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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열쇠
A. J. 크로닌 지음, 이윤기 옮김 / 섬앤섬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사서 읽는 책이 거의 없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데, <천국의 열쇠> 역시 꼬마요정님 이벤트에 당첨되어 고른 책이다. AJ 크로닌의 명성에 혹해서 이 책을 선택했고, 667쪽에 이르는 책의 두께에 잠시 놀랐지만, 책의 재미에 빠져 순식간에 읽어 버렸다.
20년 전에 읽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전에 읽었던 크로닌의 <성채>는 인물의 배치가 매우 전형적이었다. 나쁜 의사는 계속 나쁜 짓만 하고, 좋은 의사는 자신의 이익보다 남을 위한다. 철없던 시절이지만 책을 읽는 도중 이런 생각을 했었다. 100% 완전한 사람은 없다고. 예컨대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 해도 화장실에 갈 때 휴지가 없다면 남의 휴지를 훔칠 수 있다. 그리고 엄청나게 나쁜 사람도 구걸을 하는 어린이에게 가진 돈을 내밀 수 있다. 아름다움의 상징인 가수 유니가 가끔씩 방귀를 뀌는 것도 인간이란 완전하지 않은 존재임을 말해 주지 않는가? 하지만 이 책에서도 크로닌은 치점 신부와 안셀름 밀리 신부를 각각 선과 악으로 설정한 후, 일시적으로는 악이 승리하는 듯해도 진정한 승리는 역시 선한 자의 것이라고 주장한다. 치점의 주변 인물들 또한 마찬가지라, 어릴 적 못되게 굴었던 멜콤은 커서도 돈에만 욕심을 부리다 망한다. 그때 치점을 도왔던 윌리 탈록은 빈민 구제에 힘을 쏟는 의사가 되고, 나중에 치점을 위해 일하다 죽는다. 물론 그렇게 도식적으로 선과 악을 설정함으로써 책이 더 재미있어지는 효과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치점 신부는 천국에 가는 문은 여러 개가 있고, 천주교는 그 중 하나의 문에 불과하다고 말하며, 중국 땅에서 만난 기독교 목사와도 친하게 지낸다. 하지만 밀리는 천주교 이외의 모든 종교는 이단이라고 규정하고 교리대로 가르침을 전파하지 않는 치점을 불온시한다. 이단이란 말, 사실 난 그 말에 거부감이 있다. 교회나 성당은 사실 하느님의 심부름꾼일 뿐, 어느 곳이 ‘정통’일 수 없다. 이단 여부는 하느님이 판단할 수 있을지언정, 다 같이 하느님의 종을 자처하는 처지에 누가 누굴 이단으로 선포한단 말인가. 옛날 우리 조상들이 아버님 묘를 동쪽으로 하느냐, 서쪽으로 하느냐에 따라 동인과 서인, 노론과 소론이 나뉘어 대립했던 것이 한심했던 것처럼, 하느님의 나라를 세워야 할 일꾼들이 사소한 교리 차이로 싸우고 있는 현실은 슬프기 그지없다. 모두의 마음 속에는 하느님이 있다고 믿는 나는 “천국은 여러분의 손바닥 안에 있다”고 말하는 치점 신부에게 전적으로 동감이다.
유명한 소설가 크로닌은 의과대학을 나온 의사이기도 하다. 책을 읽으며 여러번 한숨을 쉬었다. 그가 다닌 스코틀랜드의 학교에서는 도대체 어떤 교육을 하기에 문학과 영 거리가 멀어야 할 의사가 이렇게 아름다운 문장을 쓸 수 있는 것일까. 요충에 걸린 여자가 사회에 복수하기 위해 지하철 손잡이를 훑고 다닌다는 류의 소설만 쓸 줄 아는 나로서는 훌륭한 장편소설을 쓴 크로닌과, 그런 소설가를 탄생시킨 스코틀랜드의 교육이 부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