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시: 7월 27일(수)
마신 양: 고량주-> 맥주-> 소주-> 맥주...
1. 책의 보람
아는 선생님이 나보고 좀 와달라고 했다. 평소 존경하는 선생님인지라 그분이 오라면 난 간다. 갔다.
“내가 교지편집 지도하는데, 학생들이 마선생하고 인터뷰 해서 싣고 싶다는군. 괜히 하는 소리인 줄 알고 그냥 있었는데, 계속 그러기에 불렀어”
학생들은 놀랍게도 <대통령과...>를 읽고 감동을 했다며, 싸인을 부탁하기까지 했다. 말 그림이 그려진 싸인을 오랜만에 하면서 책을 내는 것도 참 보람있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책을 낼 당시에는, 필경 흥분 때문이겠지만, 책의 실체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 정말 대단한 책이라는 생각을 하고, 분명히 대박이 난다는 믿음에 도취되어 버린다. 하지만 그로부터 한달만 지나면 책의 단점이 눈에 들어오고, 그 책을 냈다는 게 갑자기 부끄러워진다. <대통령과...> 역시 그런 전철을 밟았다. 한 출판사에서 거절을 했을 때는 “이렇게 훌륭한 책을 몰라보다니!”라며 흥분했지만, 지금은 내 책을 내준 출판사가 대단한 적선을 했다는 생각이다. 책 한줄 한줄이 어찌나 부끄럽게 느껴지는지 책을 들춰보기조차 안한 게 벌써 1년이 넘는다. 하여간 책을 내려면 진중권의 말대로 적당히 무식해야 하고, 어느 정도의 자기도취도 필요한 것 같다. 그런 와중에 내 책을 읽고 감동했다니, 한편으로는 부끄럽고 한편으로는 으쓱하다.
2. 낮술
점심으로 중국음식을 시켜 먹었다. 연구 면에서는 탁월한 그 선생님은 술을 많이 드신다는 게 유일한 단점이고, 낮술을 즐긴다는 게 더 큰 단점이었다. 중국요리 한 개를 앞에 두고 그 선생은 고량주 세병을 깠다. 내가 마신 건 한 여덟잔? 당연히 헬렐레해졌다.
밥을 먹고난 뒤 교지를 만드는 학생 둘을 데리고 맥주집에 갔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문을 연 맥주집이 딱 하나 있었다. 우리가 오니까 놀란 토끼눈을 한 종업원이 “병맥주만 된다”고 얘기한다. 자신은 원래 여기 사람이 아니며, 그 옆에 있는 미장원에서 근무를 하는데, 맥주집 사장과의 친분 때문에 잠깐 봐주는 거라는 말도 덧붙인다. 묻지도 않았는데.... 병맥주를 마시며 인터뷰를 계속했다. 그냥 했으면 쑥스러워서 하지 못했을 얘기들을 술의 힘을 빌어 할 수 있었다. 뭐라고 지껄였는지는 물론 기억에 없다. 남학생 하나는 내가 전에 낸 <기생충의...>도 읽었다고 한다. 기특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었다.
3. 밤술
미녀와 술약속이 있었다. 다시 보니까 더 미녀였다. 맥주집에 갔다. 매우 불만에 가득차 보이는 종업원이 우리를 맞았다.
실내가 하나도 시원하지 않았다. 에어콘이 나오는 데는 아저씨 둘이 앉아 있다.
“더운데요”
종업원은 쏘아붙였다. “곧 시원해질 거예요!”
물론 그렇게 되지 않았다. 언뜻 보니까 우리 테이블 앞에 거대한 물체가 있었다.
“저건 뭐지요?”
“히터예요!” 종업원의 목소리가 짜증스러웠다. 프라이드 치킨과 피쳐를 시켰다.
“프라이드?”
종업원이 반말로 물었다. 우리도 슬슬 짜증이 났다.
여전히 더웠다. 에어콘 앞에 나란히 섰다. 내가 말했다.
“저거 아마 히터일 거예요. 요즘 세상에 히터만 되는 게 어딨어요? 모양도 똑같이 생겼구만”
바람을 쐰 우리는 다시금 히터 앞으로 갔다. 그냥 구경만 할 셈이었다. 하지만 종업원의 앙칼진 소리가 우리의 뇌를 강타한다.
“히터라니까요!”
나, 살아생전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그렇게 싸가지없는 종업원은 처음 봤다. 확 나가버리고 싶었는데 바보같이 참았다.
날은 여전히 더웠고, 종업원은 우리를 더 덥게 했다. 에어콘 앞에 있던 아저씨 둘이 술값을 계산한다. 부채질을 하던 우리는 신나하면서 그리로 옮길 생각을 했다. 아저씨들이 갔다. 우리는 잽싸게 그 테이블로 갔다. 막 앉으려는데 종업원이 짜증스런 말투로 말한다.
“치운 다음에 앉아요!”
우리 테이블로 가서 생각을 했다. 종업원의 싸가지가 보통이 아니라는 점에는 둘다 동의했다. 나가야 한다는 데도 동의했다. 하지만 미리 시켜놓은 치킨이 걸렸다. 나가다 들키면 빗자루로 맞을 것 같았다.
우리 말고 또다른 팀이 술집에 있었다. 종업원이 맥주컵을 챙긴다.
“저 여자가 등을 보일 때 나갑시다”
그 술집에 뒷문이 있다는 것을 미녀가 발견했다. 종업원이 맥주컵을 들고 저쪽으로 간다.
“지금이예요!”
우리는 잽싸게 뒷문으로 갔다. 다행히 문이 열렸다. 밖은 훨씬 시원했다. 그렇게 통쾌한 기분이 든 건 오랜만이다. 미녀가 더 예뻐 보였다.
종업원 일은 자아실현과는 거리가 먼 일일지 모른다. 날이 더워서 짜증도 날 법하다. 하지만 이건 확실하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자-알 해낸다면 그는 장차 더 좋은 자리에서 더 좋은 일을 한다는 것. 그런 면에서 눈작고 못생겼지만 닭갈비집 종업원이 웃으며 서빙을 하는 모습은 우리를 흐뭇하게 했다. 싸가지를 만난 뒤끝이라 더 반가웠을지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