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안재욱의 '친구'가 생각나서 올렸습니다.
일시: 10월 23일(토)
누구와?: 써클 동기들과
마신 양: 생맥주...
써클 동기들과 만났다. 우리가 처음 만난 게 85년이니 벌써 20년이나 우정을 간직해온 셈이다. ‘써클 역사상 가장 뛰어난 기’로 일컬어지는 자랑스러운 친구들, 예전만큼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만나면 언제나 편하고 유쾌하다.
그 써클에 든 건 내 인생항로를 많이 바꿨을 것이다. 더 좋아졌든 나빠졌든, 난 그 써클에 든 것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그 써클은 내게 분에 넘치는 사랑을 줬으며, 의대에서는 결코 친구를 사귈 수 없다고 생각했던 내 편견을 없애 줬다.
내가 거기 든 건 순전히 이대 의대와 조인트 써클이라는 매력 때문이었다. 진료와 봉사라는 써클의 이념은 내가 그 써클을 선택하는 데 별반 도움을 주지 못했을거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남자들만 우글거리던 중.고교 시절을 보낸 나로서는 여자들과 노는 걸 오매불망했었으니까. 우리 과에도 여학생들이 있었지만, 숫자가 얼마 안되는데다 자기들끼리만 놀아서 난 제대로 말도 붙여볼 수 없었다.
그래서, 써클에 가서 목적을 이뤘느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당연히 ‘그렇다’이다. 써클에 든 이후 내 눈엔 이쁘기만 한 동기 여자애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민이 오빠!”를 부르짖는, 후배 여학생들로 구성된 추종자 그룹을 거느리기도 했으니까. 졸업 후에도 오랫동안 그 써클에 나갔던 건 바로 그런 재미 때문이었다. 지금도 난 아름다운 추억을 많이 만들어 준, 그리고 좋은 친구들을 내게 보내준 그 써클에 감사하는 편이다.
20년이 지나는 동안, 그들도 이제 늙었다. 모였다 하면 밤이 늦도록 술잔을 기울이곤 했지만, 이제는 딸린 식구 때문에, 혹은 다른 일에 바빠 10시만 되면 집에 가기 바쁘다. 몸들은 다 퉁퉁 불어 100킬로에 육박하는 친구도 생겼고, 그래도 꽤 배가 나온 내가 날씬한 편에 속할 정도다. 그런 변화가 있지만, 내 눈에 그들은 여전히 대학 1학년 때 처음 봤던 그 모습 그대로다. 그들 눈에는 나도 그렇단다. 그래서 우리는 “어머 어쩜 넌 변한 게 없니?”라는 진심어린 덕담을 서로 주고받으며, “왜 남들은 우리를 아줌마.아저씨 취급을 하는걸까?”라는 의문을 공유한다. 처음 본 물체를 무조건 엄마로 알고 따라가는 오리처럼, 우리는 서로를 처음 봤을 때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아무리 부인해도 세월은 정직하게 흘러만 간다. 내년이면 몇몇을 제외하곤 다 40세가 된다. 한때 끔찍하게 생각되었던 40살도, 가까워져서 그런지 몰라도 그리 무섭지 않게 느껴진다. 내년, 내후년, 그 다음해, 우리가 모르는 사이 이마엔 하나둘씩 주름살이 생기고, 머리가 하얗게 세어 가겠지. 늙는다는 것은 분명 슬픈 일이지만, 내 친구들과 함께라면 그리 쓸쓸하진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