무너무 좋아하는데... 그림자놀이도 참 좋았고, 죄수들이 중간에 오페라 형식으로 노래하는 것도 너무 참신하고 재미있었어요.. 저 또한 그림자놀이를 틈만 나면 시도하고...
이번주에 직장 사람들과 영화보려 하는데, 이 영화 강추해야겠군요..

비연 2005-08-16 0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태우스님. spoiler...흑. 남극일기도 금자씨도 안 본 저는..이제 더이상 볼 흥미가 없어졌다는...ㅠ.ㅠ 넘합니다....으앙. 저도 '박수칠 때..' 를 개봉날 보았는데 괜챦더라구요. 장진 감독 특유의 유머와 페이소스가 있더군요...

진/우맘 2005-08-17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마나, 유머요? 호오.....이 영화는 안 보려고 했는데....(하긴, 취향이 정 반대이니, 나는 필경 별로겠죠? ㅎㅎ)

수퍼겜보이 2005-08-17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장진이랑은 뭐가 안맞는 듯.
박수칠 때 떠나라 보면서 대놓고 잤어요.. -.-

똥개 2005-08-18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반적으로 장진을 좋아하는 관객과 시큰둥한 관객 사이의 차이는... 연극적인 재미를 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인 듯합니다... 장진은 연극을 필름에 담는 흔치 않은 감독중의 하나죠.... 마태우스님이 별로 재미를 못 느끼셨다는(기막힌 사내들을 재미있게 봤다면 좀 의외이긴 하지만..) 전작들도 '연극'을 본다고 생각하면 정말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걸 새삼 발견하실 수도 있습니다.. 물론 저는 박수칠 때 떠나라가 장진 작품 중 최고라고 주저없이 평가하는데.. 아마도 지금까지의 작품들 중에서 '연극적'으로도 가장 완성도가 높았던 데다가.. 심지어 가장 '영화적'이기까지 해서 그런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간 장진 특유의 연극적인 구도때문에 영화적인 재미가 혹 줄어들 수 있었다면, 이번엔 거꾸로 연극적 완성도를 더 높여서 오히려 영화적인 재미까지를 만들어낸 점에서 무척 의미심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