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렇다. 철면피가 되는 거다....

 

며칠 전,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듣다가 굉장히 감동을 했다. 인터뷰에 응한 노동부 차관(정확히는 모르겠다...)의 태도가 높은 자리에 가려면 어떠해야 한다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그날의 주제는 노동부차관의 전날 발언 때문이었다. 오래 전, 근로자들에게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노동부장관은 비정규직으로 3년간 근무하면 해고를 어렵게 하는 내용의 법안을 내놓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쉽게 말하면, 비정규직으로 3년간 근무하면 거의 정규직화 되는 걸로 보면 된다”

장관의 이 말에 비정규직들의 가슴이 얼마나 설레였는지 짐작할 만하다.

그런데 엊그제 공청회에서 노동부 차관이 전혀 다른 말을 했다.

“비정규직 3년을 근무한 것이 정규직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정규직화를 의미한다’고 믿었던 수많은 비정규직들의 마음에는 대못이 박혔을거다. 장관과 다른 말을 한 차관은 과연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했을까.


손석희: 어제 한 말은 뭡니까.

차관: 비정규직 3년이 되면 기간 만료만을 이유로 해고할 수 없다는 거지, 정규직화되는 건 아니라는 말입니다.

손석희: 그럼 그 전에 장관이 한 말은 뭐죠?

차관: 비정규직으로 3년씩 근무하면 아무래도 일에 전문성을 갖게되니 쉽게 해고할 수 없다는 말이죠.

손석희: 그럼 그게 전혀 새로운 법안은 아니네요? 현실적으로 해고가 어렵다면 굳이 법안으로 만들 필요가 있나요?

차관: 그건 아니죠(뭐가 아니냐?) 이 법안은 비정규직 3년이 되면 기간 만료만을 이유로 해고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겁니다.

답답해진 손석희: 그럼 3년을 넘게 일해도 정규직화는 안되는 거 아닙니까.

차관: 그렇습니다. 비정규직의 임금을 정규직의 60%만큼 준다고 할 때, 더 올리라고 강제할 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


완전히 집떠나는 홍길동의 재판이 아닌가. 호형호부를 허락하노라, 라고 말하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으로 부르지 못하는데 호부호형이 무슨 소용입니까”라고 하는 홍길동 말이다. 내가 기대한 건 “사실 장관이 전에 말을 잘못해서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 정도의 진솔한 사과였다. 그 사과를 하는 대신 차관은 같은 말을 반복하기만 한다. 차관이 바보가 아닌 이상, 그는 두 말이 서로 상충된다는 것을 알았을 거다. 그럼에도 꿋꿋이 그게 그것이 아니라는 해괴한 말을 하는 그 뻔뻔함, 높은 사람이 되려면 필히 갖추어야 할 덕목이리라.


최근 새마을호에서 여승무원 10명인가를 해고해 버렸다. 이유가 뭘까. 그 훌륭한 법안 때문이란다. 비정규직으로 3년간 근무하면 해고가 어려우니까 2년만에 해고해 버린 것. 비정규직을 써서 임금을 줄여 보려는 철도회사만을 나무라고 싶지는 않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의 추세가 그런 걸 철도회사만 외면할 수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같은 일을 하고도 다른 이의 절반밖에 임금을 받지 못한다면 얼마나 억울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은 점점 확대되고 있으며, 그들의 처우는 여전히 열악하다.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별반 의미없는 법안 하나 내놓고 생색을 내는 차원이 되어서는 곤란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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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nerist 2004-12-14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강유원 박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지요.



"사회 지도층의 각성을 촉구한다"고들 말한다.

웃기는 소리다.

그들은 '각성'했기 때문에 '사회지도층'이 된 것이다.

진/우맘 2004-12-14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바로 옆에도 비슷한 예가 있지요. 근무기한이 일 년이 넘으면 퇴직금이 지급되어야 한다고....일 년 되기 전에 톡톡 짤리는 비정규직들...ㅡ.ㅡ;

하이드 2004-12-14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깐, 요새 어디 직장 옮기겠냐구요...는 아니구요, 뭔가 좋지 않은 인상으로 그만두면 느끼게 될 패배감 내지는 자존심 추락, 내가 그만둬도 아무도 불편해 하지 않는 그런 인간으로 남고 싶지 않은 마음인것이죠. ( 비정규직 얘기에 엄한 답글 아니고, 제 페이퍼의 마태님 답글에 대한 답글입니다.)

파란여우 2004-12-14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규와 비정규의 사이에 놓여있는 선(線)은 자본주의가 존속하는한 계속될겁니다. 다만, 그 차이가 어느정도인가가 관건이라고 봅니다. 그 문제를 풀어야 하는 일이 이토록 어렵단 말인지...한 해가 저물어가는 이때에 마음이 허허롭군요

ceylontea 2004-12-14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왜 저런 바보 같은 말을 할까요?

하얀마녀 2004-12-14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나봐요.

노부후사 2004-12-14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돌발영상을 보니까 딴나라당 주성영이도 비슷하게 씨부렁거리더만요.

http://news.naver.com/tv/read.php?mode=LOP&office_id=058&article_id=0000000392

마태우스 2004-12-15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피님/윽 다시보기를 했는데 잘 안되는군요 제 컴이 문제가 있는 듯...

마녀님/그러게 말입니다

실론티님/미안하다는 말을 하기가 그렇게 어려운가봐요

여우님/저도 마음이 안좋네요. 경제가 발전할수록 못사는 사람이 점점 더 늘어가는 현실이...

하이드님/댓글 잘 읽었사옵니다. 제가 달은 것도 보셨죠??

진우맘님/네........그렇군요...

매너님/강유원 박사님은 멋진 말씀을 참 많이 하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