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4번째: 영화보다 자다
일시: 12월 27일(월)
누구랑: 미녀 둘이랑
마신 양: 소주 약간, 그리고 생맥주 많이
합쳐서 63세인 미녀 둘을 만났다. 이제 며칠만 지나면 한 살씩 더 먹을테니 합쳐서 65세가 되는데, 그네들이 내년에도 결혼을 안하고 나랑 놀아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구체적인 계획은 없고, 있는 애인과도 헤어진 판에 결혼이 가능하긴 하겠냐고 하는 시각도 있지만, 결혼이란 건 어느날 순식간에 찾아오는 법이지 않는가? 물론 그녀들은 “결혼 후에도 계속 만나자!”라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글쎄다. 그게 잘 될까? 아주 너그러운 남편을 만나지 않는다면 지금처럼 새벽 한시에 집에 들어오고 그러는 건 한국적인 현실에선 어려운 일이다.
소주를 마시면서 2차를 어디갈까 상의를 했다. 늘 가는 곳 말고 뭔가 참신한 아이디어가 없을까 고민하다, 영화를 보자고 제안을 했다. 이 영화는 얘가 봤고, 저건 내가 보기 싫고,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쟤가 다음날 본다고 하고. 해서 고른 게 바로 <인크레더블>. 난 이 영화를 봤지만, 어줍잖은 영화를 보는 것보다는 재밌는 영화를 한번 더 보는 게 낫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처음 봤을 때만큼 영화가 충격적이지 않을테니, 조용히 앉아서 관조를 하자는 그런 생각. 하지만 영화 시간을 기다리며 마신 술이 너무 많았던 듯, 인크레더블이 업그레이드된 문어로봇과 싸우는 도중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보니 인크레더블이 여전히 그 로봇과 싸우고 있다. ‘얼마 안잤구나’ 하고 계속 보다보니, 이럴 수가. 그 씬은 영화 막판의 라스트 전투였던 것. 도대체 난 얼마나 잔 걸까. 옆 미녀의 말에 의하면 “징하게 오래 잤다”고 한다. 게다가 코까지 심하게 골았다고 하니, 부끄러운 노릇이다. 저 옆을 보니 나랑 술을 경쟁적으로 마신 또다른 미녀가 자고 있다. 그녀는 나와 달리 영화가 끝날 때까지 잤으며, 영화가 끝나고 나니 굉장히 개운한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표정만 그렇지 몸은 안좋은 듯했고, 나 역시 영 몸이 찌뿌둥했기에, “영화 끝나고 소주를 치사량까지 마셔보자”는 우리의 계획은 무산이 되버렸다.
영화를 보다 잔 적이 몇 번이나 있던가 생각해 봤다. 남들은 재미없는 영화를 볼 때 그런다지만 난 놀랍게도 <더티댄싱>이라는 명작을 보다가 잤다. 그때는 내가 본과에 올라가기 전 해부학 오리엔테이션을 받는 때였는데, 그날 모의 땡시험이 있어서 전날 밤을 샜던 것. 아무리 안자려고 해도 잠이 몰려와 옆의 미녀에게 미안했던 기억이 난다. 결국 난 그 영화를 다른 여자와 다시 봤는데, 보고 나서 이랬다. “안봤으면 큰일날 뻔했다”
술먹고 잔 적은 또 있다. 영화는 아니고 연극인데, 술을 마시다 1차에서 맛이 갔는데 깨보니 내가 실험실 사람이랑 소극장에 와 있는거다. 난 내가 왜 거기 있는지 기억이 전혀 안났지만, 그녀의 말에 의하면 내가 갑자기 나타나더니 연극을 보자고 하기에 따라왔단다. 내가 자는 걸 보고 배우들이 “좀 깨우라”는 말도 여러번 했다나? 아휴, 부끄러워. 내게도 그런 어두운 시절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