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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의 알리바이 - 창비소설집
공선옥 지음 / 창비 / 1998년 10월
평점 :
리얼리즘 시대를 지나 인간의 내면으로 침잠해 버린 요즘 소설의 경향에 맞서, 공선옥은 민중, 그것도 하층 계급의 여성들이 겪는 척박한 삶을 소설로 그려낸다. 어쩌면 그녀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한 소설들을 읽다보면 마음이 그저 짠해질 뿐이다. 문학평론가 이명원은 “그것(공선옥의 소설)을 읽는 독자는 그러한 삶을 구조화하는 현실 전체에 대한 분노를 갖게 된다”면서 오늘날 누구도 가난에 대한 분노를 표출시키지 않고 있는 현실에서 “이 분노는 아름답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책은 잘 팔리지 않는다. 그녀가 감히(?) 언론권력 조선일보에게 싸움을 걸어서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요즘 독자들이 짠하디 짠한 이야기와 대면하는 걸 불편해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명원의 말처럼 독자들에게는 “문학갖품에서 환상을 찾고 싶은 욕구”가 있어, 척박한 민중의 삶에 관심을 갖기를 꺼려하는거다.
페미니즘 계열에서는 그녀의 소설을 소리높여 비판한다. ‘모성 이데올로기’에 함몰되어 있다는 것. 나 역시 그런 이유로 공선옥의 소설이 불편하고, 이따금씩 짜증이 난다. 소설집에 나오는 단편을 소개한다.
“실업자 남편은 늘 영례를 두들겨 팼다” 급기야는 “술집 여자 하나 꿰차고 도망을 갔다” 빚쟁이들은 맨날 영례에게 찾아와 돈을 내놓으란다. 그러던 중 영례는 자신이 임신했단 사실을 알게되지만, 미쳤다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그녀는 애를 떼어내지 않았다. 왜? “뱃속에 생명을 담고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삭막한 가슴을 다독일 수 있”었으니까. 이따금씩 영례를 찾은 남편은 “영례의 배를 걷어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례는 애를 낳고 마는데, 먼저 태어난 아이까지 애 둘을 데리고 돈을 번다는 건 너무도 어려웠다. 파출부 일을 하기 위해 탁아소를 찾지만 이런 대답만 듣는다. “세살짜리는 가능해도 갓난아기는 곤란해요”
공장에서 일해볼까 시도했지만, “하나라면 모르까 공장 품삯 가지고 두 애기 건사 못해요”란 말을 들어야 했다. 할수없이 입양을 담당하는 보호소에 애들을 맡기지만, 그 다음날 난동을 부리며 그 애들을 다시 찾아온다. 갓난애기에게 젖을 물리며 길바닥에 앉아있는 장면에서 소설은 끝이 나는데, 나로서는 왜 그녀가 애낳기를 강행해서 이 고생을 자초하는지 이해할 길이 없다.
또다른 단편에서 19세의 나이에 철없는 사랑을 한 여자애가 임신을 한다. 애 아빠는 물론 어디론가 도망가지만, 여자애의 다음 말에 난 짜증이 났다.
“저는요, 애기 낳고 소 키우고 표고버섯도 재배할 거여요”
애를 낳건 안낳건 그건 엄마의 자유다. 하지만 애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그 또한 축복받는 탄생을 원하지 몸서리치는 가난이 자신을 맞아주길 바라지는 않을 것 같다. 피임도 그렇지만 낙태 기술의 발달 또한 여성을 원치 않는 굴레에서 해방시켜 준, 보다 진보적인 발걸음이 아니겠는가. 삶에 대한 아무런 대책 없이 아이를 낳는 건, 아이를 없애는 것보다 더 큰 범죄라는 게 내 생각이다. 공선옥의 소설이 갖는 미덕을 십분 인정하면서도, 그녀의 책을 덮을 때마다 난 가슴이 황량해진다. 휘이이이-------
* 참고로 이 책은 지난 4월의 알라딘 첫 번개 때 신촌에 있는 <숨어있는 책방>에서 산 것입니다. 읽으면서 그당시 추억을 떠올리게 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