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8월 20일(금), 놀러가서

마신양: 맥주 1.6리터짜리--> 친구가 가져온 양주, 결국 정신을 잃었다

"민아 여태 집에 있으면 어떡해?"
친구의 호통을 들으면서 난 멍하니 방안에 누워 있었다. 6시 전까지 상록리조트에 가야 했건만, 6시가 지나도록 난 출발조차 하지 않은 거였다. 친구들은 내가 혼자 여행가는 게 싫어서 느리 빼는 줄 알았겠지만, 그건 아니었다.

발단은 지극히 사소했다. 아침에 어머님이 선 보라고 적어준 전화번호로 연락을 했느냐고 물었을 때만 해도 난 그게 이런 결과를 가져올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엄마: 아니 너 아직도 전화를 안했냐? 내가 연락할거라고 이모할머니(중매장이다)한테 말한지가 언젠데?
사실 좀 너무했다. 전화번호를 써서 벽에다 큼지막하게 붙여둔 게 벌써 3주 전인데, 하겠다 하겠다 해놓고선 아직도 안했으니. 하지만 난 시간도 없었고, 있다해도 만사가 귀찮았다. 
나: 엄마는 왜 날 괴롭히지?
엄마: 내가 너 잘되라고 그러는 건데 왜 말을 안들어?
거기서 알았다고, 연락 하겠다고 하고 끝낼 걸 내가 쓸데없는 말을 했다. "엄마가 정말 날 위해서 그러는 거야? 엄마가 나 집에 있는 게 창피하니까 그런 거 아냐?"
전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그런 면이 있을게다. 하지만 엄마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니가 혼자 지내면서 행복할 수 있다면 나도 너 결혼하라고 안해. 하지만 그게 아니잖아!!"
여기서 난 전가의 보도를 내밀었다.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됐는데?"
이말은 하지 말 것을. 조금 있으니까 엄마가 우셨다.
"한번 그런 걸 어쩌라고.... 이젠 너한테 선 보라고 말도 못하겠다 " 하시면서.

내 의도와는 달리 사건이 커져 버렸다. 그게  속이 상한 나는 어머니가 밥을 같이 먹자는 걸 거부했고-그게 내 유일한 저항수단이니까-차려놓고 가신 음식들엔 손도 대지 않았다. 한끼만 굶어도 못사는 내가 무려 두끼를 굶었으니 어지러워 죽을 지경이었다.

내가 정대로 여행을 가지 않고 기차 시간을 미룬 이유는 뭐였을까? 아마도 엄마에게 내가 한끼도 안먹은 걸 보여드리려 했을게다. 저녁 무렵에 돌아오신 어머니는 식탁의 음식이 그대로 있는 걸 보고 속상해하셨다. 임종석은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며 단식을 하고, 실상은 잘 모르겠지만 최병렬은 나라를 구하겠다고 밥을 굶었다. 그런데 난 도대체 누구를 위해 밥을 굶었을까. 기껏 어머님이 속상해하는 걸 보기 위해서? 변태스러운 내 성격이 미워 죽겠고, 서른을 훨씬 넘긴 내 나이가 부끄러워진다.

처음에 "연락할께요"라고 했어야 했다. 나중에 어머니가 밥을 먹자고 손을 내밀 때 "입맛이 없다"고 말하는 대신 밥을 먹었어야 했다. 그것도 아니면 차려놓은 음식이라도 먹었어야 했다. 그 모든 것을 하지 않은 나 때문에 어머니가 얼마나 속상해하셨을까. 하루 이상 집을 비울 때면 어김없이 연락을 하시건만, 내 전화기는 지금까지 울리지 않는다. 난 어머니를 참 좋아하고, 정말 잘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내 맘과는 달리 난 왜 시시때때로 변태스러운 성격을 드러내 어머니를 힘들게 할까. 여동생, 남동생, 누나 등 어머니를 괴롭히는 드림팀을 탓할 게 없다. 어머니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내가 하는 변태 짓은 다른 형제들보다 어머님을 훨씬 더 마음 아프게 하니까 말이다.

8시 반쯤 비빔밥으로 식사를 했지만, 계속 배가 고팠다. 친구들과 포커를 치면서 계속 술을 마신 건 그 때문이다. 오징어를 잔뜩 먹고 참치캔까지 하나 따서 먹었으니 단식의 유일한 기대효과였던 체중 감량도 물건너갔다. 돈을 2만원쯤 땄다는 사실로 위안을 삼아야겠지. 변태스런 내가 난 너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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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4-08-21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엄마가 제게 잘못하신 일은 제가 몇년간 좋아하던 여자를 끝끝내 반대하신 일을 가리킵니다. 그 반대의 뒤에는 여동생이 있었구요....

이파리 2004-08-21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다고 변... 태까지는...
물론, 잘못은 하셨지만... 얼렁 어머니께 백기 드시고, 마태님이 너무나도 좋아하는 어머니표 밥과 반찬을 잡수세요. *^^*

아영엄마 2004-08-21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마태우스님의 가슴에 깊은 상처가... 반대가 깊었던 만큼 님의 상처도 깊었나 봅니다..ㅜㅜ (근데 변태보다는 마태가 좋으니 변하지 마셔요..^^;)

호랑녀 2004-08-21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 엄마는 왜 날 괴롭히지?
엄마: 내가 너 잘되라고 그러는 건데 왜 말을 안들어?

이건 아무리 봐도 10대 초반의 아들과 30대 중반의 어머니 사이에 일어날 대화인 듯 ^^

마태님, 마음이 아파요. 그래도 엄마 말씀 잘 들어야죠. 다 마태님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을 거에요. 방법상의 차이는 있겠지만요.

2004-08-21 18: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털짱 2004-08-21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마음이 많이 무거우시군요. 급히 나가다 글을 보고 짧게 남깁니다.
괜찮아요, 아들이 가끔은 그렇게 투정을 부려야 아직까지 어머니가 건재하다는 증거지요.
님도 상처가 아직 남았네요.
아무튼 기운내세요. 굶는 건 절대 하지 마시구요.
배에 실리콘이 아무리 많이 들어가 있어도 님의 매력은 조금도 손상되지 않으니
부디 끼니 거르지 마세요. 부탁이예요..

2004-08-21 2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진/우맘 2004-08-21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래 말이예요, 사랑하는 사람일 수록 잘 해줘야 하는데...그렇질 않더군요.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어리광부리고, 상처 입히고....그러면서 세상 살아갈 힘을 얻고.
어머님은 마태님의 충전기인가 봅니다. 하지만 말이예요, 그 충전기는 고장나면 AS가 어려우니, 잘 간수해주세요.^^

진/우맘 2004-08-21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음...그나저나, 털땅님의 저 간곡한 애원이 심히 거슬리는군욧!!!

코코죠 2004-08-21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심하게 거슬리죠 진/우맘님?

2004-08-21 2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arrysky 2004-08-21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이 아파요.. 전 엄마랑 싸우다가도 엄마가 심각하게 화내면 그때부터 설설 기는데 마태님은 끝까지 반항을 시도하시는군요.. (큰 차이다!!)
여행에서 돌아가시면 평소처럼(?) 잘하세요. 으으, 어머니 정말 속상하셨겠다.. ㅠㅠ

마냐 2004-08-22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찜질방에서
사소하고도 너무나 사소한 문제를 가지고, 세상에 시어머님과 다투고 말았습니다.
"그러죠, 뭐"라고 한마디 하고 그냥 지나가면 될 것을...따지기 좋아하는 그놈의 성질머리가 고개를 들었슴다. 대체 시어머님께 잘난척 따지면 뭐하겠습니까.
요즘 이런저런 일로 속상하시던 어머님이 눈물을 보이시기 직전, 화들짝 정신차려 사과를 드렸지만..결국, 시어머님이 우셨어요. 정말 싹싹 빌며 잘못했다고 했지만 이미 늦은 일. 내가 뭔 짓을 한건지....결혼을 하니, 못된 딸래미 성질에다 가끔 못된 며느리 성미까지 발휘, 후회할 일이 2배로 늘었습니다....너무 찔려서 옆지기에도 말못한 일을 마태우스님이 무슨 고해성사를 받아주기나 하는듯 괜히 털어놓습니다. 님도 힘내세요.

마태우스 2004-08-22 0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냐님/으음, 님도 만만치 않군요....
스타리님/오늘 전화드렸어요. 돌아가면 잘하겠다구요. 그리고 잘못했다구요..
스윗매직님/제 마음 아시죠?>???????????????????? 제가 변태인 걸 알면서 좋아하는 유일한 알라디너.......
오즈마님/하여간 전 님한텐 잘할께요!
진우맘님/술이 취하니 님이 보고파요.......저 많이 마셨는디...
타스타님/으음, 전 그냥 상처 별로 안받은 사람으로 남으면 안될까요...............
털짱님/후훗, 님과 저는 특별한 사이어요^^

마태우스 2004-08-22 0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라시보님/전 그래서 님이 조아요!
호랑녀님/날 잡으면 나올거죠????????????????? 믿습니다!!
아영엄마님/이쁜이와 고기 양의 비교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이따우님/전 하여간 따우님이 조아요!

호랑녀 2004-08-22 0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마태님...
요즘 알라디너들이 보내는 책선물이 심심찮게 집으로 들어오는데... 남편이 보는 눈이 좀 이상해졌습니다. 이 여자가 도대체 뭔짓을 하고 돌아다니나... 하는 듯이 보고 있습니다 ^^
어제 갈대님으로부터 예쁘게 포장된 책이 오자 급기야 참지 못하고 한마디 하네요.
도대체 어떤 조직이야? 왜들 그래?

그런데... 오프모임이 있어서 나간다구 하면? 흠... 불쌍한 호랑녀...ㅠㅠ

** 이름 불러주셔서 고맙습니다 ㅋㅋ **

sweetrain 2004-08-22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서, 설마 1.6리터를 혼자 다 드신 건가요? 아아, 서재 오프모임 대비 다이어트라도 해야겠습니다...

털짱 2004-08-22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도 오는데
왜 안오시나요.
그러다 감기 걸린단 말이예요. 쳇!
(=3=3=3=3)

stella.K 2004-08-22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사춘기 때 단식 한번 해 봤는데, 그거 참 못할 짓이더라구요. 그때 뭐 때문에 밥을 안 먹었는지 모르겠는데, 우리 엄마는 마태님 어머니와는 달라서, "그래? 그럼 니 맘대로 해."하고 신경도 안 써요. 그 담부턴 절대로 단식 같은 거 안 해요. 나만 손해죠. 아무리 슬프고, 하늘이 무너지고 청천벽력 같은 일 당해도 밥은 꼭 먹어요.
근데 참 이상하죠. 가장 사랑하는 자식이 부모님 마음 가장 아프게 하는 건 왜 일까요? 저도 그러니 말예요.
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예쁜 손가락은 꼭 있기 마련이고, 아픈 손가락도 있기 마련인가 봐요. 전 그나마 중지가 좀 예쁜 거 같아요. 길어서 그런가? (뭔말 하는 거야? ㅜ.ㅜ)

호랑녀님/님의 말씀 정말 웃겨요. 저도 얼마 전 선물 받았는데 우리 엄마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 보는 거 있죠? 쟤가 이런 선물 받으리만치 이쁜짓 한 적이 없는데...하면서 말이죠.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