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내 이름은 빨강 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안다는 것은 본 것을 기억하는 것이며, 본다는 것은 기억하지 않고도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어둠을 기억하는 것이다...]
매우 멋진 말임에 틀림없지만, 무슨 뜻인지 이해는 안간다. 고수의 경지에 오른 분의 집에 삼겹살을 먹으러 갔다가 선물로 받은 책, <내 이름은 빨강>은 이렇듯 난해한 문장이 쉴새 없이 나오는 까닭에 내공이 약하디 약한 내가 읽기에는 조금 버거웠다. 그래도 책중간중간에 나오는 에피소드들이 워낙 흥미로웠던 덕분에 끝까지 읽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처음으로 접하는 터키 작가라는 것, 그리고 화자가 계속 바뀌면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도 신선함을 더해줬다. 궁금한 것 하나. 읽는 내도 내공이 필요한 책을 쓰는 사람은 도대체 어느 정도나 높은 내공을 가지고 있을까. 단 하나도 허투루 쓰인 문장이 없는 책, 이 책을 통해서 난 내가 전혀 몰랐던 아름다운 세계들을 알게 되었으니, 그날의 소득은 삼겹살이 아니라 바로 이 책일 것이다.
책 중간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희생자의 주머니에서 말그림이 나온 탓에, 화가들에게 말 그림을 그리게 해서 범인을 찾는 것. 그림의 대가는 이렇게 말한다.
[다리부터 그리기 시작하는 말 그림은 오직 말 전체를 기억하고 있어야만 완성할 수 있다네...머리부터 그린 말 그림은 신이 창조한 아름다움을 전혀 표현하지 못하지]
언제부터인가 난 싸인을 하기 위해 말을 그렸다. 내가 낸 책에다 싸인을 해서 사람들에게 돌린 게 400권쯤 되고, 가끔은 신용카드 전표에 싸인을 할 때도 말을 그리니 대략 500마리는 그렸을거다. 초창기에 비하면 내 솜씨는 갈수록 향상되어, 말은 아주 귀엽고, 그러면서 역동적이다. 그런데 난 단 한번도 다리부터 그린 적이 없다. 귀부터 시작해서 다리는 맨 마지막에, 아니 꼬리를 그리기 바로 전에 그렸다. 그러니까 대가의 말대로라면 내 그림들은 신이 창조한 아름다움을 전혀 표현하지 못한 것이었다! 좀 어렵더라도, 내일부터 다리부터 그리는 연습을 해야겠다.
화가 1의 말이다. “멋진 말 그림을 그릴 때 나는 바로 그 말이 된다”
화가 2의 말, “멋진 말 그림을 그릴 때, 나는 멋진 말 그림을 그렸던 위대한 옛 대가가 된다”
화가3, “나는 멋진 말 그림을 그릴 때에만 나 자신이 될 수 있다”
말 싸인을 하면서 내가 하는 말, “나는 귀여운 말 그림을 그릴 때만 馬太雨水(마침내 태어난 우리들의 스타^^)가 된다”
추리소설이긴 하지만 다른 흥미로운 얘기들이 많아서 그런지 범인이 누구일까가 전혀 궁금하지 않았는데. 범인이 밝혀지고 난 뒤 느끼는 카타르시스는 당연히 없다. 제목이 내용이랑 무슨 상관일까 하는 의문과 더불어, 책장을 다 덮고 난 지금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문제는 내공, 내공을 기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