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교수는 언제 어떤 때 말을 시켜도 몇시간이고 떠들 수 있는 사람이다. 물론 그 말이란 것이 해당 주제와 별 상관이 없는 경우가 많다. 교수는 또한 자기가 말 많은 건 당연한 거지만, 남이 말 많은 건 잘 못참는다. 이 세가지 외에 또 뭐가 있을까?


2. 본론

어제 아침에, 부총장님 주관하에 산학협력인가 하는 모임이 있었다. 자연대, 공대, 의대간에 비슷한 연구를 하는 사람들끼리 연대하고, 또 좋은 기계가 있으면 같이 쓰자는 취지에서 이루어진 모임이었다. 난 의대 쪽 소개를 맡았다. 사흘 전, 내가 받은 주문은 이랬다.

“5분간에 걸쳐 교수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소개하면 됩니다”

난 우리 과 교수들에게 일일이 통화를 한 끝에 서른두장의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를 만들었다. 나뿐 아니라 다른 교수들에게도 비슷한 주문이 갔다고 한다. 하지만.


5분으로 예정되었던 부총장 인사말은 25분이 지나서 끝났다. 우리 부총장님은 6대 1로 붙어도 90% 이상의 말 점유율을 기록하시는 분이시니, 그걸 감안하면 오히려 빨리 끝난 건지도 몰랐다. 그 다음 첨단과학대. 10시 55분에 시작해 11시 14분에 끝났으니 무려 20분이 걸린 셈. 공대는 어땠을까. 11시15분부터 시작해 11시 30분까지 17분간 연설. 참석한 사람들은 다들 지겨워 죽으려고 했다. 교수들 하는 일을 소개하라는데 왜 전부 자기 단과대 홍보와 향후 사업계획을 말하는 걸까.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어서 그다음에 나온 생명자원대 학장이 이런 말을 한다.

“다들 길게 하시는군요. 전 5분 발표할 것만 준비하래서 간단히 준비했습니다”

물론 이런 말에 현혹되면 안된다. 그걸 그대로 믿어 버리면 더더욱 지겹고, 결국엔 그 사람을 미워하게 되니까. 생자대 학장은 결국 21분간 마이크를 잡았다. “더 깊게 들어가면 할말이 많지만 이만 줄인다”고 선심까지 썼다.


내 차례에 앞서 사회자가 의사진행발언을 신청했다.

“처음에 제가 5분씩만 부탁을 드렸을 때 다들 5분이나 할 얘기가 뭐가 있냐고 하시더니, 하고 싶은 말씀이 많으신가봐요. 앞으로 일정이 빡빡하니 좀 짧게 해주세요”

이 말은 좀더 일찍 나왔어야 했다. 난 그런 말이 필요없는 사람이니까. 대부분의 교수가 수업 때 10분만 더할께요, 라고 해놓고선 20분, 30분을 더하는 반면, 난 20분만 더할께요, 라고 해놓고선 10분, 7분, 심지어 5분에 말을 끝내 버리니까. 난 말을 오래하는 게 질색이고, 그럴 능력도 없다.


난 앞으로 나가서 내 소개를 한 뒤 발표를 시작했다. 중간에 두 번 사람들을 웃긴 걸 포함해서, 난 4분이 채 안되는 시간 동안 의대 소개를 마쳤다. 내 동료의 말이다.

“이런 썰렁한 분위기에서 어떻게 유머까지 발휘하시고... 정말 대단하십니다”


3. 결론

교수들의 네번째 특징은 시간관념이 없다는 것이다. 5분만 하라는 걸 20분씩 하는 걸 보니, 사바세계의 5분이 자신에게는 1분으로 여겨지나보다. 물론 그 연설들 중에 주제와 관계있는 건 거의 없었으니, 어제 회의는 교수의 두 번째 특징을 아주 잘 충족시켰다. 그런 걸 보면 난 정말 제대로 된 교수가 아닌가보다.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니르바나 2004-12-24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리 생각해도 이 말은 명언입니다.

"목사님 설교와 미니스커트는 짧을수록 좋다"

마태우스님은 부총장되셔도 지금처럼 짧게 말씀하세요.

모두에게 사랑받는 지름길입니다.

마태우스 2004-12-24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르바나님/하하, 전 정말로 할 말이 없어서 짧게 하는 거예요^^ 앞으로도 쭈욱 그럴 수밖에 없답니다. 그나저나 부총장이라...호호, 한번 해볼까요?

가을산 2004-12-24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 마태님의 발표가 가장 기억에 남는 발표였을겁니다.

박수 많이 받으시지 않았어요? ^^

paviana 2004-12-24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 참...이왕이면 총장을 하셔서 쓸데없는 말 마니 하는 교수님들을 혼내주세요 ^^

하얀마녀 2004-12-24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분이 안되는 시간동안 두번이나 웃길 수 있다니, 역시 유머의 달인이시군요. ^^

마태우스 2004-12-24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산님/뭐 조금...흐뭇흐뭇^^

파비아나님/총장은 힘들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부총장이라면 한번 도전해 보겠습니다 (이 글 우리 부총장이 보면 안되는데....)

마녀님/달인은요... 그냥 열심히 하니까 되더군요^^

sooninara 2004-12-24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례사 길면 정말 괴로워요..그런데 교수님들은 더 하시네요..

마태님 너무 잘하셨어요..길어도 아무도 안들어요..그냥 딴생각하는거지..

▶◀소굼 2004-12-24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교다니면서 항상 조회시간에 지겨웠었죠; 대체 언제 끝날까;;항상 입에 거품을 무시며 연설하시는;;그러다가 고등학교 처음 입학식날 교장선생님이 등장하시는데..

갑자기 엄청난 환호와 박수소리..왜그런가 싶었는데..

나중에 정말 좋은 얘기만 짧게 하시고 끝내시더라구요. 그래서 선배들이 상당히 좋아하는;;그 뒤로는 역시 마찬가지로 교장선생님 등장하면 기립박수부대에 참가^^;;했었던 기억이 나네요.

LAYLA 2004-12-24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 부총장 밀기분위기로군요! 예! (덩달아서 신나하고 있음..;;;)

비로그인 2004-12-24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리 크리스마스 마태님 ^^

sweetrain 2004-12-27 0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마태님(순간 마채님이라고 쓸 뻔 했음) 부총장 추대 위원회를 결성해야 할 듯 합니다. 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