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내시경 결과를 보는 날.
작년 위내시경 결과 때문에 가슴앓이를 한 탓인지 아내는 따라가겠다고 했다.
용종 한 개를 떼고 조직검사를 하긴 했지만
뭐 별일이야 있겠나 싶어 가벼운 마음으로 외래 진료실에 들어갔다.
“별 이상한 소견은 없고요...”란 말에 그나마 버티던 일말의 불안감도 날아갔다.
그런데...의사가 보여준 첫 번째 화면에 난 그저 아연했다.
“이곳이 항문이고요...”
아니, 남의 항문 사진은 대체 왜 찍었으며, 그걸 보여주는 이유는 도대체 뭔가?
아무리 아내지만, 부끄럽단 말이다.
언젠가 초음파를 해주던 여자 동료는 내가 “보라색 팬티를 입었다”고 소문을 내더만,
내가 봐도 징그러운 항문사진을 대체 왜....?

게다가 난 완전한 정상은 아니었다.
게실(diverticulum)이라고, 대장벽이 약해져서 주머니처럼 튀어나온 건데,
그게 나이에 비해서 좀 많단다.
학생 때 게실에 염증이 생겨 혈변을 봤던 환자도 봤던만큼
게실이 많다는 건 좀 기분나쁜 소식이다.
하지만 항문사진에 비하면 그건 약과였다.
진료실을 나온 아내는 이렇게 날 놀렸다.
“털도 났지요.”
울다가 웃으면 그곳에 털이 난다는데, 나도 그래서 그렇게 된 걸까?
그 의사가 작년의 위기에서 내 생명을 구해준 건 고맙지만,
오늘 일로 점수 깎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