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철학책을 읽는가?’라고 묻는다면, 난 이렇게 대답할 거다.
“철학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려준다”
물론 그냥 멋있으려고 하는 말이지,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다. 지금까지 몇권의 철학책을 읽었건만 어떻게 사는지 전혀 모르는 걸 봐도, 철학에 삶의 해답이 있다는 건 순 거짓말인 것 같다. 라이프니쯔가 어떻고, 들뢰즈가 어떻고. 자기가 세상을 보는 시각이 맞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철학자들의 싸움을 보고 있노라면 머리만 아플 뿐이다. 그러니 내가 철학책을 읽는 솔직한 이유는 책을 덮는 순간 진리를 깨달은 것처럼 뿌듯하고, 다른 사람에게 자랑할 수 있어서다. “너 이거 알아?”라면서 상대를 기죽이는 재미는 의외로 쏠쏠하다.
그렇게 자랑할 수 있으려면 일단 철학책을 읽어야 한다. 그게 영 어렵다. 이정우 선생이 낸 두권의 철학책을 산 건 3년쯤 전이다. 철학에 조예가 깊은 주위 사람이 읽어보라고 권유한 것을 내내 무시하다, 그사람이 삐질 것 같아서 어느날 샀다. 사 놓고도 한 2년쯤 버틴 끝에 작년에 겨우 한권을 읽었고, 그 뒤 일년간 또 팽개쳐 놓다가 나머지 한권을 집어들었다. 역시 만만치 않다. 영 진도도 안나가고, 읽은 부분도 이해가 안가니 읽었는지 안읽었는지 헷갈리기만 한다. 그래서 난 머리를 식힌다는 명목으로 다른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나름의 원칙은 세웠다.
-철학책을 우선적으로 읽고, 나머지 책은 짜투리 시간에 읽는다.
-기차 안에서는 무조건 철학책을 읽으며, 기차를 기다릴 때, 버스 안, 걸어갈 때 등등의 시간엔 다른 책을 읽어도 좋다.
하지만 이게 지켜질 리 만무했다. 조금 있으니까 “출근할 때는 다른 책을 읽어도 무방하다”는 조항이 슬그머니 추가됐고, 퇴근 때마저도 “읽던 책의 단락이 끝나지 않았으면 그 단락까지는 읽어도 된다”는 유예조항 때문에 철학책을 안읽게 되었다. 그 결과 <삶. 죽음. 운명>이란 이정우의 책은 가지고 다닌지 한달이 되도록 반밖에 못읽었다. 그 중간중간에 <한국현대사 산책 1960년대편> 세권을 다 읽었고, 김영하의 <검은꽃>을 읽었으며, 지금은 <쿨하게 출세하기>라는, 이해찬에 대한 인물비평집을 읽고 있다. 철학책은 오래 가지고 다니니 너덜너덜해지고, 책 뒷장에 낙서는 무지하게 많이 되어 있으며, 이해가 안가니 책에다 빨간줄만 잔뜩 그어져 있어 미관상 영 안좋다. 철학에 삶의 해답이 있다고 떠벌이는 나, 그런 나도 철학책을 이처럼 박대하고 있는 현실. 이정우 선생이 지식을 쉽게 전달하려고 애쓴 티가 역력하지만, 그래도 철학은 어렵기만 하다. 아아, 철학은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