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대 여자가 가래에 피가 섞여나와 병원에 왔다. 나 같으면 대번에 폐디스토마라 우기겠지만, 세상의 모든 병이 기생충으로 인해 생기는 건 아니다. 그녀의 진단은 동정맥 기형이었고, 수술로 그 기형을 제거했다고 한다 (아님 말고). 그런데 문제는... 그녀가 임신중이었던 거다. 그것도 아주 초창기. 그녀는 물론 임신사실을 몰랐고, 수술 전 시행한 검사에서 임신 호르몬의 수치는 그리 높지 않았단다. 여기서 증언이 엇갈린다. 병원 측에서는 혹시 모르니 호르몬 검사를 한번 더하자고 했지만 보호자가 거부했다는 거고, 보호자 측에서는 그런 문의 자체를 한 적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문제가 생겨버렸다. 사진도 찍고, 약도 쓰고 했으니 애를 지워야 했던 것. 졸지에 유산을 한 여자 측은 펄펄 뛰었고, 병원에 1억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병원 측에선 당연히 못주겠다고 버텼다. 그러자.... 그 여자의 고향인 당진에서 ‘어깨’들이 몰려왔다. 그들은 드넓은 병원 로비에 자리를 잡고 농성을 시작했다. 시비가 붙었을 때는 드러눕는 게 최고, 병원 측은 할수없이 그들과 협상을 시작했고, 현재 5천만원 선까지 배상액을 다운시킨 상태다.
A 의사에게 물었다. “임신인 걸 미리 알았다면 어떻게 되었나요?”
A: 당연히 유산시키지!
하지만 B의사가 보호자에게 한 말은 이거였다.
“동정맥기형 자체는 그다지 응급상황이 아닙니다”
A 의사는 B 의사가 헛소리를 했다며 투덜댔다. “장단이 안맞잖아!”
임상에 관해서는 잘 모르지만, A가 그렇게 말하는 걸로 보아 출산 후에 치료를 할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1억원의 배상은 적절한 걸까. 병원 측과 시비가 붙었을 때, 난 1억 이하를 요구하는 경우를 못봤다. 일단 시작은 무조건 억 단위다. A 선생은 말한다.
“이거 재판까지 가면 1천에서 1,500밖에 못받아”
글쎄다. 아이의 가치는 엄마의 상황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오랫동안 자식을 기다려 온 경우라면 그 가치가 어찌 1억에 그칠소냐. 진돗개 한 마리로 8천만원의 소송이 걸리기도 하는 걸 보면 1억원도 작다. 문제는 과연 그 여자가 그런 상황이냐는 것. 임신한 걸 자신이 모를 정도라면 애를 간절히 바랐던 건 아닌 것 같고, ‘어깨’들을 자유롭게 동원할 수 있는 걸 보면 이걸 빌미로 한몫을 잡자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든다.
그렇다고 해서 병원이 잘한 건 아니다. 의사 A는 “재수없다”는 반응을 보이지만, 아무리 잘봐줘도 이번 일은 검사를 제대로 못한 병원 측이 잘못했다. 치료 때문에 유산을 시켜야 한다고 해도, 그건 당연히 산모의 동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기계 값 날렸다”고 투덜대지 말고 앞으로는 보다 철저히 검사를 해야 할 일이다. 이번 환자는 아닌 것 같지만, 이 환자 덕분에 정말 오랫동안 아이를 기다려 온 산모가 유산을 안할 수 있다면 기계 값 정도는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