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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했던 개, 율리시즈
로제 그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2년 10월
평점 :
절판
젊었던 시절 할머니는 개 한마리를 키우셨다. 의사였던 할아버지가 왕진을 갈 때면 그 개는 왕진가방을 입에 물고 간호사와 함께 할아버지를 따라가곤 했다.
"왕진가방이 솔찬히 무거운데 그걸 어떻게 물고 갔는지 몰라"
6.25가 나서 공산군이 쳐들어왔을 때, 할머니는 엄마를 데리고 피난을 가야 했다. 할아버지를 포함한 가족 셋이 배를 타고 영산포를 떠났을 때 기르던 개가 헐레벌떡 선착장에 당도했다. 그 개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멀어져만 가는 배를 바라보고 있었단다. 나중에 할머니는 그 개가 인민군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는-아마 식용으로 쓰기 위함이었을 것이다-말을 이웃 주민으로부터 들었는데, 선착장에서 어쩔 줄 모른 채 배를 바라보던 개의 눈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개에게는 분명 특별한 것이 있다. 수많은 동물 중 인간과 교감하며 정을 나눌 수 있는 종도 몇 개 안되지만, 개만큼 애틋함을 주는 동물이 또 있을까. 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개가 사람보다 못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돌바람님이 벤지로 인해 상심한 날 위로하기 위해 보내주신 <내가 사랑했던 개, 율리시즈>는 카뮈를 비롯한 유명 작가들이 개와 얽혔던 얘기들을 담담하게 풀어놓은 책이다. 제목에 나오는 율리시즈는 저자인 로제 그르니에가 기르던 개지만, 주인공은 유명인들이 키우던 수많은 개들이다. 책에 나온 인상적인 구절 몇개만 옮겨본다.
-우리가 어떤 개를 좋아하고 그 개도 우리를 좋아할 때, 불행한 점은 사람의 삶과 짐승의 삶이 시간적으로 일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벤지와 나처럼.
-클라망스는 "언제나 모든 것을 다 용서하기 때문에" 개들을 좋아한다고 말한다-->난 그래서 개를 좋아한 건 아니지만, 벤지도 내 모든 걸 용서했다.
-자기 개를 좋아하는 사람 역시 그 동물에게는 학대자일지 모른다..인간과 너무 자주 접하고 살다보면 짐승 본래의 독립적인 힘을 잃고 의존적이 되어..하루종일 주인 눈치만 보면서..--> 나 역시 벤지의 학대자였다.
하여 저자는 묻는다. "개를 키운다는 것은 개의 행복을 위해서일까, 아니면 우리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일까" 물론 답은 나와있다. 다른 사람이 키우는 것보다 내가 벤지를 키우는 게 벤지에게 더 행복했을지언정, 벤지는 내가 준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내게 선물해줬다.
이 책을 번역한 저명 문학평론가 김화영은 우리 독자들의 수준을 너무 잘 알기에 친절하게도 사진자료와 주석을 붙여줬다. 큰 도움을 받긴 했지만 내 무식이 드러날 때는 민망했다. 예컨대
-<티보가의 사람들>의 저자를 모르시지는 않겠지요?--> 난 모른다.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유태인답게 임마누엘 레비나스는...--> 전혀 모른다.
-나치의 대원수 헤르만 괴링을 모르는 사람, 혹시 있을까?--> 그게 나다.
그냥 주석만 달아줬으면 상처를 덜받았을 것을, 젊을 때 놀다가 뒤늦게 책을 읽다보면 서러울 때가 있다. 좋은 책을 선물해주신 돌바람님의 따뜻한 마음에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