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삐는 옥션에서 고른 강아지다.
두번째 아이를 원했던 아내는 옥션에 올려진 강아지 사진을 보고 한눈에 반한다.
동대문 집을 찾아간 아내는 실물이 사진보다 훨씬 더 예쁘단 것에 놀라 서둘러 계약금을 건다.
엄마 젖을 좀 더 먹고 오라며 예삐와 헤어진 건, 지금 생각하면 위험한 일이었다.
다른 사람이 예삐를 보고 "내가 가져가겠다"며 계약금의 두배를 물어준다고 한다면 어쩌겠는가?
하지만 인연이란 게 있는지 예삐는 우리 집으로 왔다.

난 처음부터 예삐가 좋았다.
이전 강아지의 추억 때문에 다른 강아지를 예뻐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예삐를 보고 나선 한눈에 반했다.
머리 좋고 사람 잘 따르고 무엇보다 예쁘고.
녀석은 동작 하나하나가 예술이었다.
아장아장 발을 올리며 걷는 거나 옆으로 누워 자는 것도 그랬고,
특히나 아내가 '미친 강아지'라고 이름붙인, 첫째 강아지 뽀삐 주위를 뺑뺑 도는 장면은
언제든 우리를 즐겁게 했다.
아내는 말했다.
"내가 바라던 삶이 바로 이런 거였어."
그 평화가 깨질 조짐이 보인 건 2010년, 그러니까 예삐가 두살 때였다.
걸핏하면 쓰러지기에 병원에 데려갔더니 심전도 사진이 기가 막혔다.
페이스메이커에서 심장을 뛰라는 신호를 잘 안보내고 있었고,
예삐가 쓰러진 건 그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심장수술을 하는 강원대병원에 찾아간 덕분에
예삐는 인공심박기를 달았는데,
이게 잘 정착되기까지 두 번의 수술을 더 해야 했다.
그래도 이젠시련이 끝났구나, 다시금 평화가 찾아오겠거니 했다.
앞날에 대한 희망이 있던 그땐, 지금 생각하면 참 행복한 시절이었다.

올해 예삐는 갑자기 발작을 하기 시작했다.
그 전에도 조짐이 있었지만, 전신적인 발작을 한 건 처음이었다.
침을 흘리며 괴로워하는 예삐를 보면서 아내와 난 "이렇게 예삐를 보내는구나"는 생각까지 했지만,
다행히 예삐는 약을 먹고 괜찮아졌다.
그때부터 스테로이드 인생이 시작됐다.
매일같이 스테로이드를 먹었고, 하루라도 안먹으면 발작이 재발했다.
스테로이드의 부작용은 만만치 않아, 예삐는 식욕이 점점 증가했고,
날씬했던 녀석은 어느덧 뚱보의 상징인 뽀삐보다 비대해졌다.
자연히 움직임도 둔해졌고, 내가 열광했던 '미친 강아지' 같은 건 다시 보기 힘들어졌다.

어느 순간부터 예삐는 걷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풀밭에 내려놔도 헉헉거리며 앉아만 있는 예삐,
혹시 심부전이 온 게 아닐까 싶어 병원에 데려갔더니 빈혈이 아주 심하단다.
수혈을 받아야 할 정도라니, 그것 때문에 심장이 무리를 했을 수도 있겠다 싶다.
이제 예삐는 발작약에다 빈혈약까지 같이 먹어야 한다.
긴병에 효자 없다고, 예삐를 정성으로 간병하던 아내는 점점 지쳐 간다.
생활비는 물론이고 '알바'라고 부르는 원고료와 강연료 등도 거의 대부분 예삐한테 들어가,
처음 마티즈 중고를 살 땐 장난 비슷한 마음이었는데
지금은 정말로 마티즈 중고밖에 탈 수 없는 사정이 됐다.
처음 예삐를 고를 때 아내는 강아지의 미모와 더불어 뒷다리가 튼튼한지를 확인했다.
첫째 강아지 뽀삐가 슬개골 수술에 고관절 수술, 거기에 발바닥 수술 삼종세트를 한 것도 모자라
자궁축농증에다 슬개골 재수술을 한 것에 질려서 다리 튼튼한 걸 본 거였는데,
요즘 보면 첫째 아이가 오히려 건강해 보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금도 헉헉거리며 엎드려만 있는 예삐,
우리도 그 소리가 힘들지만 본인은 얼마나 괴로울까 하는 생각에 안스럽기만 하다.
"예삐야 걱정 마. 우리가 꼭 책임질게"라고 수시로 말해 보지만,
아내가 그런 것처럼 나도 점점 지쳐가는 건 어쩔 수 없다.
원래 우리 생각은 예삐 이후 3년쯤 있다가 세번째 아이를 입양하는 거였다.
강아지 세마리가 나란히 앉아서 우리를 바라보는 모습, 생각만 해도 예쁘잖은가?
이제 그런 장면은 실현 불가능한 꿈이 되버린 것 같다.
그저 예삐가 우리에게 준 추억들을 되씹으며 살아가야 할 듯 싶은데,
예삐가 다른 집으로 갔다면 얼마나 구박받을까를 생각하면
녀석이 우리 가족이 된 건 다행스런 일이다.
아무래도 이건 신이 개에 대한 우리 사랑을 시험해 보기 위한 건 아니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