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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품격 유머 - 성공하는 리더를 위한 ㅣ 고품격 시리즈 3
이상준 지음 / 다산북스 / 2005년 2월
평점 :
품절
웃기려고 타조 흉내나 내는 날 안타깝게 바라보던 미녀가 있었다. 그녀가 내게 <성공하는 리더를 위한 고품격 유머>라는 책을 선물했다. 그녀의 마음은 십분 이해하지만, 이 책은 내게 그리 유익하지 않았다.
저자는 저속한 유머와 고품격 유머를 이렇게 구분한다. “성, 화장실, 욕 등 형이하학적 소재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품위 있는 유머는 정치풍자, 시사, 사회 트렌드 등과 같이 형이상학적 주제를 채택하는 경우가 많다”
형이상학에 대한 저자의 정의도 뜬금없게 느껴지지만, 정치풍자나 시사 코메디가 고품격 유머라는 것 역시 황당하기만 하다. 언로가 꽉 막혔던 군사독재 시절에는 정치풍자가 사람들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 줬지만, 대놓고 대통령 욕을 할 수 있는 요즘에 정치코메디의 필요성이 뭐가 있을까?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유머들은 저자가 “직접 만든 창작물들”이니 무단으로 전재하는 것을 삼가라고. 이 구절을 읽을 때 난 긴장했다. 도대체 어떤 고품격 유머들을 선보일까 하는 기대감에서. 품격을 갖춘 유머를 강조하는 저자의 작품을 하나만 감상해 보자.
[시골을 떠난지 3년만에 영섭이가 서울서 체어맨을 타고 다닌다는 소문이 돌았다. 마을 사람들은 영섭이가 큰 성공을 한 모양이라고 칭찬했다. 근데 영섭이가 TV에 나왔는데 농구 경기장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끝은 이거다. “영섭이는 치어맨이 되어 있었던 것”
음하하하. 너무도 대단한 고품격 유머라 쓰러질 뻔했다.
재미없기 그지없는 ‘교수집단’이 “타 직업 종사자들에 비해 평균적인 품위유머감각의 수준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는 저자의 말에 한번 웃었고, 개그맨들은 “수단가 방법을 가리지 않고 웃기는 것에 올인”하며 그래서 “방귀, 똥, 섹스, 불륜, 바보짓” 등에 몰두한다는 저자의 말은 이 사람이 과연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지 허탈한 웃음을 짓게 했다. 저자가 <웃찾사>를 한번만 봤더라도 이런 소리를 안할 텐데. 개그맨을 무시하는 저자와 달리 요즘 사람들은 개그 프로그램의 유행어들을 써먹으면서 남을 웃기지 않는가.
이왕 읽은 게 아까워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은 끝에 난 드디어 공감이 가는 구절을 만날 수 있었다.
[“유머가 형 적성에 맞아요?”
내가 유머 사업을 한다고 하니까 한 후배가 의문의 눈초리를 보내면서 한 말이다]
그렇다. 그 후배의 눈은 정확했다. 하나도 안웃기는 사람이 유머 책을 쓴다니, 주위 사람들은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이 책에 나온 수많은 유머들이 쥐털만큼의 웃음도 주지 못했던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래도 저자가 자신의 유머를 ‘고품격 유머’라고 주장한다면, 난 이렇게 말해 주련다. “그래. 너 고품격 유머 해라. 난 계속 늑대 울음소리나 흉내내겠다. 오오오-----”
실용서는 역시 쓸데가 없다는 편견을 재확인해준 이 책의 리뷰와 관계없이, 미녀와 나의 우정은 계속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