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받은 작품은 안보는 게 내 관행이었다. 평론가만 만족시키는 아주 어렵고 난해하면서 이해하기 힘든 영화들이 주로 상을 받지 않는가. 칸은 말할 것도 없고 아카데미상 타이틀이 붙은 건 그래서 외면했다. 하지만 <밀리온달러 베이비-이하 밀베>는 희한하게 보고 싶어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권투 경기를 소재로 한 영화라면 <로키>가 생각난다. 하지만 그건 권투영화라기보다 냉전 영화였고, 스텔론이 자기 근육질을 자랑하는 무대였다. <밀베>는 오래 전에 한물간 권투를 소재로 삼아서도 이렇게 많은 얘기들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줬다.

-75세라는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여전히 멋졌다. 누구는 75세에도 멋진데, 나는 20대는 물론이고 지금도 멋과는 거리가 멀다. 신의 불공평에 항의하려고 석달째 머리를 안깎고 있는 중인데, 무성한 머리 때문에 목에 부담이 가는 듯하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옆에 앉은 놈이 영화 내내 문자질을 했다. 그 인간을 째려보느라 영화의 감동이 2%쯤 줄었다. 그렇게 문자질 할거면 극장에는 왜 왔단 말인가.

-난 영화를 보기 전 클린트 이스트우드(프랭키)가 매기를 안락사시킨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얼마 전 있던 토론수업의 주제가 안락사였는데, 토론을 준비한 애들이 동영상으로 그 장면을 방영했기 때문. 안락사 얘기를 들은 게 스포일러인 건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그로 인해 영화의 감동이 줄어든 것은 절대 아니다. 희한한 것은 눈물은 꼭 콧물과 같이 난다는 사실. 나 역시 내가 쓴 휴지의 절반은 콧물을 닦느라 썼다 (손수건으로 닦는 애들은 콧물 닦던 수건으로 눈물을 닦았겠지? 으, 드러).

-이 영화를 보고나니 안락사에 찬성하는 입장이 된다. 프랭키는 신부에게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는데, 신부는 이런다. “그건 안됩니다” “당신은 빠지세요. 하느님께 맡기세요”

종교의 완고함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촌철살인의 대사들

영화 속의 대사들은 웃음을 던져준다. <잠복근무>보다 훨씬 더 많이 웃었다. 하지만 슬픈 상황에서 발휘되는 유머는 사람을 더 슬프게 한다.

1) 매기와 프랭키의 대화 중

매기: 개 키워 봤어요?

프랭키: 개같은 새끼는 키워본 적 있지.

2) 물병만 들여다보는 권투선수 지망생이 있다. 그가 한 말, “저 엉뚱한 질문 하나만 할께요. 이 구멍으로-생수병-어떻게 얼음을 넣었죠?”


재미와 감동을 내게 선사해 준 멋진 영화였다. 안봤으면 오래 후회할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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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5-04-04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카데미에서 한껀 크게 올리더니 제값을 하는가 보군요. 보고 싶어라...ㅜ.ㅜ

줄리 2005-04-04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들 재밌다고 그리고 감동이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매기로 나온 배우 인터뷰를 보니 아주 괜찮은 여자같더군요. 그래서 꼭 봐야겠다고 굳게 마음먹었습니다.

하이드 2005-04-04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뭐랄까, 감동적이라기 보다는 기분 몹시 드러워지는, 에잇, 젠장 퉤퉤퉤 하고 나오는 그런 영화였어요. ( -> 그러니깐, 좋았다는 뜻입니다. )

비연 2005-04-04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괜챦은 영화였습니다..저도 보고..리뷰 올렸었는데..감동 그 자체입니다^^

sweetmagic 2005-04-04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번 봤어요 ㅎㅎㅎ

마태우스 2005-04-04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직님/한자리에서 두번 보셨죠??? 다 알아요!
비연님/님 리뷰 저도 읽었었죠 영화를 통한 교감이란 게 바로 이런 것?^^
하이드님/제말이.......그말이죠
dsx님/서른두살이 뭔가를 시작하기엔 늦지 않았다는 것도 깨달았어요. 근데 전...흑흑
스텔라님/요즘 아카데미가 대중의 눈높이로 내려온 듯하더이다. 아메리칸 뷰티도 그렇구, 타이타닉도.....

비로그인 2005-04-04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영화보고 며칠 앓았어요.
너무 힘들고 슬프고 뭐라 말할 수 없는 기분이더군요.

마태우스 2005-04-04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양이님/그러셨군요..... 저도 어찌나 가슴이 아팠는지요. 매기의 눈이 지금도 생각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