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기남. ‘천.신.정’으로 대표되는 개혁파의 선두주자며 매우 깨끗한 이미지로 사람들에게 기억됐던 그가 아버님의 친일 문제로 당의장직을 사퇴했다. 한심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다. 우리나라가 공식적으로는 연좌제가 인정되지 않는데, 그리고 박정희처럼 자신이 직접 독립군을 때려잡은 것도 아닌 터에 아버지가 헌병으로 재직한 걸 왜 숨겨야 했을까? 메이져 신문인 동아일보의 정보력이 그 정도도 알아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그 자신은 “때가 되면 밝히려고 했다”고 변명을 하지만, 그 ‘때’라는 게 도대체 언제인지도 의문스럽고, 어차피 밝히려고 했다면 신문에 자기 아버님의 친일 사실이 보도되었을 때 “법적으로 대응”한다는 식의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이 사태로 과거사를 규명하자는 정부의 의지를 뭉개버리려는 건 분명 나쁜 일이지만, 그들에게 빌미를 준 건 전적으로 신기남의 잘못이다.
지승호의 인터뷰 모음집 <우리가 이들에게 희망을 걸어도 좋은가>에서 신기남은 이렇게 말한다. “제가 영국에서도 잠시 살아봤는데, 서양의 정치권은 굉장히 과감하고 솔직합니다. 정치인이 개성이 없으면 생존을 못해요...솔직하게 발언하고, 받아들이고, 활발하게 토론하고. 우리도 어서 그런 풍토가 마련되었으면 좋겠어요. 우리 같은 사람들이 나서서 그런 것을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83쪽)”
하지만 그는 솔직하지 못함으로써 개혁파의 이미지를 실추시켰고, 우리 나라의 숙원이었던 과거사 규명작업의 정당성마저 훼손시키고 말았다.
물론 신기남은 좋은 정치인이고, 거짓말 하나 했다고 그가 지나치게 매도당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개혁에 딴지를 걸고자 하는 세력이 시퍼렇게 눈을 뜨고 있는 와중에 일어난 이번 실수는 그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지승호의 책 제목에 답을 해본다. “개혁파로 불리는 애들이 다른 애들보다 좀 낫긴 하지만, 너무 희망을 걸지는 말라. 맘 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