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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다임에 갇힌 지성
강기석 지음 / 미디어집 / 2005년 3월
평점 :
품절
계간 ‘인물과 사상’이 폐간한 데는 인터넷의 영향이 컸다. 속보성에서 책이 인터넷을 따라갈 수 없는데다, 더 중요한 이유로 인터넷은 공짜다! (완전한 공짜는 아니지만)
경향신문 편집부장 강기석이 쓴 칼럼들을 모은 이 책 역시 그런 한계를 벗어날 수 없었다. 나는 아니지만 내게 이 책을 선물해주신 세실님이 책값을 지불하셨고, 책의 칼럼들은 영 시의성이 떨어졌다. 총선 얘기를 하기에 2004년인 줄 알았는데 2000년이었고, 99년 중앙일보의 탈세에 관한 글도 있다. 이틀 전 일도 금방 잊혀지는 현실에서 누가 이 책에 관심을 갖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책을 택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좋은 글은 인터넷보다는 책으로 봐야 한다. 왜곡과 날조로 점철된 칼럼을 양산하는 필자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강기석처럼 올곧은 생각을 지닌 사람의 책이 조금이라도 팔리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둘째, 오래 전 일이라도 다시금 곱씹어 볼 필요가 있는 것들이 있다. 과거의 연장선에 현재가 놓여 있기 때문에.
셋째, 마음의 빚.
독재정권을 예찬했던 관변언론, 한화에 인수된 뒤에는 재벌언론의 길을 걸었던 경향신문은 97년 외환위기 이후 ‘100% 사원주주’라는 방식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당파적인 신문이 넘치는 와중에, 경향만큼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는 신문이 또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과거의 부정적 이미지는 쉬이 없어지지 않고, 신문을 좀처럼 바꾸지 않는 독자의 관성 때문에 경향의 상태는 그리 좋지 않은가보다. 경향이 좋은 신문인 것을 알면서 구독도 안해주는 나로서는 그저 미안할 따름이다.
그의 칼럼 중 가장 인상적인 대목을 옮겨본다.
-2000년 총선 후 각 언론들이 여소야대에 야당이과반수가 된 결과를 두고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주문하는 유권자의 뜻’이라는 헛소리를 해댈 때 강기석은 이렇게 썼다.
“..우리 국민의 총체적 민심은...후진적인 것이었다....지역감정에 물든 민심은 결코 존중할 대상이 아니다...이런 비이성적인 민심을 칭송하고 아첨한다면 그것은...또다른 음모의 소산일 뿐이다”
-조선일보 절독운동에 대해 독자들은 “우리가 바보냐”라고 항변을 한다. 그러나 최초의 직선 편집부장 강기석에 따르면 “독자들은 어느 언론이 거짓말 하고 속인다는 사실을 판단할 능력을 갖지 못했다고 본다”
국민들에게 아부하며 그들의 잘못된 선택마저 옹호함으로써 신문이라도 한부 더 팔아볼까 하는 신문들만 봐서 그런지, 저 글이 특히 시원했다.
‘조선일보만 30년 봐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무지하게 많다. 그거 자랑 아니다. 그런 신문을 그렇게 오래 봤다는 건 오히려 부끄러운 일이다. 다른 신문이면 모르겠지만, 조선일보-요즘은 동아일보도-를 보는 분이라면 이 참에 경향으로 바꾸라고 권하고 싶다.
* 이 책을 선물해 주신 세실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