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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시관
패트리샤 콘웰 지음 / 장원 / 1993년 7월
평점 :
절판
물만두님 이벤트 때 <검시관>을 받았었다. 순서를 기다리는 책들이 많아 맨 뒤에 세워 뒀다가, <사형수의 지문>을 통해 패트리샤 콘웰을 알게 된 뒤 맨 앞으로 새치기를 시켰다. 역시 콘웰이란 생각이 드는, 아주 재미있는 책이었다.
세 번째 여자가 연쇄살인마에 의해 죽었다. 경찰은 남편을 의심하고, 법의관이자 주인공인 스카페타는 “남편은 아니다”라고 한다. 법의관이 오직 증거로만 말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의 법의관은 수사에도 참여하고, 자기 의견을 내놓기도 하나보다. 거기까진 좋다. 문제는 그녀가 그로 인해 경찰과 싸웠다는 거다.
경찰: 잘생기고 똑똑한 놈이라 편드냐?
스카페타: 남편은 절대 아니다! 남편이 아내 손가락을 부러뜨리는 거 봤냐?
경찰: 이전 연쇄살인을 부인이 알아채서 죽였을 수도 있잖아!
스카페타: 버럭!
나중에 남편이 거짓말탐지기에서 무혐의로 나오니까 신이 나서 이런 말도 한다.
“거짓말 탐지기를 속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요. 어떤 인간이라도요!”
우리는 낯선 사람을 무서워하지만, 살인은 대개가-요즘은 그 비율이 낮아지고 있지만-아는사람에 의해 일어난다. 아내가 살해되었을 때 경찰이 남편을 의심하는 건 그런 의미에서 당연하다. 하지만 스카페타는 이렇다 할 증거도 없는 상태에서 시종 남편을 옹호한다. 법의관에게 의견을 피력할 권한이 있다 해도, 그녀가 법의관인 한 증거에 입각한 의견을 내세우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경찰이 하는 말이 헛소리로 보일지언정, “그런 건 수사해보면 알겠죠”라고 웃어넘기고 단서를 찾았어야 했다. 둘간의 불화는 수사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고, 그녀가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더 큰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아닌게아니라 스카페티는 좀 피곤한 스타일임에 틀림없다. 하는 일이 완벽주의를 요구하는 거라 그렇게 된 건지 몰라도, 별 상황도 아닌데 짜증을 유난히 많이 냈다.
“나는 짜증스러움을 억눌렀다(73쪽)” “나는 퉁명스럽게 프레드에게 말했다(37쪽)”
“나는 분노를 억제했다(141쪽)” “나는 퉁명스럽게 말했다(178쪽)”
“차츰 화가 치밀어 왔다(393쪽)”
물론 책을 읽어 가면서 난 왜 그녀가 그렇게 짜증을 내면서 살아가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여성에 대해 쓸데없는 우월감을 갖는 남자들이 득실대는 세상에서, 그리고 그들이 여성을 끌어내리기 위해 갖은 음모를 꾸미는 세상에서, 그 정도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투사가 될 수밖에 없었던 거다. 생뚱맞은 결론이긴 해도, <검시관>을 읽으면서 여성을 전사로 만드는 사회구조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