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시: 12월 18일(금)
장소: 천안의 모 음식점
마신 양: 소주--> 맥주, 은근히 취했다
학교에 발령을 받고나서 몇 달이 지난 뒤, 입시관리과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날더러 한성고 출신이 아니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했더니, 자기는 나보다 십년 전에 한성고를 졸업했으며, 한성고 출신으로 천안에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 있으니 나오라고 했다. 그게 벌써 5년 전이다.
대학에 있는 사람들을 비롯해 자동차 영업을 하는 사람, 호텔 지배인 등 다양한 직종에 있는 사람들이 같은 고교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모일 수 있다는 건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난 그 모임에 두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남자고등학교다 보니 나오는 사람이 죄다 남자라는 것도 안좋은 점이고, 두 번째로 아쉬운 건 내가 가장 막내라는 점이다.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이 나보다 12년 선배고 그로부터 각 기별로 두세명씩은 있는데, 나보다 3년 선배가 있고 그 다음이 나다. 그러니 나는 막내 중에서도 한참 막내인 셈. 그래도 애들 앞에서는 교수라고 폼을 잡고, 우리 써클에서는 내가 한번 나타나면 다들 기립할 정도로 나이가 많은데, 그 모임에 가면 내가 귀여워 죽겠다는 듯이 머리를 쓰다듬는다. 40을 바라보는 내 나이에 막내로 활약하는 기분이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회비도 안깎아주면서 주문을 비롯해서 온갖 허드렛일을 다 해야 하니 아쉽다는 게 아닌가.
그날 들은 충격적인 얘기. 2차로 노래방을 갔는데, 한 선배가 조용히 내 곁에 앉는다. 그리고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야, 너 살 좀 빼야겠다. 니 나이에 너 정도 몸매면 심각한 거 아니냐?”
난 나한테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 평소에 내가 워낙 몸을 숨겨서 남들은 나의 비만을 눈치채지 못하며, 기껏해야 배를 만져보고 나서 “아니 이게 뭐야?” 하고 놀라는 게 고작이다. 그런데 “니 몸매면 심각한 거 아니냐”니. 그에게 수줍게 말했다.
“저 안그래도 살 빼려고 운동 열심히 하고 있어요. 테니스도 치구요, 러닝머신도 해요”
선배는 고개를 저었다. “그거 가지고 안돼!! 살 빼려면 더 해야 돼!”
으, 날더러 어떡하라는 걸까. 안그래도 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사는 사람에게 그런 말을 한다는 건 너무하지 않는가.
내가 노래부를 차례가 되어 오랜만에 <하얀바람>을 불렀다. 1절이 끝난 후 간주가 나가는 동안, 난 소방차처럼 덤블링을 시도했다. 그리고는 바닥에 뻗었다. 히프가 쑤셨다. 옛날에는 한손으로도 쉽게 덤블링을 했는데, 살이 찐 이후에는 번번히 덤블링에 실패한다. 역시 살을 빼긴 빼야 할 모양이다.
돌이켜보면 지난 일년반 동안 내가 운동을 게을리 한 적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체중은 점점 늘어나기만 할 뿐이다. 미녀를 만났을 때도 “두달만 기다려줘. 내가 너를 위해서 몸을 만들께!”라고 했었지만, 두달이 지난 지금 내 몸은 변함이 없다. 나름대로 운동을 하니 먹는 것만 줄이면 살은 금방 빠질 텐데, 맛있는 음식의 유혹을 뿌리치기란 너무도 어렵다. 오늘도 물론 술자리가 있다. 과연 나는 얼마나 자제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