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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제단 - 개정판
심윤경 지음 / 문이당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2년 전의 어느날, 시간이 남아 영풍에 갔다가 책에서 낯익은 이름을 발견했다. 저자 사진을 보니 나랑 친한 친구의 여동생이 맞다. 한겨레 문학상까지 받은 책이란다. 대번에 사서 집에 가져가 읽었다. 이럴 수가. 너무나 재미있다. 분자생물학과를 나온, 문학 전공자도 아닌 사람이 어쩜 이렇게 글을 잘 쓸까. 갑자기 그 친구에게 좀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녀를 내가 안다는 게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그녀의 두 번째 책 <달의 제단>이 나오자마자, 난 잽싸게 주문을 했다. 2년차 징크스라는 것도 있을 법한데도, 이번 책은 정말 훌륭했다. 어지간하면 책 선물을 안하는 내가 여기저기 선물을 한 것은 내가 얼마나 이 책에 감동했는가를 보여주며, 받은 사람들이 대부분 "재미있다"며 별점 다섯 개를 준 건 내가 이 책에 후한 평가를 내리는 게 친구 동생의 책이어서가 아님을 입증해 준다. 처음에 문중 얘기가 나오고, 해독이 잘 안되는 편지가 등장할 때는 약간 긴장했지만, 이내 책의 재미에 빨려들어가, 순식간에 읽어 버렸다. 아무튼 책의 저자를 알고 있다는 건 뿌듯한 일이다. 누군가가 이런 리뷰를 썼다고 치자. "달의 제단은 달이 되고픈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 것이다" 그러면 당장에 이런 반박을 할 수 있다. "방금 저자한테 물어봤는데, 그런 거 아니라는데요? 소년이 달이 되고픈 게 아니라, 달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거라는데요?" 후후, 생각만으로도 짜릿하다. 물론 내가 그렇게 할 지는 두고봐야 알겠지만.
이런 일이 있었다. 어느 마을에 정신 지체를 가진 여자가 있었는데, 알고보니 마을 사람 대부분이 그녀를 성적으로 착취했다는 것. 당해도 책임지라는 소리를 못할테니 성욕을 풀기에는 그녀만큼 좋은 대상이 없었을 터였다. 이 책의 주인공 상룡이 '집안의 수치'고 '못생긴 얼굴과 터질 것같은 살집'을 가졌고, 지능도 떨어지는데다 다리마저 기형인 정실을 덮쳤을 때, 난 전에 들은 그 일을 떠올렸다. 상룡은 그 사건 이후 계속 정실과 관계를 갖는데, 그 와중에 상룡은 그녀를 추궁해 그녀가 자기 말고 또다른 사람과도 관계를 가졌음을 알아낸다.
"내 말고 어뜬 놈이랑 그런 짓을 한기고?"
정실이 입에서 아는 남자의 이름이 계속 나오자 그는 화를 낸다.
"그 다음엔? 담엔 또 누고?"
정실이 남자들에게 당한 것이었음에도 상룡은 이렇게 말한다.
"니가 그르키 더럽은 년인지 몰랐다...인차는 내를 봐도 아는 체하지 마라"
성이 그렇게 더럽다면 남자들이 그토록 성에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 남자가 임자 있는 여인을 꼬실 때 하는 말이 이거다. "한강에 배지나가면 티가 나냐?" 오죽하면, 옛부터 내려오는 말에 의하면 가장 만족도가 높은 상대 1위가 유부녀다 (2위는 부하직원, 3위는 이혼녀? 하여간 꼴찌가 마누라다). 하지만 막상 그렇게 욕정을 채우고 나서는 그 상대를 '더럽다!'고 손가락질하니, 최소한의 일관성도 없다. 나혜석이 "남자들은 참 이상하다. 여자들한테는 정조를 지키라고 하면서 자기들은 여러 여자랑 못자서 안달이다"고 말한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제발 반성 좀 하자.
아무튼 보기 드문 훌륭한 책을 읽어서 좋고, 내가 아는 작가라 더더욱 기쁘다. 그녀의 세 번째 작품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