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과 조교가 내방에 찾아왔다. 다음주 목요일날 예과 학생들 체육대회가 있다는 거다.

“아 그래요”라고 별 생각없이 대답했는데, 조교가 뜻밖의 말을 한다.

“교수님도 뛰셔야 하는데요”


놀래서 그가 가져온 공문을 자세히 봤다. 내가 뛸 종목은 7인8각 달리기, 줄다리기, 그리고 계주였다. 줄다리기는 40명이 하는거고, 7인8각도 개인의 기량이 별반 중요하지 않은 경기. 하지만 계주라... 조교의 다음 말에 난 한층 더 놀랐다. “교수님이 1번 주자인데요”

계주에 있어서 1번 주자의 중요성은 말할 필요도 없는데, 내가 1번?


하지만 난 잠시 생각을 해보고 마음을 놓았다. 우리 과 뿐 아니라 각 단과대학의 학장(혹은 과장)들이 1번 주자인데, 나이로 봐서는 내가 가장 젊지 않겠는가? 등수보다는 완주 자체가 목표인 그분들과 평소 달리기를 취미로 아는 내가 게임이 되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니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1번으로 뛰면서 2등과의 격차를 최소한 4분의 1바퀴는 벌려야겠다. 음하하.


난 어릴 적 달리기를 끔찍하게 못했다. 5학년 때 담임이 한 말이다.

“우리반에 100미터가 20초 넘는 사람이 세명 있다. 이들은 무조건 ‘가’다!”

다행히 ‘양’이 나오긴 했지만, 날 빼고는 두명 다 체중이 무지 많이 나오는 거구였으니, 참으로 부끄러운 노릇이었다. 매년 어린이날 열리는 100미터 달리기에서 6년간 6등 4번, 5등 2번(여섯명씩 뛴다...)을 한 건 당연한 일, 그때 난 3등 안에 들어 팔목에 도장이 찍힌 친구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그보다 더 부러운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계주 선수들. 전교생이 보는 가운데 청군과 백군 대표 4명은 혼신의 힘을 다해 트랙을 달리며 바톤을 주고받곤 했다. 그 광경을 황홀한 눈으로 바라보던 아이는 20여년이 지난 후 비로소 계주대표로 트랙에 선다. 나와 같이 뛸 사람들이 내가 달리기를 못하는 데 기여한 건 없지만, 하여간 난 지금껏 받았던 수모를 그들에게 풀리라. 비호같이 달려서 벌처럼 바톤을 넘기리라. 우리 과는 무조건 계주 우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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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78 2004-10-21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자아자아자 화이팅! 마태님은 할 수 있어요! ^ㅂ^ 결과 꼭 알려주셔야 해요!

2004-10-21 2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을산 2004-10-21 2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마태님, 젊은 오빠 화이팅! ^^
다음주 목요일이면 결과를 알 수 있다구요?

노부후사 2004-10-21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주 목요일이라...
어디서 하는건가요?
시간있으면 마태님의 멋진 모습을 구경하고 싶네요. ㅋㅋ

하얀마녀 2004-10-21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멋진 모습을 학생들에게 보여주시겠군요. ^^

파란여우 2004-10-21 2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0미터를 20초라고요? 걸어 가셨나 보군요..우하하하하..=3=3=3=3 그래도 좋은 결과 알려 주세요^^

nugool 2004-10-21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아~~~체육대회의 하일라이트는 역시 계주입니다. 언제 봐도 얼마나 스릴있는지.. ^^
헌데.. 마지막 주자로 뛰셔야 되는 거 아닌가요? 제일 잘 뛰는 사람이 막주자로 뛰어야 하는데..

비로그인 2004-10-21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테니스를 치실때의 빠른 발이라면 ^^ 충분히 선전 가능하시겠지요

sweetrain 2004-10-21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마태님 화이팅!!!

sooninara 2004-10-21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100m 20초였어요..이번 재진이 운동회에서 운영회 대표로 계주에서 뛰었다니깐요..
오래살고 볼일입니다..성적은 교장,교감선생님까지 낀 우리 운영회가 꼴등이지요..아무래도 제덕도 컸겠죠???

플라시보 2004-10-22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보니 굳이 몸을 안만드셔도 되겠구만...흐흐^^

하이드 2004-10-22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저도 20초 넘었는데,,요즘은 마라톤... 아니고, 건강달리기 ( 5km 10 km) 가끔 하는데요.
그 정도가 딱 좋습니다.

회사에선 대표님이 매니아, 집에선 아부지가 매니아,( 두분 다 그 연세에 풀코스를 분기마다 뛰신답니다. -_-;;)

아, 나도 몸 만들어야 하는데,,,

아영엄마 2004-10-22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말의 힘을 빌어 열심히 뛰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