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7월 25일(월)

마신 양: 소주 두병, 맥주 두캔?

누구와: 써클 후배와


한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난 이날만큼은 절대로 술을 마시지 않으려 했다. 3번 연속으로 못나간 모임에 참석해 술일기에 기록되지 않을만큼의 양만 마시고 귀가할 생각이었다 (소주 한병 이하). 하지만 세상 일은 언제나 뜻대로 되는 건 아니다. 써클 후배 둘이 섭외-후원금 받으러-를 왔고, 그게 하필 저녁 때였고, 그들은 배가 고팠다. 난 말했다. “저녁이나 같이 할까요?” “저희야 좋죠” 우리는 고기를 먹으러 갔다.


학생 때, 모 병원에 섭외를 나간 적이 있었다. 대략 여섯명으로부터 돈을 받아야 했다. 그들은 학생 때는 써클도 열심히 하고, 나랑도 친하게 지낸 누나들이었다. 그런데 돈을 안줬다.

“계속 당직이라 며칠째 집에 못갔어”

“지금 돈이 없는데”

“내일 와라. 내 지금은 바빠서”

오기가 생긴 나는 이틀째 그 병원에 갔고, 역시 한푼도 받지 못했다. 사흘째, 난 다시금 그 병원을 찾았다. 식사하러 갔다는 말에 병원식당 계단 밑에 잠복, 나오는 걸 급습하려 했다. 그러다가 이런 얘기를 들었다.

A; 걔 또왔어. 어떡해!

B: 진짜 너무하네. 완전 찰거머리야.

C; 어떻게 할 거예요?

B: 내가 돈 주나 봐라.


그 대화의 주체는 내가 돈을 받아야 할 누나들이었고, 주제는 나였다. 누나들이 지나간 뒤 난 쓸쓸히 집으로 돌아갔고, ‘눈물의 섭외보고서’라는 글을 썼다. 그 병원에는 절대로 섭외 같은 거 나가지 말자고. 내가 무슨 구걸하러 온 것도 아니고, 주소록에 이름이 실린 선배로부터 당연히 내야 할 여름진료 후원금을 받고자 한 것인데 왜 그런 모욕을 받아야 했을까. 그 선배들도 학생이었을 때, 졸업생들을 찾아다니며 후원금을 달라고 했을텐데. 내가 졸업 후 섭외를 오는 학생들에게 잘해주게 된 것은 다 그때 받은 상처 때문이다.


고기를 먹으면서 지나가는 말로 물어봤다.

“술 같은 거 안할거죠?”

남자: 싫어하진 않아요.

여자: 저도 뭐....

그래서 난 백세주 하나와 소주 한병을 시켰다. 백세주는 둘이 나눠먹으라고 하고, 소주는 내가 먹었다.


밥을 먹고난 뒤 난 서울에 간다고 했다.

“저희도 갈 거예요!”

“난 기차 타는데?”

“저희두 기차가 좋아요. 집이 강북이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기차에서 2차를 했다. 오징어에다 맥주 두캔씩. 서울에 도착할 무렵 혹시나 해서 물어봤다.

“한잔 더 할래요?”

“저희야 좋죠”

“기숙사는 10시면 문 닫지 않아요?”

“요즘엔 24시간 해요”


그래서 난 3차를 가야했다. 이건 내가 알콜중독이어서가 아니라, 후배들에 대한 선배의 배려였다. 거기서 우린 파전과 닭똥집에다 소주를 마셨고, 도둑고양이에게 닭똥집을 던져줬고, 기억이 안나는 말들을 지껄였다. 집에 가니 12시였고, 난 이미 취해 버렸다. 그래도 오늘 새벽에 테니스는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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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아이 2005-07-26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크, 알콜중독이어서가 아니라... 솔직히 말씀하세욧. 마태님이 마시고 싶어서 물어보신 거잖아욧.

클리오 2005-07-26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후배분들도, 혼자서 소주를 드시는 마태님을 보고 속으로 '술을 굉장히 좋아하시는군..'이라 생각하고, '예의상' 3차까지 갔을 지도 몰라요... ^^ (왜 이렇게 도움이 안되는 이야기를 할까.. 흐흐...)

마태우스 2005-07-26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리오님/그럼 우린 서로 예의를 차린 거군요!!^^
숨은아이님/아네요 진짜 아니어요! 전 억울하다고 생각합니다.
쥴님/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는 믿어 주세요!
따우님/제가 예의를 좀 과하게 차리죠^^

chika 2005-07-26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요.. 예의상 술 마시는 애를 하나 알고 있는데, 옆에서 보면 답답해서 내가 더 화가나더라고요. 상대방은 그 녀석이 좋아서 술 마시는 줄 알았을거 아녜요. 그런데 나중에 예의상 마신걸 알았다고 생각해봐요. 얼마나 미안하고 그러겠어요!! ㅡ.ㅡ

비로그인 2005-07-26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쨌거나 술은 즐겁게 드셔야지 예의가 뭡니까. 뱃속에서 술이 욕해요 ㅜ.ㅡ

마태우스 2005-07-26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사탕님/하는 말이죠. 제가 진짜로 예의상 마셨겠어요^^
치카님/알겠어요. 앞으로는 솔직하게 살겠습니다. 그런데 .... "내가 좋아서 마셨어"라고 하면 알콜중독 같잖아요. 월요일부터....TT

paviana 2005-07-26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 저한테 매일 곱창에 소주나 하시는 것도 예.의.상.이겠네요 ㅠㅠ

마늘빵 2005-07-26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무슨 서클인데 섭외를 해요? 섭외의 목적이 뭔지 궁금해졌슴다.

바람돌이 2005-07-26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오늘 새벽에 테니스는 쳤다. 대단하십니다. ^^
저는 요즘 술마시고 난 다음날까지 술이 안깨서 미칠 지경인데...

꾸움 2005-07-27 0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오늘 새벽 테니스는 쳤다.

음..... 마태님은 뭔가를 아시는 분이얌. *^^*

꾸움 2005-07-27 0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참!
그 눈물의 보고서 라는 글 읽어보고싶네요. ㅎㅎ...
그때받은 상처로해서 지금 마태님이 후배에게 더 잘해주는 것이니
때론 상처받고 살아야하긴 하네요. 그죠? ^^
좋은감정만 느끼고 사는것보다
좋지않은 감정도 느껴봐야 내면이 더 깊고 넓어짐을 살면서 우린 알게되죠.

kleinsusun 2005-07-27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하하하. "저희야 좋죠." 넘 웃겨요.
4차도 가자고 했으면 "저희야 좋죠" 했을꺼예요.
근데...마태님 대단하시네요, 술 마신 다음날 새벽에 테니스를 치시고...존경!

마태우스 2005-07-27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제가 살을 빼야겠단 의지가 보통 사람과 다르답니다. 그나저나 수선님, 오랜만에 오셨네요? 그간 많이 바쁘셨나봐요?(알-면-서_
꾸움님/맞습니다. 경험이란 게 인생에서는 참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눈물의 보고서라는 거, 지금도 그때 마음을 완전히 정리하지 못했어요. 그 선배들 보면 지금도 원망스러우니 말입니다.... 어쨌든 계기가 된 건 사실이지요
바람돌이님/제가 술마시는 거, 연짱이 가능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아프락사스님/무료진료를 가는데요, 선배들은 일정 금액을 후원하지요. 거의 의무라고 할 수 있답니다.
파비아나님/무슨 그런 슬픈 얘기를 하십니까 흑. 전 님과 마신다면 정말 즐겁습니다. 일년에 몇번, 몸이 안좋을 때 마신다는 얘기를 그렇게 표현한 겁니다...흑
새벽별님/예의상이란 표현은 잊어 주세요. 엉겹결이란 말이 더 어울리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